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한 계절은 없었다

병마와의 사투

by 문학소녀

아픔은 갑자기 찾아온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저의 작품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발가락부터

엉덩이까지 전기에 감전되듯 저

리는 고통을 겪었다

이러다 젊은 나이에 앉은뱅이라

도 되면 어쩌나 싶어 무서웠던 나

의 40대는 두려움과의 오랜 싸움

이 시작이었다


첫 시작은 중학교 3학년 때 교회에

서 간 수련회를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에 관광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반이나 뒤집힌 사고를 겪었었다 그

당시에 전도사님이 인솔자셨는데

"얘들아 다들, 괜찮니? 아픈 사람 손

들어 봐?"

했던 것 같다 다들 겉표면상 피를 흘

리거나 겉으로 보기에 심하게 다치

거나 하지 않았고 중학생 아이들이

그 상황 자체를 깊이 인지 하기보단

그마저도 색다른 경험으로 치부했고

전도사님도 애들이 괜찮다고 하니

그냥 무던히 넘기셨던 게 어쩌면 화근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는 중동국가에서 타향살이

하셨고 엄만 동대문&남대문 시장에서

새벽에 옷을 떼어 와 옷 가게를 하셨다

난 1남 2여의 장녀이고 늘 애어른 같은

아이였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 걱

정하실 까 싶어 뭐든 참는 아이


고등학교 2학년때였나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허리가 시큰 하니 아파서 주저

앉았다 허리가 너무 아파 학교도 못 가

고 동네 병원에 가서 약만 타 며칠 먹었

던 것 같다 엄마가 성남 모란 시장에서

지네 가루, 홍화씨, 사 오셔서는 허리 요

통에 좋은 거라면서 자꾸 먹였던 것 같

다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엔 또 며칠 아

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낫기도 했다


겷혼하고 큰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신

중독증으로 몸무게가 167에 45킬로

이던 내가 7개월 차 접어들자 167에

80킬로나 되었다 배가 너무 나오다

보니 허리가 끊어지듯 아프고 부종

또한 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왕절개로 4킬로나

되는 큰애를 낳았다


그 당시에 대학 병원에서

"인영 씨는 첫아이도 아들이고 하신데

자식 욕심이 크지 않으시면 그만 낳으

시죠 허리도 안 좋으시고 첫애 때 임신

중독증 걸리신 분들은 또 걸리실 확률

이 높으셔서 위험합니다"

하시는 거다 그때 알았던 거다 내 허리

상태가 안 좋다는 사실을


가래로 막을 거 호미로 막다 보니 탈이

났던 거다

"어디 심하게 부딪친 적 있으세요

4,5번 뼈가 많이 안 좋으신데 교통사고

라도 당하신 뼈처럼.."


내 잘못이 어쩌면 제일 크다 부모님 속

상하실 까 싶어 그날의 교통사고를 말

씀 드리지 않았고


둘째는 계획에 없었는데 생겼다 친정

어머니는 큰 아이때 힘들게 낳고 수술 중

에도 피가 모자라 수혈 10팩이나 했었

던 경험을 하시더니, 너 그러다 잘못 돼

면 어쩌니? 하며 지우라고 하셨고

시어머니는 낳으라고 하셨다 애아빠도

하나보다는 둘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분위 기였고 나도 태몽이 주변에서 딸 꿈

이란 말에 낳고 싶었다


큰애 때보다 작은애는 다행히 그다지 힘들

게 낳지는 않았지만 또 아들이었다


둘째 아이 태어나고 100일 차에 사단

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하반신 마비

가 갑자기 왔고 119로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했고 그게 1차 수

술이었다


아이들 중학교 때였나! 그동안 건강히

잘 지냈었는데 또 갑자기 오른쪽 다리

마비가 또 찾아왔고 이것저것 시술을 해

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또 2차 허리 수

술을 했다

거의 30대 중반부터 40대는 2번의 수술

과 회복으로 보낸 듯하다


그럼에도 또다시 찾아온 2016년에 고통


빈센트병원, 아주대병원을 거쳐 이번엔 서

울대학병원을 갔다

그곳에서 <척추 수술 후 통증 증후군> 이

라고 하셨다

너무 이른 나이에 허리 수술을 하신 게 그

원인이란다 그 당시에도 하반신 마비가

와서 하게 된 수술인데 그게 원인이라니...


