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공항을 나서자마자
거칠고 묵직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닥쳤다.
대륙의 끝이면서 바다의 시작인 포르투갈.
대륙과 바다의 에너지를 모두 담고 있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는 얼얼한 얼굴을 부여잡고
숙소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숙소가 있는 지역은 리스본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걸리는 근교 도시인
포르테 다 카사(Forte da Casa)라는 곳이었다.
분명 우리가 타야 할 버스 번호가
쓰여 있는 정류장이었는데,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공항 안내센터에 가서야 버스 정류장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지만
나와 아내는 무자비한 바람의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내 버스는 도착했고
우리는 25kg의 캐리어 두 개와
10kg의 배낭 두 개를 버스 안으로 욱여넣었다.
부피가 큰 짐을 들고 버스의 좌석에 앉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게다가 리스본의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이 버스에는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현지 주민들이 잔뜩 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꼼짝없이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한 달마다 나라에서 나라를 이동하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그 첫날이 한 달의 여행 중
가장 힘든 날인 건 변함이 없다.
그래도 숙소에 잘 도착해서 짐을 풀고,
맛있는 것을 먹은 후에
개운하게 씻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뿌듯함, 상쾌함, 기대감, 편안함과 같은
온갖 긍정적인 감정들이
버무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힘을 짜내서
커브길 때문에 이리저리 밀리는
무거운 캐리어의 손잡이를 단단히 붙들었다.
비록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좀 더 걷기는 했지만,
무사히 한 달간 머물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스본의 근교 도시에 숙소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었지만,
40분 정도의 시간이라면
리스본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할 버스의 운행 시간을 알려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한 달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교통카드도 만들었다.
리스본의 버스는 도착 정보가 정확한 편이었고,
시내에는 지하철, 트램, 페리, 기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있어서 편리했다.
무제한 교통카드는 10만 원이 넘는 가격이라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유럽의 교통비가 비싼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네를 떠나
신나게 리스본 시내로 향했다.
이런저런 교통수단을 타는 재미도 있었고,
어디서나 통과되는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쾌감도 있었다.
하루 종일 리스본의 관광명소들과
시내의 볼거리들을 구경하다가
늦은 밤에 숙소에 도착할 때면 뿌듯했다.
하지만 이런 일정들이 며칠간 지속되다 보니
리스본에 가는 게 점점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 되었다.
숙소에서 리스본까지 버스로
40분이 걸린다고 해도
특정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편도로 1시간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일쑤였다.
외국에서 타는 버스나 지하철은
분명 이색적이고 독특한 여행 콘텐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저 익숙한 ‘탈 것’이 되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진동은
고스란히 육체에 누적되어 피로가 쌓이게 된다.
좋지 않은 날씨도 피로를 더해 주었다.
우리가 포르투갈을 여행한 3월 한 달 동안
절반 정도는 오락가락 비가 오고 강풍이 불었다.
한국에서 쓰는 작은 접이식 우산으로는
리스본의 바람을 버텨낼 수 없었다.
리스본 사람들이 튼튼한 장우산을
들고 다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이유들로
리스본에 가는 일정은 줄이고,
숙소나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게 되었다.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우리가 머무른 동네에서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고,
2일 정도는 리스본에 다녀왔다.
아마 여행 초기의 나였다면
조금은 조바심이 났었을 것도 같다.
하나라도 더 먹어보고,
한 군데라도 더 가보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일 년간 여행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숙소와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머무른 에어비앤비 숙소에는
호스트의 어머니가 살았는데,
일 때문에 밤늦게 들어오셨다가
아침에 나가셨기 때문에 사실상 넓은 집 전체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3월의 리스본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어느 순간 비가 오고 있었고,
금방 갰다가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집 밖에서 이런 날씨를 상대하려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겠지만,
집 안 거실에 편하게 앉아
변화하는 날씨를 보고 있으면
그것처럼 생동감을 주는 것이 없었다.
