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의 변화와 새로운 업무 방식의 도래
예상대로 세계 경제는 불경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엘-아이리언의 예언대로 각국 중앙 정부는 '갈 때까지 가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 연준이 0%대 이자율 시대로 들어감에 따라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최초로 0%대 금리 시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엘-아이리언은 이러한 중앙은행들의 정책은 매우 제한적인 효과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이미 예측한 바 있다. 엘-아이리언과 매우 동일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타이완의 왕하오(汪浩) 박사이다. 그는 이들 중앙은행들이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활성화 방안인데 비하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제 문제의 근본 원인인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이상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가능한 억제'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들과 견해를 같이 한다. 물론 필자와는 반대로 코로나의 긴 터널 뒤에 나타날 펜트 업(Pent-up)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모두 이번 사태의 본질이 경제 흐름의 어느 한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 19라는 원인으로 인하여 수요와 공급 양쪽 모두에서 동시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서 사상 초유의 사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용되었던 경기 진작책 등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할 것으로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리언은 게다가 이번 사태는 장기화될 것이라고 보았는데 그것은 문제의 원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 상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억제되기 까지는 상상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상상을 하게 된다. 즉 최근 들어 SARS, 조류 독감, MERS,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등 알지 못할 알파벳 이름의 전염병이 대규모로 출현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없어지거나 더 줄어들 것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제는 이러한 국제적 팬데믹 현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만일 이러한 전염병의 잦은 도래를 기정사실로 전제한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앞으로 영원히 달라지는 구조적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이 일이 글로벌 경제를 영원히 바꾸는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았는데 코로나 19 사채를 겪어 보니 미중 무역 전쟁 정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느껴지기 조차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 전쟁과는 달리 코로나 19 이후 우리들의 글로벌 경제 사회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전망이나 비전이 나오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고 이것이 구조적 변화로 고착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어떠한 변화사 있을 것인가를 상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감히 이러한 변화를 예측할 입장에 있지 않다. 다만 지금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남다른 지성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찾아보고자 한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 즉 Supply Chain의 변화이다. 이는 미중 무역 전쟁의 과정에 있어 많은 전문가들이 줄곳 지적해온 것인데 코로나 19 사태를 맞이하여 이제는 부동의 사실이 된 듯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노스이스턴 대학의 Supply Chain 전문가 Nada Sanders 교수는 그동안 미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들의 제조를 중국에 의지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하자 마스크의 공급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미국의 CDC는 안면 보호지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데 안면 보호지침이라는 것은 의학적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인데 공급망 문제로 인해 변경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https://news.northeastern.edu/2020/03/16/the-global-supply-chain-is-not-immune-to-covid-19/
결국 미중 간의 decoupling은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더욱 심화될 것이며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류 의견이다. 물론 이번 코로나 19의 미국 확산으로 인한 대책으로서 펜스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시적인 중국 상품 관세 잠정 철회를 건의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누가 보아도 이것은 일시적 조치이며 앞으로 전 분야에 있어서 중국에게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있는 제품부터 탈중국을 할 것이라는 것은 뻔하다.
하지만 공급망의 정비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현재 세계 최대의 의약품 생산 국가는 인도다. 하지만 인도가 생산하는 의약품의 재료는 중국이 가장 많이 공급하고 있다.(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mar/04/india-limits-medicine-exports-coronavirus-paracetamol-antibiotics) 이미 중국의 의약품 재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인도의 제약 회사들에게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타이완의 정치인이자 기업인인 레이 치엔(雷倩)은 향후 공급망은 지금까지와 같이 공급자와 소비자를 일직선으로 이어주는 방식이 아닌 지역 거점을 두고 지역별로 독립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따로-또-같이의 체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즉, 중국 대륙과 같은 경우 상품과 공급자가 전국에 걸쳐 분포하면서 만일 한 두 지역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대체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방식이 주류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당초 인터넷이 만들어진 발상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구조이면서 모두가 수평적으로 동등한 기능을 수행하고 어떤 수직적인 중심점, 즉 중앙 센터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분적인 파괴가 일어나도 남은 부분 안에서는 기능한다. 바로 비트코인의 동작 방식이 이러한 발상을 따른 것이다.
이 레이 치엔의 생각을 글로벌로 확대한다면 다음과 같이 전개해 볼 수 있다.
복수 국가 또는 복수 지역에 산재한 복수 공급자 체계
복수 국가 또는 복수 지역 고객 또는 시장의 필수적 구축
특정 국가 특정 진영에 독립적인 시장 또는 채널의 개발
참고로 현재도 중국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은 대륙의 넓은 판도를 커버하기 위하여 지역별로 물류 센터를 두고 있다. 이러한 물류 센터들이 온라인 쇼핑몰과 독립되어 운영된다면 레이 치엔이 이야기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현재는 알리바바나 징동 등 중국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은 자신의 물류 센터를 운영한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가끔 필자에게 이런 대형 온라인 사업자를 소개해 달라는 경우가 많다. 처음 협력하는 경우 이들 대형 온라인 사업자들은 일단 판매 대행으로 협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경우 한국의 중소기업은 이들의 전국 물류 센터에 지정하는 만큼의 상품을 재고로 가져다 놓아야 한다. 하지만 업체가 대형일수록, 상품의 판매 예상량이 많을수록 적어도 11, 2개월 예상 판매량을 재고로 가져다 놓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재고 자산에 대한 자금 부담이 상당히 크다. 결국 대부분의 한국 중소기업들은 처음에는 많이 팔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예상 판매량을 크게 불렀다가 최소 안전 재고 분량도 부담하지 못해 망신당하는 일이 많다. 결국 중간에서 소개하고 인맥을 동원한 필자로서는 한두 번 당한 낭패가 아니다. 투덜투덜...
