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씨는 한국인?

그럼 이 씨는 중국인?

by 이철

집사람의 친구들이 있다는 이유로 입주하여 수 년째 살고 있는 우리 연립 주택 단지는 건물 외에는 생색내기 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녹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입구는 거리에서 조금 들어와야 있는데 이 이 입구에 유명한 유지원이 자리하고 있어서 아는 사람 외에 잘 못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는 그런 지형의 장소이다.


하지만 원래는 한적했던 단지 앞 길이 점점 차량이 늘어나더니 유치원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원생들의 등하굣길에는 부모들이 고급 자동차를 몰고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우리 단지 길목을 점유하기 시작했고 주민들의 불편함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길 건너 공터에 중국 국제항공 건물이 커다랗게 들어서더니 그 옆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원래는 공터 뒤 쪽에 공항 공업 단지라는 것이 있어 공장들이 있던 터인데 단지 주민들의 출근길과 공업 단지의 출근길은 서로의 시간이 빗겨 나가며 별다른 불편은 없던 차였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출근 길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대각선 방향의 큰 공터에 대형 중국 전람회장이 들어섰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국의 위상에 발맞추어 시내의 전람회장을 재개발하고 변두리인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전람회장이 생기니 그 반대편에 5성급 호텔이 들어섰다. 평시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인기 있는 전시회나 행사가 있으면 이제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간의 경험을 볼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전람회장 아이템은 자동차 전람회이다. 모두들 새로 나온 자동차가 궁금하다며 찾아가지만 사실은 모델 양들의 몸매를 보러 간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기도 하다.


독자 제현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 단지 앞길은 이제 도저히 한적한 연립주택 앞길이 아니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끔 찾아오는 단지 관리사무소 직원들에 의하면 북경시 순의 구에서 교통사고율 1위 장소가 우리 단지 앞이라고 한다. 공항으로 가는 차량, 시내로 출근하는 차량, 공업 단지로 출퇴근하는 차량, 시내로 출퇴근하는 공업단지 아파트들의 차량, 전시회로 오가는 차량, 순이의 공장에 출근하는 차량들로 도로가 꽉 막히게 된 것이다.


기쁘게도 몇 달 전에 단지 앞 길목을 돌아선 곳에 까르프가 들어섰다. 그러자 그 옆으로 각종 점포들이 들어선다. 음식점, 미용실, 약국, 제과점, 안경점, 세탁소 등등. 그래서 이제는 우리 단지 앞 대로인 천축로를 따라서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천축로 부근의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에서도 차를 몰고 오는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집값이 널을 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가격을 물어볼 흥미를 잃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가격이 되었다. 월세를 사는 필자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다. 다행이라면 월세는 내주시는 분이 필자 본인이 아닌 집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집사람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왜냐고? 월세를 내주시니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단지 주민들도 단지 앞 길목이 너무 복잡하다며 원성이 높아졌다. 그리고는 이윽고 공포의 아줌마 군단이 관리사무소를 쳐들어간 모양이다. 당신은 모른다. 몇 사람의 중국 아줌마들과 살기등등하게 지하실에 있는 자그마한 관리사무소에 쳐들어는 길에서 마주칠 때의 그 공포를... 북경 토박이 장 아줌마, 그리고 언제나 장 아줌마의 충실한 호위견인 왕 엄마, 산서에서 한가락했다는 곽 아줌마 등이 관리사무소를 엎어놓은 끝에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하고 경비 아저씨들을 두기로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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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아저씨들이 나타나서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이내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주민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지하는 것도 문제고 바쁜 출퇴근 시간에 차량을 막고 방문 사유를 물어대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제일 큰 불만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이다. 관리사무소에서 북경에 사는 인력들은 기본 인건비가 높아 외지인들을 고용한 것이었다. 누구도 이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한참을 이야기해야 간신히 단지로 들어오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인들이 이러할진대 필자는 어떻겠는가? 어떻게 해도 우리 경비 아저씨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사람과 함께 할 때에 우리 위대하신 집사람이 몇 마디 하면 신속하게 잘 통과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집사람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 저 사람 말 알아들을 수 있어?"

"아니"

"그럼 저 사람은 당신 말 알아들어?"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당신 말을 잘 알아듣지?"

집사람은 잠깐 멈칫하더니 대답한다.

