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의 한국인, 수평의 중국인

우리는 높이를 재서 행복하지 않다.

by 이철

한국인은 처음 만날 때 나보다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정한다. 말도 그래야 존경어를 쓸지 반말을 쓸지 알 수 있다. 만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그때부터는 등수를 잰다. 누가 일등이고 누가 이등인지. 누가 더 잘 나가고 누가 뒤로 처지는지.

중국인은 만나면 높이를 재지 않는다. 사실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의 사람들이 높이를 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이니 중국 사람들로 이야기를 한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중국 생활은 상당히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잘 몰았고 그 이유도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아 이래 서구나 싶은 것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이 그래서구나 싶은 일들의 뒤에는 다시 그렇구나 싶은 일들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평등 문화권 속에 있어 서로 높이를 재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 신분의 고하는 어느 사회나 있고 중국인들도 다 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높이는 같다 내지는 높이는 이야기하지 않는 묵시적인 약속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처음 만나도 시쳇말로 맞먹는다. 젊은 친구들이 그럴 때는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반대로 노인을 만나도 네네 하며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생활을 하며 다드 서로 맞먹는 문화권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 분들에게 평이 안 좋다. 나보다 소위 높이가 낮은 친구들은 아 그 양반 참 괜찮네 하며 좋아하지만 나보다 높이 높은 분들은 아니 그 고연 놈 하며 마땅치 않아하는 것이다.


왜일까?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높이로 재게 되었을까?

우린 단군 할아버지 때부터 이랬던 것일까?

나는 정말 알고 싶다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을 인정하게 된 사건이 나에게는 있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는 창업은 젊은이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세상에 익숙해져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반목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노인들이 젊은이일 때 개선해 놓은 세상에 젊은이들은 불만을 느끼며 다시 개선해 나가는 이 시스템이야 말로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는 한 바디 엇붙였다. "아마 죽음은 진화의 결과일 거예요".


나는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을 듣고 너무나 공명했다. 바로 그렇다. 우리는 이런 메커니즘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년으로 들어가야 하는 나의 사고는 당연히 더 이상 이 세게에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각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장사가 안 되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다. 상장사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친구는 이제 익숙해져서 노인이 되고 죽겠지만 노후 자금을 마련해 놓지 못한 나는 계속 이 세계가 생경하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젊은이는 아닐지 모르나 늙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 한국인들은 왜 높이를 잴까? 중국인들처럼 높이는 다들 같은 것으로 하면 안 될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높이를 따졌나? 존경어가 그렇게 복잡한 것을 보니 엄청 오래전부터 높이를 따진 모양이다. 그래서 상급생 만나면 경례해야 하고, 선배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하고, 상사에게 충성해야 하고, 아이고.


높이를 따지면 피라미드의 꼭대기만 행복하다. 등수를 따지면 등 수 외의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다. 그래서 우리 한국은 불행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래서 세상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불만이 많다. 그래서 한국인은 젊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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