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위스 모두 자유 여행으로 다니다가 처음으로 가이드 투어를 예약한 곳은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꼭대기에 올라가야 하는데 줄이 길기로 악명 높은 곳이다. 두 시간은 기본이라는 말에 덜컥 겁을 먹고 가이드 투어를 끊었다. 그러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투어치곤 가격도 저렴해 그냥 Express Pass 사는 셈 치고 큰 기대는 안 했다. 성당 한 번 보고, 400여 개의 계단을 오르고, 꼭대기에서 사진 한 번 찍는 건데 가이드는 무슨 가이드. 딱 그런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이탈리아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이 될 줄이야. (물론 첫날 첫 결정이긴 하지만) 건축 공법과 짓는 과정. 그림의 사연, 그리고 사람 냄새나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진진했다. 35도가 넘는 더위를 피해 벽돌로 된 서늘한 성당 안에서 천장을 가득 채운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듣다 보면, 600년 전 이탈리아의 화려했던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좋아했다. 루브르나 우피치에서는 햇볕에 쬐인 지렁이처럼 꼬불대던 애들이, 두오모에선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두오모 돔 이야기만 하고 싶다.
우리 가이드의 이름은 나탈리아. 짧은 쇼트커트 머리에, 단순하지만 강렬한 진주 귀걸이를 했다. 눈매와 콧날이 날카롭고 175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꾸준한 운동으로 만들어진 날렵한 몸매의 소유자다. 이탈리아 사람이고 영어 발음 곳곳에 "안느"가 배어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국적이다.
만남의 장소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헤드셋을 받아 사용법을 간단히 익힌 뒤, 약 5분 정도 밖에서 설명을 들었다. 돔으로 바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사실 대성당 내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두 번: 아래에서 한 번, 위에서 한 번)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대성당에 들어가는 것에 큰 의미가 있지 않는 한 꼭 대성당의 기나긴 줄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도 뒤로 대성당 내부가 보인다.
대성당은 약 13세기부터 600년 이상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처음 설계할 때 당시에는 규모에 대한 집착이 커, 두오모 돔은 애초부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타이틀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고 한다. (결국 성공했지만 약 150년 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그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 현재는 세계에서 4번 째로 큰 돔이다.)
다만 무모하게 사이즈에만 집착하다 보니 바닥을 엄청나게 넓게 디자인했는데, 아쉽게도 당시에는 그 넓은 바닥을 돔으로 덮을 기술이 없었다고 한다. 건축 설계자들이 경쟁적으로 바닥만 엄청 크게 다져 놓고 다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당시 널리 알려진 기술은, 나무를 아치형으로 세워 돌을 올린 뒤 Keystone을 가운데에 놓고 나무를 빼내는 방식이었는데 (콜로세움 등의 아치들도 다 이런 기술로 만들어졌다), 두오모 돔은 나무로 커버할 수 있는 스케일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만약 같은 기술을 쓰려했다면 키 100미터가 넘는 나무가 필요했다고 하니,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이다
그렇게 기초공사라고 하기에도 쑥스러운 바닥만 남긴 채 120년 넘게 방치된다. 뚜껑이 열려 오는 비 다 맞고, 부는 바람에 다 날리고.
심사위원들이 제출된 아이디어를 못 미더워하니, '달걀을 세워보라'라고 했단다. 머뭇거리던 심사위원들이 결국 모두 실패하자, 브루넬레스키는 밑동을 살짝 깨 달걀을 세웠다.
"아니,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맞아. 하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었잖아. 나의 돔 공법이 바로 그런 거야."
