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의 끝에서
만난 가을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길로
나를 안내한다
어느새 나는
17세 소녀가 되어 있었다
열개의 손가락 위로
봉숭아 물들이고
부끄러워 수줍게 웃는
코스모스가 되어 있었다
여린 소녀의 마음속
간질간질한 창문을 열었다
작은 햇살이 들어왔다
푸른 가을 하늘에서
새 하얀 구름 속 깃털 하나
살포시 세상으로 내려왔다
가을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에 날아가는
깃털을 잡고 싶어 뛰쳐나갔다
코스모스 머리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깃털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서툰 엄지와 검지로
깃털을 집어 들고
하늘 위로 들어 보인다
눈이 부셨다
잠자리 날개를 뚫고
햇빛이 들어왔다
눈을 뜰 수 없었고
그럼, 손차양을 만들어 주던
나도 모르게
자꾸 새어 나오는
옅은 미소
곱게 물든 봉숭아물이
다 없어지기 전에
다시 나를 찾아와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