유럽의 창문들은 정말 큼직큼직한데,
포르투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커다란 창문은 가공하지 않은
생생한 풍경을 보여주는
고화질 와이드 TV의 역할을 해서,
하루 내내 창밖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여태껏 봤던 무지개보다
많은 무지개를 포르투갈에서 봤던 것 같다.
비바람과 먹구름에 내줬던 자리를
다시 태양이 차지하면 어김없이 무지개가 나타났다.
완벽한 활의 모양을 한,
또렷한 색깔의 무지개를 만나면
이곳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나는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포르투갈에 갔다면
커피와 에그타르트는 꼭 먹어봐야 한다.
포르투갈의 커피는 비카(bica)라고 부르는데,
아주 진한 에스프레소다.
그 강렬한 맛은 해양제국을 꿈꿨던
포르투갈과 잘 어울린다.
포르투갈 에그타르트의 정확한 명칭은
파스텔 데 나타(pastel de nata)인데,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먹는 에그타르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이 좋았다.
비카를 마시면서 파스텔 데 나타를
곁들이는 시간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꼭 리스본 시내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
오랜 시간 줄을 설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리스본의 어느 카페나 빵집을 가도
커피와 에그타르트는 훌륭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동네처럼
현지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역의 평범한 카페에서도
훌륭한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먹을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는 우리나라의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인 핑고도스라는 마트가 있었는데,
이곳 1층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에그타르트 세트는
1유로라는 착한 가격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서 자주 애용했다.
토요일마다 동네에 서는 시장에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며칠간 먹을 신선한 야채와 과일, 달걀 등을
잔뜩 사도 3만 원을 넘지 않았다.
하얀 꽃눈이 달린 미나리 같은 브로콜리 라베나
주먹 쥔 손처럼 생긴 차요테처럼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식재료들을 요리해 먹으면
포르투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브로콜리 라베를 다듬다가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달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야채를 먹이면서 한동안 돌봐주었다.
포르투갈을 떠날 때
숙소 앞 정원에 놓아주었었는데.
달순아, 잘 살고 있니?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
소설책을 읽었던 것도 좋았다.
장기여행에서의 우선순위는
생필품과 식료품이기 때문에
많은 책을 갖고 다닐 수는 없다.
여행을 다니면서 독서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전자책이었다.
나는 파이 이야기로 이름을 날린 얀 마텔이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전자책으로 구매해 틈틈이 읽었다.
100년 전의 리스본과 포르투갈을 주요 무대로 한
이 책을 통해 당시 포르투갈의 시대상이나
빈민가였던 알파마 지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이 그때만 해도
아주 희귀했던 자동차를 타고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마을 부근을 지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의 자동차가 이 마을에 나타났을 때,
면도용 브러시를 든 이발사들과
얼굴이 거품투성이인 사람들이
쫓아 나와 쳐다보고,
아이들은 ‘뒤 칸에 말이 들어 있죠?’라고
천진하게 물어보는 이야기가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배경으로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즈음부터 시작했던 여행기를 쓰는 일도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이 아닌 어떤 외국의 가정집
거실 테이블에 앉아
큰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고민과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작업은 분명 고되고 힘들었지만
어쩌면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 중
하나일수도 있을 것 같았다.
꼭 서울과 같은 중심부에 살지 않더라도,
내가 충분히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의 방식이 있을 것도 같았다.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
주택가 곳곳에 걸려 있는 빨래들에
시선이 꽂혔던 이유는
그날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보통
창문 밖에 빨래를 널어놓는데,
비가 와서 다 젖더라도 빨래를 걷지 않는 것 같았다.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도 그러시기에
아주머니의 빨래를 우리가 들여놔야하나
말아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어차피 금방 비가 그치고 또 햇살이 비치니까
그냥 놔두는 건지,
아니면 오염되지 않은 비가 빨래를
더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같으면 한 방울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부리나케 빨래를 걷느라 난리가 났을 텐데.
포르투갈에 한 달간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장면을 바라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오는데도 걸려 있는 빨래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같았다.
마치 그 빨래들이 나에게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별 문제 아니라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