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추억
사람들은 다 한 가지씩 결핍을 가지고 산다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가 안 계시거나 부모님이 이혼 하셨
거나 그런 경우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에겐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고
난 아직도 아버지가 낯설다
조금씩 아버지랑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아버지는 영양사&조리사시다
내가 어릴 때는 빙그레 회사에 다니셨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기억이랄까? 추억이
랄까? 좋은 기억이라면
퇴근길에 아버지가 늘 사 다 주시던 부라
보콘은 내게 늘 최애 간식이었다
6시에 퇴근하시던 아버지가
"영이야, 아이스크림~"
하고 건네주시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
던 아이스크림,,,
나이 50이 넘어도 여전히 내겐 부라보콘
이 최고의 아이스크림이다
내가 6살 때 4살 차이 나는 동생이
있었음에도 엄마가 남동생을 낳으셨다
딸딸 만 낳고 아들이 없어서 시부모님
눈치를 보셨다는 엄마
지금이야 딸, 아들 상관없이 잘 낳아
키우자 였지만 엄마 시절엔 딸만 낳으면
그리 눈치가 보였던 시절이였나 보다
아이가 하나 더 느니 아버지가 가장의
무게를 더 느끼셨고 그 당시에 현대건설
중동지역에서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다
는 공고를 보고 신청하셨다신다
그래서 난 6살 이후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처음에 아버진 한몇 년 생각하셨다던데
그 처음이 이리 길어질 지 몰랐다고..
3~4년전에 해외 일을 다 정리 하셔서
귀국하신 아버지
중간중간 휴가처럼 일 년에 한두 번씩...
크리스마스 날 굴뚝을 타고 몰래 와서
상자를 두고 가는 산타클로스처럼 아빤
그런 분이였다
잠자고 일어나면 아빠가 계셨고 선물도
가득 사 오셨다 그리고 또 며칠 있으면 또
비행기를 타고 가셨다
엄마와 동생들이 크게 아플 때도 엄마가
힘드실 때도 아버진 우리 곁에 안 계셨다
학교입학 졸업, 생일 때도 안 계셨다
주변에서 엄마한테 젊은 여자가 남편
없이 사는 게 안쓰럽다고 많이 챙겨 주
시곤 했다
난 1남 2녀의 장녀,,,
4살, 6살 차이 나는 동생들에 비해
애어른 같은 아이였다
아빠가 안 계시니 어린 마음에 엄마랑
동생들을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옷 장사를 하셨는데 종종 새벽에
남대문&동대문 옷 떼러 가면 따라 나섰
다
가게 청소나 정리도 도와 드리고 동생들
숙제도 봐주고
지금도 우리 엄만 동생들보다 날 더 많이
의지 하신다
나도 아빠와의 기억이 몇 개 없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랑 헤어진 동생들
아빠와 함께 한 시간 4년 차
아빠도 우리를 어려워하시고 자식인
우리도 여전히 아빠가 낯설다
물론 처자식 위해 평생을 타향 살이하며
바깥에서 살아오신 아빠도 고생이 많으셨
을 것임을 머리로는 안다
부모에 대한 감사함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
가족도 살을 비비고 살아왔어야 하는데
그런 게 단절된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서
먹함이 베어 있다
아빠&엄마도 모두 내향적인 성격이셔서
우리도 셋 다 내향적인 성격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장녀이다 보니 왠지 이런 가족 관계
도 내 책임인 것 같고 나라도 조금 달라지면
동생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한마디
라도 아빠와 더 하려고 하고 우리 가족의 단
합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둘째는 아버지랑 셋 중에 제일 많이 서먹
해한다 막내 동생은 그래도 남자라고 아버
지를 더 이해해 드리려고 하는데 여동생은
쌔하다
"선아,, 부모님이 어제랑 오늘이 또 다른 거
같아 언니 보기에는
아빤 엄마랑 다섯 살 나이 차가 나서 그런지
더 많이 요새 나이 들어 가시는 게 느껴지
더라 아빠도 우리랑 헤어져 산 시간이 길다
보니 자식들 눈치를 보더라고 우리가 자식
이니 좀 더 다가서자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언니말,무슨 뜻인지
더 안말해도 알지!"
"난 아빠가 여전히 어렵고 불편해 노력은
해볼게 언니가 애쓰는 거 알아"
해외에서 몸이 불편해서 일을 접고 나오신
아빠,, 한국에 나와 가족과 살려고 노력을
안 해 보신 건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아빠와 한 1년 살았었다
그런데 아빠가 고국에서 일하시는 걸 어려
워하셨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살다보니
그곳 생활이 더 편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나가셨고 우린 그렇게 긴 헤어짐을
맞이 했다 그러니 늘 우리에겐 아빤 손님
같았다
중동지방 여러 곳에서 함박짐 사업을 하신
아빠덕에 우리가 살아 왔다
20대 어린 나이에 시집와 남편 없이 이것
저것 하시며 우릴 키워오신 엄마
아무래도 엄마랑 함께 살다 보니 아빠의 삶
보다 엄마의 삶이 늘 안쓰러웠던 우리다
아빤 어쩌면 그런 부분은 서운해하실지 모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작년에 아빠 건강이 좀 더 안 좋아지시는
게 느껴졌고 그럼에도 자식들한테 용돈
받을 나이 아니라며 아파트 경비일 하시는
아빠를 보면 너무 속상하다
"아빠 나이도 계신데 이제 자식들 용돈
받고 좀 편히 쉬세요"
해도 말을 안 들으신다
"아빠, 아직 일두기 싫다 손주들한테 조
금 용돈도 줄 능력은 된다"
하신다
자식들 커 가는 모습은 함께 해 주지 못
했지만 손주들 커가는 모습보며 용돈도
주고 싶어 하시는 아빠다
난생처음으로 아빠 손을 잡아 드렸다
"아빠, 그동안 애쓰셨어요 아빠가 열심히
살아 오신 덕분에 저희가 잘 컸네요
감사합니다"
엄마한테는 늘 마음 표현 하며 살아왔는데
아빠한테는 못 하고 살아 온 것 같다
내 나이 50이 되어 처음 잡아드린 아빠의
손...
아버지가
"고맙다 딸!"
하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동생들도 조금씩 아빠한테 다가서려 한다
가족은 그런 것 같다
내 나이, 50이 넘었다
6살 아빠의 부라보콘을 기다리던 아이는
없지만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
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나는
부모님도 동생들도 챙김 하며 소통하며 살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