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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Aug 29. 2024

자작시

내 남편이 포도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농사꾼 뒷목이

녹아나고

팔뚝이 새까맣게

그을리도록


여름해가 쨍쨍하게

울고 나면

비로소 여름 과실이

탐 스러이 농익어 간다


한여름, 넘의 집

담벼락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포도만 보아도


그 시절 부모님을

떠올리는 내 남편


한여름의 햇살

한여름의 소낙비

한여름의 향기를 알알이 품은


그 포도 한입은

얼마나 탐스러웠을까


송이마다 맺힌

일곱 남매의 뒷바라지 삯


조그마한 몸으로

하루종일 넝쿨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어린 아기 달래듯

포도알을 따내셨을 어머니는

또 얼마나 많은

비지땀을 바치셨을까


매일 포도밭에 살아

지겹다면서도


내 남편이 포도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새까만 알알마다

어머니 같은 농사꾼이

귀한 땀이 담겨있어서일 테지


달디 단 포도 한 알

삼킬 때마다

일평생 자식 키우듯

함께 익어오신


그 시절, 숙연한

노부부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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