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태풍이 지나갔을 뿐,,, 햇살은 또 비추고
둘째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2살 차이 나는 형, 한글 떼게 하려고
방에 글자판을 붙여 놓았는데 큰애
보다 작은애가 글자판에 관심을 보
이더니 4살 때 한글을 다 떼고
영어판을 붙여 놓으니 그것도 다 떼
었다 .
애아빠랑 나는 천재 아냐! 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기 자식은
특별해 보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1년 365일
받아쓰기도 늘 만점이고 딱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
집에서는 부모님 말 잘 듣고 학교에서
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합 12년 반장자리 한번 놓친 적 없는
아이였다.
둘째 아들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입시가 그랬다.
중학교 3학년때 전교 3등으로 졸업
했던 아이는 동네 학교가 아닌 조금
공부한다는 애들이 모인 학교를 가
기를 희망했다.
형을 동네 학교에 보내 보니 솔직히
부모로서 잘하는 아이에 대한 욕심
도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땐 나름 좋은 성적은
로 입학을 했고 나름 괜찮았는데 고2
가 되면서 성적이 계속 떨어지기 시작
했고 아이가 갑자기 귀가 아프다고
했다 동네 병원을 갔는데 이상이 없다
고 하는데 아이는 계속 귀가 아프다고
해서 대학 병원을 갔다.
병원에서 스트레스성 삼차통이라고
하셨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하루는
"엄마 나 자퇴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되고 아이가 자존감
도 많아 떨어졌다.
늘 학교 가기 즐거워하던 아이였는데
언젠가부터 아이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
" OO 야! 엄마는 네가 행복하게 학교
생활하는 게 제일 중요해 좋은 대학
안 가도 되니까 너도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말고 편하게 공부해
여태껏 엄마에겐 넌 늘 최고의 아들
이였어 " 하고 아이를 안아 주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내가 수도권 대학 가려고 평생을
이렇게 공부하며 살았는지 알아
엄마는.."
했다 .
하지만 입시란 게 운도 따라 줘야
하는 거였다.
애아빠는
"처음부터 동네 학교나 보내서 등급
이라도 잘 따게 하지 엄하게 공부 잘
하는 애들 다니는 학교 보내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고 본인 말 안 듣고 애부추
겨 이렇게 된 거라며..."
내 탓을 했다 .
무엇보다 아이가 중요했다.
대학병원에 3~4개월 다니고 최대한
아이 마음을 다독 거리는데 집중했다
그러니까 점점 호전되었고 귀 아프다
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는지
"엄마 죄송해요 엄마 탓 아니에요 제가
가겠다고 한 거고 제가 부족했던 거죠
운이 없었거나"
하며 오히려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아들은 수도권 대학에 다닌다.
처음엔 자존심 상해했다 자기보다
학교 성적이 안 좋았던 친구들이 동네
일반고 가서 등급 잘 따 인서울 탑인
대학 들어간 친구들을 보며...
또 동네에서
"ㅇㅇ는 대학 어디 갔네"
소문이 돌면서
나 역시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동네에서 학원 하시는 분이 우리 단지
에서 대학 제일 못 간 케이스가 우리
아이란 말을 했다며 친한 엄마가 전해
주는데 당장이라도 가서 학원선생님이랑
대판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내 자존심보다 아이를 위해,, 작은 불
씨를 더 크게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몇 달이 지나니 아이도 나름 처음에
비해 대학 생활을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고사 때도 장학금 받고 교수님들
도 이뻐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다시
아이가 밝아졌다.
우리 아이는 늘 햇살 같은 아이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들도
상담 가면 그런 비슷한 말을 했다
어떤 담임 선생님은 임신 중이셨
는데 내게
"어머니, 저도 우리 00 같은 아들
낳고 싶어요" 했다.
1학년 우수성적 장학금 받고 군
대를 갔다.
아들 면회를 한번 다녀왔는데,, 멀
리서 대구까지 부모님 힘들게 오신
다고 대구에서 제일 좋은 숙소를 잡
아준 아들이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속 한본 섞인 적
없는 아이,
입시 때 조금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그마저도 잠시 지나간 태풍이었음을
지금은 또 잘 지내니 다행이다.
8월에 제대하는 아들, 제대하면 당분
간 배낭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동안 애썼고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