...라고 받아친 일화가 아주 유명하다. (보통 콜럼버스의 달걀로 알고 있는데,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콜럼버스는 브루넬레스키 다음 세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달걀 공법"이란 건 바로 벽돌을 헤링본 스타일로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한 기술은 철저히 숨겼던 브루넬레스키. 아직도 어떤 식으로 8 각형 모양의 돔을 이렇게 튼튼하고 정교하게 세울 수 있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3분 비디오 보기)
그렇게 우승을 차지하고 공사에 들어간 것이 1420년.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장치와 장비, 직접 고용한 인부들, 그리고 필요한 자본까지 직접 다 관리하며 단 16년 만에 돔을 완성했다고 한다. 16년이라면 긴 세월일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시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스피드라고 한다. 게다가 이 지름 45미터 높이 116미터짜리 괴물 돔을 짓는데 고용한 인부는 단 60명!
콕 집어 비교하자면, 브루넬레스키 사후에 올린 돔 맨 꼭대기의 랜턴은 무려 34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돔 전체는 16년 걸렸는데 꼭대기에 올린 랜턴을 짓는 데에 그 두 배 이상이 걸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브루넬레스키가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고 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특히 그가 훌륭한 프로젝트 매니저였다는 사실에 솔깃했다. 재미있는 일례로, 원하는 공사 속도가 나오지 않자 뒷조사를 해보니 인부들이 벽돌 한 무더기 올려놓고 다시 내려가고 술 한 잔 하고 다시 올라오느라 오후로 갈수록 속도가 더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아예 위에서 숙식을 할 수 있도록 화장실 및 부엌 등을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하루에 딱 한 번만 오르내리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왠지 그 당시 같으면 규칙을 만들어 벌을 주고 윽박지를 것 같은데, 그 대신 공사 동선을 새롭게 디자인 해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Nudge의 향기가 났다. (혹시 설마 브루넬레스키가 행동경제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나, 찾아봤지만 거기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60명 중 16년 간 단 한 명만 사고사 했다는 점 (물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은 브루넬레스키의 뛰어난 프로젝트 관리 능력의 또 다른 예이다. 스위스 융프라우요흐를 뚫다가 30명이 넘는 (그것도 하필이면 이탈리아인) 사람들이 사고사 한 것과 비교된다.
여러모로 스티브 잡스 혹은 일론 머스크와 닮은 구석이 있다. 동시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것을 즐겼던 사람이란다. 브루넬레스키.
10일 차 여행 일지
밖에서 바라본 대성당 모습.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가 사진과 궁합이 잘 맞았다면, 대성당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웅장하고 멋있었다.
꼭대기까지 총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두오모 돔. 이 모든 계단들은 사실 공사 인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힘든 건 둘 째치더라도 꽤 가파르고 좁다. 앞 뒤로는 사람들이 꽉 막혀 있어, 폐쇄 공포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답답하게 느낄 것 같다. 오르는 도중 문득 '불이 나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어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계단을 오르면서 헉헉대다 보면 금세 잊힌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피렌체 전경. 붉은 벽돌로 뒤덮인 풍경이 에펠탑에서 보는 풍경과는 다른 맛이었다. 바로 코 앞에는 종탑, 저 멀리는 우리가 도착했던 Firenze S.M.N. 기차역이 보인다. 종탑도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 봤자 풍경은 대동소이하다는 말에 포기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두오모 돔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미리 알아챘어봤자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이미 찌는 듯한 더위에 모두가 지쳐버렸다. (약 35도까지 올랐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가 롤러코스터처럼 변해 더욱 짜릿했다.
두오모 돔 천장을 수놓은 "최후의 심판"에 등장한 7가지 원죄 중 가장 귀여웠던(?) 개구리. 개구리는 탐욕을 상징한다. 사진에는 잘 안 나오지만 7가지 원죄를 상징하는 동물 중 말과 멧돼지의 순서를 잘못 그려 나중에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말이 멧돼지처럼 목이 짧고 멧돼지는 말처럼 다리가 길다. 잘못 그린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살 떨렸을까 생각해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나탈리아는 이 천장 그림을 설명하는 데에 약 30분을 썼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아이들에게는 가장 신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른 저녁으로는 다시 티본스테이크. 숙소 바로 뒤에 있는 Le Cappelle medicee ristorante enoteca라는 곳이었는데, 왠지 있어 보이는 이름과 좋은 구글 리뷰와는 달리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냥 너무 더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식당에서 가장 훌륭했던 건, 아이들에게 디저트를 공짜로 주겠다는 주인장의 아이디어였다.