"항상 웃는 낯으로 친절하게 그 사람들을 대하니까 그 사람들도 나를 기억하는 거야"

독자 제현, 나는 압니다. 어째서 집사람이 멈칫했는지. 집사람 원래 하려던 말은

"이놈의 미모는 외지에서 온 놈팡이들에게도 통하는구먼"

이라는 것을... 나는 집사라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왜냐고? 위에서 설명하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억제하고 무난한 말로 바꾸는 집사람의 초인적인 인내심과 자기 통제는 필자를 언제나 감탄하게 한다. 이런 집사람의 위대한 장점을 조금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도 단지 입구를 통과할 때마다 웃는 얼굴로 경비 아저씨들과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띄엄띄엄 쳐다보던 경비 아저씨가 차츰차츰 대답을 해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경비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면 경비 아저씨가 헤벌쭉 웃으며 차단기를 열어준단 말이다.


얼마간 지나자 어차피 서로 말이 안 통하는데 내 되지도 않는 중국어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씩 한국말을 섞어서 경비 아저씨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니하오 경비아저씨"

"!@#$$%^&***"

"그려 그려"

"*&^%%$$###"

"아 그렇구나. 수고하세요"

그리고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지나간다.


이제 나는 경비 아저씨를 왕 씨라고 부른다. 물론 이 양반이 성이 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모름지기 중국 아저씨 하면 왕서방이 정통 아닌가 말이다. 이제 대화는 좀 더 친밀한 단게로 격상되었다.

"왕 씨! 나예요 나!"

"!@#%&*$@"

"그럼. 알고 말고"

"^%#@%&**"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

"그러니까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

"오케바리, 안뇽~~~"

철컥!(차단기 열리는 소리"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단지 안을 걸을 때 지나치는 동네 아줌마들이 내 얼굴을 흠칫 흠칫 쳐다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놈의 인기는...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지나자 동네 할아버지들도 내 얼굴을 훔쳐보는 것이 아닌가? 무엇인가 있군 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어느 날 한 아줌마가 나에게 물었다.

"니스료우동더?"(너 6동 사람이지)

"스더"(네)

"니스나리라이더?"(너 어디서 왔니?)

"워스총분당라이더"(저는 분당에서 왔어요)

"아~ 분당"

그러더니 아줌마는 이 사실을 빨리 옆집에 가서 수다를 떨어야겠다는 눈빛으로 흥분해가며 발을 총총 굴러 지나가는 것이었다.

수 일 후 또 다른 아줌마와 마주쳤다.

"니스료우동더?"(너 6동 사람이지)

"스더"(네)

"니스허난라이더?"(너 하남에서 왔니?)

"워스총분당라이더"(저는 분당에서 왔어요)

"아~ 분당"

또 다른 아줌마

"니스료우동더?"(너 6동 사람이지)

"스더"(네)

"니스후난라이더?"(너 후난 성에서 왔니?)

"워스총분당라이더"(저는 분당에서 왔어요)

"아~ 분당"

"분당스 칭하이더바?" (분당이 칭하이 성에 있는 거지?)

"분당자이한구어"(분당은 한국에 있는데요)

"왓사이! 한구어"(뭬야~ 한국이라고?)

"나마니스한구어런?"(그럼 너 한국인이야?)

"스더"(네)

그러자 아줌마는 이 사실을 빨리 옆집에 가서 수다를 떨어야겠다는 눈빛으로 흥분해가며 발을 총총 굴러 지나가는 것이었다.

China_satellite.png

중국은 표준어인 보통화 외에 여러 지방의 방언이 존재한다. 100% 상호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기준으로 나누었을 때 60여 개의 방언이라고 하며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힘든 수준으로 나누었을 때 학자에 따라 120여 개에서 170여 개 정도로 나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 단지 주민들도 모두 경비 아저씨와 소통이 안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이기에 이렇게 사투리가 심한가? 그래서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경비 아저씨 고향 알아맞히기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단지 입구에서 한 놈팡이가 경비 아저씨와 잘 소통하는 것을 보고 아하! 이놈과 고향이 같구나. 이놈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면 경비 아저씨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되겠군 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줌마들이 나만 보면 말은 건네고 싶어 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사실은 북경에서 보기 힘든 잘생긴 아저씨에게 어떻게든 말이라도 한번 섞어 보고 싶은 것이 진정한 목적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집사람에게 배우지 않았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초인적인 자제력을 참고 무난한 대사로 바꾸어 말해야 한다.

"그럼 왕 씨는 한국인?"

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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