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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May 18. 2019

미토콘드리아 라이징 3

패왕별희

나는 아름답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육십이 넘은 내가 분장을 하고 소리를 내면 감탄하며 경외의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아무리 그들이 한 평생을 노력해도 아니 사실은 세대를 거듭하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나의 경지에는 오를 수 없다는 것을.


경극 무대에서 평생을 보내며 얼굴에 지분을 바르는 것을 꿈꾸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캐릭터에 맞추어 정형화된 화장을 단지 무대 공연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자기 얼굴이 아닌, 모든 개성을 지워버린 얼굴로 연기하고 싶겠는가? 누가 자기만의 연기가 아닌 누군지 구별할 수 없는 캐릭터 만의 후광으로 살겠는가 말이다.

“노사님, 손님입니다.”

내 눈에 어린 의문을 읽고 제자가 덧붙인다.

“외국인입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낯선 이와는 만나지 않는 규칙을 알고 있지 않나?”

물론 애제자 완룽이 나의 규칙을 모를 리 없다.

“어머니 냥냥의 소개라고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냥냥!

또 무슨 짓을 하시려고! 지난번에도 남자들을 잔뜩 보내 가르쳐라 해서 중요한 공연도 취소해가며 귀중한 시간을 둘여 혼신의 힘을 다 했건만 그 놈팡이들은 술이나 처먹고 여제자들이나 집적대다가 한 놈 한 놈 도망치자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객청으로 나와 이번엔 어떤 인간인지 쳐다보았다.

오 마이 갓!

나이는 오십 줄에 배불뚝이 대머리가 한 놈 서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아 두부살로 가득한 몸에 비만한 몸이 주는 중력이 견디기 힘든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신 땀을 닦고 있었다.


뭐냐 이 종자는!

아무리 어머니 냥냥의 소개라지만 입맛이 썼다.

우리 문파는 정말 이런 식으로 쇄락해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뚱보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소개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펼쳐 본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어머니의 절망을 옆에서 보며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괴로웠던가! 사랑하는 여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남자로서 나는 평생을 살아왔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이 시간에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남자를 찾은 것일까?


나는 대머리 배불뚝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저 인간이?

정말이지 조금은 자기 스타일에 신경을 쓰란 말이다... 저 인간은 너무나 매력이 없는 덕후 스타일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내었다.

어머니가 옳다. 저 인간이 얼마나 못나 모이던 우리 일족에 있어 이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어머니의 지시를 온전하게 완수하여야 만 한다.

나는 배불뚝이를 향해 말했다.

"따라오게"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환갑을 넘은 노인네라고 알고 있었지만 상당히 피부도 깨끗하고 청수한 모습이었고 조금은 여성적으로도 보였다. 아무튼 무대에 서는 사람 특유의 매력이 있는 중년으로 보였고 내가 젊은 여자라면 결혼까지는 몰라도 한동안 연애 상대가 되어 줄 만한 정도의 준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뭐.

상대는 말하자면 일종의 연예인이다. 나는 말하자면 펑퍼짐한 일반인 덕후 아닌가.

이해한다 이해해라고 되뇌며 그를 따라갔다.


갑자기 그가 멈춰서 돌아서는 바람에 부딪힐 뻔했다. 그는 혀를 츳츳 차더니 나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사 명양이다. 사 노사라고 불러라.”

나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다시 걷기 시작한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매일 회사 일이 끝나면 여기로 오너라.”

“1년 안에 몸을 만들어야 하니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당분간 음식은 먹지 말고 여기 와서 내가 주는 것만 먹어라”


그의 발걸음은 경쾌했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옆으로 물러서서 길을 비켜 주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존경의 빛이 가득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모두들 '사 노사, 사 노사'하면 인사를 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노사는 선생님, 스승님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건물 안의 작은 정원에 들어서더니 몸을 돌려 나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마"

"?"

웬 무공?

경극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무공?


"먼저 우리 일파는 태극권을 한다."

"태극권이라면 중국 사람들이 아침마다 하는 체조 말씀인가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체조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공이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100kg이 넘는 내 몸, 특히 뱃살을 주목하며 말을 이었다.

"태극권은 내가권이다. 그래서 둔하고 빠른 동작을 못하는 사람도 내공을 잘 익히면 유용하지."


그래, 나도 안다. 내공.

"저 혹시 그럼 장품도 쓸 수 있게 되나요?"

사 노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주 고수가 되면 거리를 두고도 기운을 전달할 수 있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무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달렸다."

"?"

난 체육이라면 질색을 한다. 어렸을 때 남들 다 하는 태권도 검은 띠도 못 따 봤다.

"전 운동이라면 젬병입니다."

"안다. 네 몸이 말해주고 있지 않으냐."

"하지만 내공을 수련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네 신체 조건과 관계가 있다."

"어떤 조건이요?"


사 노사는 다가오더니 내 손등에 자신의 손등을 가져다 대었다.

"마음을 비우고 내 기운을 받아들여라."

난 영문을 모른 채 내 손등에 와서 머무르는 사 노사의 손등이 주는 감각에 주목했다.

갑자기 사 노사의 손등 안에서 어떤 진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고속으로 회전하는 팽이 같은 것이었고 초음속으로 동작하는 심장의 박동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내 몸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손등 안 쪽의 피부에서 공명하는 느낌이었는데 점차 나선을 그리며 팔뚝을 지나  겨드랑이를 간질이더니 허리로 갔다. 허리에는 배를 둘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 처엄. 그러더니 다시 배꼽 아래를 지나 물건의 뿌리 부분을 거치더니 허벅지를 완만한 나선을 그리며 돌아 발가락 하나하나를 완주한 후 다시 배꼽 아래로 돌아와 이번에는 왼쪽 다리를 일주하고 겨드랑이를 거쳐 왼 팔뚝을 돌아 머리로 올라왔다.

진동이 머리에 다다르자 아득해지는 느낌이 나고 눈 앞에 노래지면서 별이 보였다. 진동은 정수리까지 올라간 후 다시 코, 인중, 목으로 내려와 결국 사 노사의 손등으로 되돌아갔다.


눈을 비비고 사 노사를 쳐다보자 그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

사 노사는 탄식을 하더니 혼잣말을 하였다.

"어머니 말씀이 정말이구나. 정말이야."

사 노사는 무척이나 부드러워진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태극권을 전수해 주마. 어머니에게 일 년을 약속했으니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 태극권 좋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지.

나는 그날부터 사 노사에게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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