처음에 교통사고 났을 때부터 나의 시련

은 어쩌면 생겼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계

속 흘렀다 완치 판정이 어렵다고 이젠 수술

도 못 하시니 최대한 허리에 무리 안 가게

다치거나 그러면 큰일 납니다 하셨다


"고통이 심한데요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요"

그 뒤로 서울대 병원 통증학과를 다니며 수

술이 아닌 약물 치료와 너무 심할 때는 시술

을 하며 지냈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았

다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다

부작용으로 장천공이나 비몽사몽 어지러움

이 있을 수 있어요 하셨다


한 번은 아이들 아침 먹여 학교에 보내고 약

을 먹었는데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올 때까

지 비몽사몽인 적도 있고 진통제 약이 독해

서 인지 속을 늘 훑는 느낌이기도 했다

간호사 친구에게 말하니 친구가 약을 보고

는 이거 암환자들이 먹는 진통제인데 하고

는 뉸물을 보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나의 상태는 통증수치 8

여자가 애 낳는 고통의 수치가 7이라고 하

셨다 진짜 다리가 너무 아파 차라리 다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했다


2016년, 거실에 요를 피고 거실생활을 했

다 다리가 아프니 화장실이 가까운 거실에

서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두고 지내야 했다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때였는데 지방에

서 안자고 TV를 시청하다 자꾸 소파에서

잠이 드는 거다

방에 들어 가 자라 해도 안 듣고 사춘기여

서 그러나 보다 하고 말았다

다음날 둘째 아들

"엄마, 형이 왜 자꾸 소파에서 자는 줄 알

아? 그거 엄마 지켜 주려고 하는 거래!"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수도꼭지를 튼 듯 눈물이 또 멈추지 않는

다 나의 아픔에 나의 고통에 눈이 멀어 사

랑하는 이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딸이 아프다는 이유로 하루에 한 번씩

본인 키와 덩치보다 큰 자식을 씻겨 주

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몇 년을 오시

는 엄마, 아프다는 이유로 신경 못 써

주기도 하는 데 늘 밝게 커 주는 아이

들, 집안에 와이프가 며칠도 아니고

몇 년을 병마에 빠져 있는데 한 번도

짜증 안 내고 버티어 주는 남편,,,,


이렇게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나를

둘러싼 이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구석

에 처박아 놓았던 숨을 불어넣었다


조금씩 조금씩 집에서만 처박혀 있

던 내 삶을 다시 밖으로 꺼내어 놓았다

남들에게 다리 저는 모습 보이기 싫어

불편해 다니지 않았던 나를

햇살 좋은 날,, 바깥으로 내 보냈고 예

전의 행복했던 삶으로 다시 옮겨 놓으

려고 많이 노력했다

약 타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수치

검사상 통증 수치가 많이 감소되었다

며 진통제를 줄이셔도 될 거라 하셨다


사랑하는 이들의 도움으로 나는 현재

통증이 많이 줄어 잘 살고 있다

이병이 날이 따뜻하면 좀 덜 아프고

날이 추워지면 아프다

할머니병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약물 치료와 시술들로 인해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던 다리도 회복 중이다


나는 느리지만 조금씩 헤엄쳐서 육지로

나오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이들~

사랑하는 친정식구들이 계셨기에 가능

했다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이고 싶

고 건강한 아내이고 싶고 건강한 딸이

되어 드리고 싶다


우리 엄마, 늘 나 아플 때마다 미안해 하

신다 내가 무지해서 너를 더 많이 아프게

한 것 같다고 속상해하신다


나는 안다

내가 건강해야 내가 행복해야 우리 가족

들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아프고 나서야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날이 궂거나 추우면 통증이 생기

기도 하지만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담으며 살아간다

늘 나를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

이 있고 나를 사랑하는 내가 있기에...


죽기전에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다

1,책 출간 (시집,수필집,소설)

2,친정엄마랑 제주도 한달 살기

3,동네 커피셥이라도 빌려 작은 시화전

을 하고 싶다


나는 글쓰고 그림 그릴때가 제일 행복하

다 학창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못했던

그림,,

24,22살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조금

멋진 엄마의 모습을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을 바라며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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