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경청하기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수원역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느지막이 오후에
헤어지게 되어 7시쯤 택시를 탔다.
수원역은 택시 정류장이 두 군데가
있다.
세류동&오산&병점 방향 쪽
그 외 다니는 방향 쪽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차 한잔
나누며 오래간만에 여유 있게 놀다가
택시를 탔을 뿐이다.
"ㅇㅇ동 아파트로 가 주세요"
전화기로 통화를 하고 계시던
운전기사 아저씨는 수화기를 끊으
시지 않으신 체, 고개만 쌀짝 돌려
"ㅇㅇ 아파트요"
하신다.
"네."
그날따라 비도 보슬보슬 오기도
하고 오랜만에 외출이 피곤했는지
자꾸 눈커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 10분, 잠깐 졸았을까?
창밖을 보니 이상하게도 평상시에
가던 길이 아닌 거 같아 보인다.
"아저씨,ㅇㅇ아파트 가는 길, 맞나요?"
"네"
"처음 가는 길 같아서요"
"아가씨가 저보다 길을 더 잘 압니까?
제가 이래 봬도 택시 경력만 20년째
입니다"
기사 아저씨가 기분 나빠하시는 듯
싶어 그냥 내가 모르는 길인가? 싶
어서 그냥 있었다.
그런데 진짜 이상 한 거다.
"저 죄송한데요 조원동 ㅇㅇ아파트
가는 길 맞나요?"
그제야 기사 아저씨가 당황해하시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부리신다.
"처음부터 조원동 ㅇㅇ 아파트라고
하셨어야지요. 여긴 병점 ㅇㅇ 아파트
인데..."
"저 탈 때부터 조원동 ㅇㅇ 아파트라고
했고요 기사 아저씨가 전화하시느라
제대로 안 들으신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탄 택시 정류장 쪽은 병점
방향으로 가는 택시 정류장이 아니고
그 위쪽으로 더 가셔야지 되는 데
기사님이 잘못 정차하신 거 같은데요"
본인이 분명히 잘못해 놓고 인정도
안 하시고 오히려 성질을 부리시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건 다 나무고 어둑
어둑하니 무서워서
"그럼,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거
로 해서 조원동 ㅇㅇ 아파트로 가 주
세요"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싶은 마음으로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을
하시고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시며
안전하게 태워다 주셨다.
돈은 조금 더 지불했지만
큰 일없이 안전 귀가 한 거에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집에 와 검색해 보니 병점에도
우리 아파트와 똑같은 이름의 아파트
가 있긴 했다.
그런데 이건 진짜 내 실수는 0.1%도
아니고 전적으로 그 기사분이 실수였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 하시
던 그 기사 아저씨는 진짜 조금도 찔리
지 않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