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아니고, 전세 아니고, 샀다고
폭싹 속았쑤다 드라마 작가분이
동백꽃 필 무렵을 쓴 분이라고 한다.
동백꽃 필 무렵을 참 재미있게 시청
했는데 이 드라마 역시, 매회차 안
운 회차가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보
았다.
특히 박보검팬인 나는 더없이 즐겁
게 시청했다
가족 단톡방에
이모, 엄마,, 동생들 있는 친정 식구들
톡방에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꼭 보라
고 홍보까지 했다.
엄마도 막내 이모도 보고 곽 티슈 한개
를 다 쓸 정도로 울며 보았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내가 살았던 시대 배경이
여서 그 시절 공감대로 시청했다고 했
다.
어쩜 대사 하나하나 가슴에 박히던지
난 수많은 대사 중에.. 특히 꽂히는 대사
가 있었다.
집장만을 한 애순이가 관식이에게
"월세 아니고 전세 아니고 샀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신혼 첫날밤에 신랑한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신랑이 신혼 여행지에서 첫날밤에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까? 넌 어떻
게 살고 싶어?"
가족계획도 아니고 어떻게 자기랑
살고 싶은지 물었을 때
"난 20대에는 20평에서
30대에는 30평에서
40대에는 40평에서 내 집에서 살
고 싶다고 했다
"그거면 돼? 그게 네 꿈인 거야?"
하길래
"난 평생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
런가 나중에 자식 낳으면 이사 다
니기 싫어서.."
부모님이 열심히 사셨지만 내가 아
주 어릴 때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작은 보금자리를 잃고
결혼 전까지 전셋집을 전전긍긍하
고 살아왔다.
해마다 전셋집 올려 달라고 주인이
그럴 때마다 엄마는 형편에 맞게
이 동네 저 동네 이사 다니시기 바빴다.
아마도 그래서 그랬나 보다.
신랑은 시골에서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그런 자기네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신랑은 그때 나한테 한 약속 하나는
관식이처럼 지켜 주었다.
부모한테 손 한번 안 벌리고 본인 힘
으로 자수성가해서
20대에 신혼집 24평 전셋집에서
몇 년 산 거 말고는
30대에는 30평,, 우리 집이 생겼고
40대 때는 40평,, 우리 집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살고
있다.
며칠 전에 신랑한테
" 자기야, 고마워"
했더니
"뜬금없이 뭐가?"
라고 한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나랑 한 약속 잊지 않고 해 준 게 고
마워서..."
"무슨 약속!"
"집 약속, 내가 신혼 때 말했던 거
자기가 열심히 살아서 우리 집이
있는 것 같아서..."
"아! 맞다 근데 진짜 그때 좀 당황스
럽긴 했는데 네가 하도 진지해서 나
도 지켜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할 수만 있으면 집 장만을 빨리 해야
겠다 그랬던 것 같아"
지금은 친정 부모님도 오래전에 집
장만을 해서 살고 계신다
엄마는 특히 첫째 딸이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늘 좋아하신다.
동생들보다 첫째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계신 사람처럼...
그 시절 나도
애순이처람 절박하진 않았지만 내
집에 대한 애착은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며 그 대사가 슬
픈 대사도 아니었는데도 눈물이...
부모 도움 1도 없이 오롯이 묵묵하게
성실하게 소처럼 열심히 일해서 집장
만 약속을 지켜 준 신랑한테 드라마
를 보며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
우리 신랑은 관식이처럼 아내 바라
기는 아니지만,, 소처럼 우직하게
가는 거는 닮은 것 같다.
그의 26년 수고와 노고가 없었다면
없었을 우리 집,
여보야!
폭싹 속았쑤다!!
나는 세상에서 우리 집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