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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드디어 만나다, 소매치기

Recharge 9일 차: 스위스 벵겐 > 이탈리아 피렌체

by Chuchu Pie

(이렇게 헤벌레 대니까 표적이 되지)


9일 차 하이라이트

유럽 오기 전부터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으로 수많은 소매치기 수법을 머릿속으로 익히고 왔지만,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임산부 신공은 미처 몰랐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피렌체행 기차로 갈아타는 시점이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비는 한 시간을 번잡한 역사 안에서 보내게 됐다. 온 가족이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짐이 한가득이었다. 날씨도 스위스와는 달리 후덥지근하고,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어질어질했다. 이탈리아가 처음이라 긴장도 많이 됐다. 목덜미 안쪽으로 끈적한 땀이 흘렀다. 시원한 스위스 벵겐이 우리 집인양 그리워졌다.


한 시간 내내 역사 구석에 앉아 경계 가득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며 기차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큰 트렁크와 함께 안쪽으로 몰아넣고, 한 손은 복대 지갑에, 한 손은 중요한 트렁크 손잡이에 올려놓고 꿈쩍도 안 했다. 늑대 가족이 여행을 왔더라면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우릴 건들면 후회할 거야, 라는 텔레파시를 어딘가에서 우릴 노리고 있을지 모를 소매치기에게 끝없이 보냈다.


드디어 기차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서 긴장의 끈을 살짝 놓은 것이 문제였다.


기차가 도착한 플랫폼으로 같이 기다리던 군중들 틈에 끼여 흘러갔다. 이윽고 우리 기차 칸에 다다러 짐을 올렸다.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하나씩 해야 했다. 막상 기차에 올라타 보니 짐칸이 따로 없는 것이 문제였다. 뒤에서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고 앞으로는 짐을 어쩌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게 됐다.


이때 뒤에 서 있던 한 여성이 이탈리아 악센트가 있는 영어로 '조금 더 기차 안쪽으로 들어가면 짐을 넣는 곳이 있다'라고 말해준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한 뒤, 중간 지점인 우리 자리로 왔지만 짐을 놓는 곳은 따로 없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당황하는 사이에도 뒤에서는 손님들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뒤는 손님, 앞에는 각 30킬로 정도의 큰 트렁크 두 개와 두 아이와 아내. 진퇴양난의 상태가 되어 기차 칸 모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트렁크를머리위로힘겹게올리고또하나는안들어가는발밑으로밀어넣어보려하는데아이들이아빠이건안들어가이러면서질문을해대고뒤에서는손님들이계속몰려들어오고한손님이급기야는너무불평을하길래쳐다보니목발을짚은아이가서있고그래서그손님을지나보내고다시짐을어떻게해보려하니아까이탈리아여자가우리앉을곳이사실은자기네들자리라고우긴다.


아니, 갑자기 자기네 자리라니. 내 티켓을 확인해보니 분명히 우리 자리가 맞는데, 혹시 기차 칸을 헷갈렸나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탈리아 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티켓을 보여달라고 한다. 흘깃 보니 여자 두 명인데, 말하는 40대 말고 내 옆에 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배가 불룩해있다. 임산부인 걸 알고는 마음이 약해져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모바일 티켓을 확인시켜주고, 다시 내가 당신들 티켓을 확인해주겠다고 하니 남편이 티켓을 들고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나의 티켓을 보여달란다. 아니 이탈리아 말로 뭐라고 했는데 그런 뜻인가 생각하고 있는 찰나 느낌이 이상해서 복대 지갑으로 급히 손을 뻗으니 반쯤 열려 있다.


아니 뭐 하는 겁니까, 지금?!


당황해서 물어보며 옆에 있는 임산부의 손을 확인했다. 얇은 스카프를 팔뚝에 감고 있었다. 그것으로 손을 숨기고 내 옆에 서서 복대 지갑을 슬금슬금 열고 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짐을 어쩌지 못해 황망한데 자리 가지고 시비까지 걸어 정신을 홀딱 빼놓은 사이에. 내가 스카프를 거칠게 들춰내며 임산부의 양손을 확인하자 불쾌해한다. 사실 그때까지도 너무 갑작스러워 긴가민가했다. 만약 소매치기가 아니었다면 엄청난 실례를 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일이 틀어지고(?) 나서도 황급히 도망가지는 않았다. 마침 기차에 올라타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며 '남편과 확인해보겠다'라고 하며 그쪽으로 이동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착각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졸지에 소매치기 아줌마의 '남편'이 된 중년 신사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나는 우선 복대 지갑에 그새 없어진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모두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기차 승강구로 달려 나가 봤다. 증거가 없어 어찌하지도 못할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뛰어나갔다.


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다. 플랫폼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일자로 된 꽤 긴 플랫폼이었는데 어느새 어디로 사라진건 지 신기할 뿐이었다. 그새 옆 칸으로 갔나 싶었지만 거기까지 확인할 정도의 정열은 없었다.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차에 돌아오니 때아닌 소동에 놀란 승객 몇 명과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아무도 위로해주거나 말을 걸어 주거나 하진 않는다.


각박한 곳이었다. 밀라노 역.




9일 차 여행 일지

스위스 벵겐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너무 아쉬워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버렸다. 그래서 커피를 타들고 테라스에 나와 알프스의 이른 새벽을 즐겼다.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컴퓨터는 켰다가 바로 그냥 패스. 날씨가 쌀쌀해 커피도 급냉각. 결국 10분 남짓 안돼 다시 방으로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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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서면서 방명록을 쓰는 아이들. 방명록이란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그것에 열광하는 아이들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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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간 벵겐에서 여기저기 다닐 때 썼던 기차 시간표. 짧은 시간에 꽤 너덜너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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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겐에서 라우터브루넨으로 나오는 기차와 그 안에서 바라본 풍경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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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 (Interlaken)에서 스피츠 (Spiez)로 가는 기차. 벵겐에서 무려 4번이나 갈아타야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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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츠에서 바라본 툰 호수 (Thuner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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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츠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는 길. 이때까지는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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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스카나 (Toscana) 지방은 축산업으로 유명해 스테이크와 가죽제품이 많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특히 피렌체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T-Bone Steak를 시켜 먹었다. 소매치기당할 뻔한 위기를 잘 넘긴 것을 감사할 겸. 그런데 뼉다귀를 세워 놓고 그 옆으로 불꽃놀이라니.


주인장 센스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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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ocotte라는 스테이크 전문점인데 스테이크도 맛있지만, 인심이 후하다. 일단 주문받아주시는 언니부터 목소리가 아주 당차고 에너지가 넘친다. 와인 두 잔을 시켜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한 병 시키는 것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아 바꾸려고 했더니, 이 언니, 옆 테이블 손님들과 농담 따먹기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손을 들었더니 '곧 갈게'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수다는 계속되고 그 와중에 와인 두 잔이 나와버렸다. 나중에 사실 잔이 아니라 병으로 바꾸고 싶었다고 하니, 알았다며 병을 가져온다. 그럼 이미 나온 두 잔은? 그냥 서비스니까 마시랜다.


해외 나와 살면서 서비스란 개념을 잊은 지 오래됐는데, 이탈리아 피렌체 조그만 식당에서 고향의 향기가 났다.


결국 다사다난했던 하루 끝무렵에 공짜 와인까지 부어 마시니 술이 너무 취해 아래 디저트를 먹은 기억이 안 난다. 사진은 찍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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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_215825.jpg 이것이 바로 한 병 이상 먹게 된 라고네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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