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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Mar 28. 2020

양극화의 퇴조

POLITICO 코로나 19가 바꾼 시대 시리즈 3

원제: A decline in polarization.


Peter T. Coleman는 고난도 갈등을 연구하는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이다. 다루기 힘든 갈등과 복잡한 과학 적용에 대한 그의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Peter T. Coleman

The extraordinary shock(s) to our system that the coronavirus pandemic is bringing has the potential to break America out of the 50-plus year pattern of escalating political and cultural polarization we have been trapped in, and help us to change course toward greater national solidarity and functionality. It might sound idealistic, but there are two reasons to think it can happen.

코로나 19가 우리 시스템에 가져다준 엄청난 충격은 50년이 넘게 증가해온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 이슈를 해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보다 강한 국가적 단합과 기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할지도 모른다. 이 말은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The first is the “common enemy” scenario, in which people begin to look past their differences when faced with a shared external threat. COVID-19 is presenting us with a formidable enemy that will not distinguish between reds and blues, and might provide us with fusion-like energy and a singularity of purpose to help us reset and regroup. During the Blitz, the 56-day Nazi bombing campaign against the Britain, Winston Churchill’s cabinet was amazed and heartened to witness the ascendance of human goodness—altruism, compassion and generosity of spirit and action.

첫 번째는 "공동의 적" 시나리오인데 외부의 위협을 맞이하여 내부의 차이를 문제 삼지 않기 시작하는 현상이다. 코로나 19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적이며 우리가 초기화하고 다시 그룹을 만들도록 목적의 특이점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56일간 폭격을 한 나치의 블리츠 작전 기간 동안 윈스턴 처칠과 내각은 인간성의 선함이 강화되는 것 - 이타심, 동정심, 그리고 관대한 정신과 행동 - 을 목격하여 놀라고 또 감동받았었다.


The second reason is the “political shock wave” scenario. Studies have shown that strong, enduring relational patterns often become more susceptible to change after some type of major shock destabilizes them. This doesn’t necessarily happen right away, but a study of 850 enduring inter-state conflicts that occurred between 1816 to 1992 found that more than 75 percent of them ended within 10 years of a major destabilizing shock. Societal shocks can break different ways, making things better or worse. But given our current levels of tension, this scenario suggests that now is the time to begin to promote more constructive patterns in our cultural and political discourse. The time for change is clearly ripening.

두 번째는 "정치 충격파" 시나리오이다.  그 간의 연구들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관계형 패턴은 종종 어떤 유형의 큰 충격이 그들을 흔들어 놓은 후에 더 잘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당장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1816년부터 1992년 사이에 발생했던 850개의 미국의 주 정부 간의 갈등들을 분석한 결과 갈등의 충격이 10년도 되지 않아 종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회적 충격은 다양한 충격을 가져다주며 보다 좋아지게도 보다 나빠지게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현재 받고 있는 긴장의 수준이라면 이 시나리오는 지금이야말로 보다 우리의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담론에서 보다 건설적인 패턴을 지향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시사한다. 변화할 때가 분명히 도래하였다.


Peter T. Coleman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하나, 현재 미국은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되어 있다. 둘,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이 양극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건설적인 패턴을 만들 수 있으니 노력하자. 이 메시지는 사실 미국보다도 한국을 주어로 놓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 한국은 누가 보아도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치열하게 양극화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뿐이랴 경제적인 격차 확대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역대 최대이다.  지역적으로도 갈등이 있고 종교적으로도 갈등이 있다. 아니 조금 더 확대해 보면 남북한 간의 갈등도 지구 상 어느 지역 못지않은 갈등을 안고 있다.


하지만 Peter T. Coleman는 이러한 갈등과 분리가 사회에 충격을 주어 흔들어 놓은 다음에는 더 잘 화합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럼 거꾸로 우리 사회는 아직 충분히 양극화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그리고 너무나 양극화되어 있다. 하지만 Peter T. Coleman의 말에서 찾아보면 한 가지가 부족하다. 그것은 "사회를 흔들지 않은 것"이다. 남북한의 대치는 남한 사회에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을 절대적으로 수용해 나가야 하는 압력을 존재했다. 거꾸로 우리 사회가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양극화가 제대로 우리를 흔들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시각에서 보면 '종북 프레임'은 이 역사적 방향에 가장 역행하는 행위일 수 있다. 사실 북한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의 위치에 있지 않은지가 오래이다. 그보다는 "짜증 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에 가깝다. 더 이상 북한이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 우리는 북한 또는 안보라는 프레임을 풀어 버리고 보다 양극화를 제대로 우리 사회 안에 풀어놓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게 하고 이에 대한 서로 간에 제대로 된 격렬한 토론, 심지어 비평, 비난까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상호 간에 충분히 치받고 끝장 토론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Peter T. Coleman가 이야기하는 다음 패턴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증오에 찬 혐오를 들어내기보다는 이성과 논리의 투쟁을 통해서 말이다.

https://www.politico.com/news/magazine/2020/03/19/coronavirus-effect-economy-life-society-analysis-covid-135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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