브루넬레스키의 라이벌 기베르티가 만든 천국의 문. 이름 자체는, 이것을 보고 감탄한 미켈란젤로가 '이 문을 열면 천국으로 갈 것 같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문을 장식한 조각에 르네상스의 꽃이었던 '원근법'을 적용한 작품이라고 한다. 기베르티는 브루넬레스키의 라이벌이었지만, 브루넬레스키가 두오모 돔을 멋지게 건설해내면서 전반적으로 판정승한 듯싶다. (물론, 예술 및 과학과 건축 그리고 그 외 많은 것들의 문외한인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두오모 돔 투어 경험만을 토대로 한 지극히 편향적인 생각입니다)
참고로, 가운데 손잡이처럼 툭 튀어나온 두상이 기베르티 본인이라고 한다. 노골적이지만 귀여운 발상이다.
그러고 보니 두오모 전에는 우피치 박물과 베키오 다리도 갔었다. 그전에 박물관/미술관을 너무 많이 연달아 갔던 탓도 있고 에어컨이 안 된 탓도 있고 등등 여러모로 두오모에 비해 임팩트가 약했다. 그래도 역시 이번 여행에서 맛 들인 음성안내시스템을 열심히 귀에 대고 다녔다.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가 그린 초상화.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주화는 조각하듯 입체화 한 것이 아주 신선했다.
제목이 그냥 Portrait of a Young Man Holding a Medallion
마리아 막달레나의 딸이라는데, 어린 나이에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 인상 깊다. 바비 인형이라도 건네주며 풀어주고 싶은 미간의 소유자다.
그림은 메디치 은행의 디렉터인 토마소 포티나리(?)를 위해 그려졌다고 한다
인상 깊었던 이 그림에 대해 열심히 읽어보는 중
원래는 메디치 가문의 별장이었던 우피치 박물관. 곳곳에 그들이 귀중품을 소장했던 방들이 보존되어 있다.
많이 본 조각인데 Satyr Marsyas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폴로에게 음악으로 도전했다가 건방지다고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벌을 받았단다. 진짜라면 너무한 거 아닌가.
우피치 안에서 방황하다 보면 보이는 두오모 돔.
이때만 해도 두오모 돔이 그렇게 인상적일 줄은 몰랐다.
푹푹 찌는 날씨에 아이스커피를 시켰더니 얼음이 커피에 발을 담근 채 나왔다. 차가운 커피를 인정 못한단다, 이태리 사람들은. 너무 덥잖아 그러면, 그럼 젤라토(이탈리아 아이스크림)를 먹어, 그런다고 한다. 즉, 아이스커피에 관해서는 대화가 안 된다. (다른 커피는 환상적이다)
우피치에서 키아누 리브스를 발견하다.
사실 이제 우피치, 하면 떠오르는 그림. 엄마와 딸을 비슷하게 잘도 그렸다는 생각에 자세히 봤더니 마돈나(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예수였다. Albercht Durer라는 화가의 작품으로 독일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이라고 한다. 당시 성모 마리아 하면 꼭 같이 그렸던 후광이나 면사포 없이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해서, 아마 개신교의 정신을 담으려 했던 것으로 추측한다고 한다.
그림은 Madonna and Child 'Madonna of the Pear'
이것이 헤링본 스타일. 한국의 보도 블락에서 많이 본 스타일이다.
우피치 박물관 들어가는 길
베키오 다리. 알록달록한 상점들 위로 일렬로 난 창문은 메디치 가문이 우피치에서 강 건너 새 별장으로 가는 비밀(?) 통로라고 한다. 이 비밀 통로를 만들고 나서 베키오 다리를 채웠던 생선이나 살라미 가게들을 싹 다 정리하고 보석 가게들로 채워놨다고 한다. 냄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