하지만 레이 치엔이 이야기하고 있는 개념은 단순히 중국 각지에 물류 센터를 설치한다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 지역적으로 장애가 발생하면 언제든 신속히 그 장애를 다른 지역을 통해 우회하거나 해결한다는 것이며 최소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전환된다는 것은 언제든 고객이나 공급자 쪽에 문제 또는 큰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니 만큼 기업이나 직업에 있어 탄력적 대응 능력이 무엇보다도 크게 대두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언제 고객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전제라면 생산 시설의 확충도 보다 신중해지지 않으면 안 되고 또 한 공급자에게 몰아서 오더를 주기도 어렵게 된다. 그래서 탄력적 대응은 모든 것을 자기가 처리하기보다는 적절한 아웃소싱 또는 협업이 유력한 수단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원의 네트워크화와 그들과 충분한 커넥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좋은 신용과 평판을 쌓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까라면 까"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하청 업체 쥐어짜기 등이 어려워지면서 진정한 "완전 경쟁"과 유사한 상황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노력해 볼 일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런 전문가들의 시각은 그 기저에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향후 코로나 19 사태나 미중 무역 전쟁과 같은 decoupling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 현상이 된다면 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강해질 것이지만 사회적 활동은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터넷, 5G, 민주주의, 개인 프라이버시의 존중, 권위주의의 퇴색과 함께 앞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이후의 국제 경쟁에 있어 도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겠다.
이러한 업무 환경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 개인의 일하는 방식 또한 조직 발전 단계에 따라 기존의 피라미드형 구조나 매트릭스 조직이 아닌 진정한 의미로서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진화해 나갈 공산이 크다. 이미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재택근무라는 방식이 크게 대두되었고 교육 기관은 이미 전면적인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업의 조직 문화 진화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필자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원맨 경영'-'기능별 조직'-'사업부 조직'-'매트릭스 조직' 그리고 최종적으로 '네트워크 조직'으로 진화하는 설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싱 대적으로 느슨한 네트워크 조직 만이 '사회적 거리를 늘리고 경제적 거리를 줄이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가 되면 서구 문화에서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적함이 별로 없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뭉치고 어울리고 사람 간의 끈적함이 기본인 아시아 문화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한국은 일반적인 아시아 문화보다도 더 강한 사람 간의 관계가 강조되고 수십년간 누적되어온 군대 문화로 인해 조직에서 위아래를 나누는 경향이 강해서 더욱 이러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소위 '꼰대 문화'는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러한 네트워크 형 사회로의 이전에 있어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역시 복수의 선택이 불가능한 일들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선거제에 의한 민주주의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중국처럼 일당 독재를 하거나 심지어 일인 독재를 하는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기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소수의 재벌이 리소스를 독과점하는 체계가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만일 그저 단순히 지역 또는 국가의 구분이라면 해당 재벌과의 협력을 피하고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기업과 협력하면 되겠지만 첨단 기술을 재벌이 독점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글로벌 사화가 네트워크화하는 가운데 핵심 기술을 독점하는 기업이 생긴다면 전체 네트워크의 약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며 해당 기술의 영향력이 크고 넓을수록 그 영역은 프로세스가 정체되게 되며 전체 시스템의 약한 고리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향후 도래할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국가나 이념, 그리고 자본은 그 중요도가 감소하는 반면 기술과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창의력 그 자체를 어떻게 확보하고 양성하는가야 말로 그 사회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지 않겠는가?
미래의 사회에 있어서 기술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있었다. 소프트웨어에 있어서 오픈 소스 운동은 바로 이런 생각을 대변한다. 정부의 문건을 폭로하는 위키 리크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나 기관의 강압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텔레그램도 이런 방향의 소산물이며 디지털 화폐도 그 시작은 유사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고귀한 사상에서 출발한 행동의 결과들도 결국은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타락해 왔다는 것이다. 텔레그램이 불법 포르노의 유통 채널로 이용되고 비트코인이 범죄 거래에 이용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의 윤리와 법률은 이런 상황들을 위해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지고 발전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시각으로 우리나라의 법조계를 보면 21세기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19세기에서 멈춘 듯한 인상이다. 하기는 법률뿐이겠는가? 사회 각 분야에 광범위한 진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만하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고 경제적으로도 세계 10위의 강국이다. 군사력도 TOP 10 안에 있어 강력하며 첨단 기술에 있어서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IT 스킬이 좋으며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의욕이 높은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이 서로 분리되고 있는 미중 양쪽 진영 모두에 수용되고 있는 한국이라는 배경을 충분히 활용하여 각 분야에서 노력해 준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고 또 밝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