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O 코로나 19가 바꾼 시대 시리즈 15
원제: The rules we’ve lived by won’t all apply.
Astra Taylor는 캐나다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작가, 활동가 및 음악가이다. 그녀는 부채에 관한 약탈적 관행에 도전하는 셔틀 워스 재단(Shuttleworth Foundation )의 일원이다.
America’s response to coronavirus pandemic has revealed a simple truth: So many policies that our elected officials have long told us were impossible and impractical were eminently possible and practical all along. In 2011, when Occupy Wall Street activists demanded debt cancellation for student loans and medical debt, they were laughed at by many in the mainstream media. In the intervening years, we have continued to push the issue and have consistently been told our demands were unrealistic. Now, we know that the “rules” we have lived under were unnecessary, and simply made society more brittle and unequal.
코로나 19 바이러스 대유행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간단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선출된 관료들이 우리에게 오랫동안 내내 가능하고 실용적이라고 말해온 그 많은 정책들이 불가능하고 비실용적이었다. 2011년 월가 점령 운동가들이 학자금 대출과 의료 부채에 대한 채무 취소를 요구하자 주류 언론은 비웃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그 문제를 계속 추진해 왔고 계속해서 우리의 요구가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규칙"이 불필요했고 그저 사회를 더 불안정하고 불평등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All along, evictions were avoidable; the homeless could’ve been housed and sheltered in government buildings; water and electricity didn’t need to be turned off for people behind on their bills; paid sick leave could‘ve been a right for all workers; paying your mortgage late didn’t need to lead to foreclosure; and debtors could’ve been granted relief. President Donald Trump has already put a freeze on interest for federal student loans, while New York Governor Andrew Cuomo has paused all medical and student debt owed to New York State. Democrats and Republicans are discussing suspending collection on—or outright canceling—student loans as part of a larger economic stimulus package.
퇴거도 피할 수 있었고, 집 없는 사람들은 정부 건물에 수용되고 보호될 수 있었고, 재 때 요금을 내지 못했다 해도 수도와 전기를 끊을 필요가 없었고, 유급 병가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권리가 될 수 있었고, 담보 대출금을 늦게 갚는다고 압류로 이어질 필요가 없었고, 신용불량자들도 다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연방 학생 대출에 대한 이자를 동결했고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뉴욕 주(州)에 빚진 모든 의료 및 학생 빚을 일시 정지시켰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대출 징수 중단이나 학생 대출의 전면 해지를 논의하고 있다.
It’s clear that in a crisis, the rules don’t apply—which makes you wonder why they are rules in the first place. This is an unprecedented opportunity to not just hit the pause button and temporarily ease the pain, but to permanently change the rules so that untold millions of people aren’t so vulnerable to begin with.
위기 상황 하에서는 이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애초에 그런 규칙이 왜 규칙인지 궁금해진다. 이것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취약하지 않도록 규칙을 영구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다.
격렬한 주장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를 포함하여 과거 아시아의 봉건 사회에서도 때때로 시행되던 일이다. 빈부의 차이가 심해지고 가난한 백성들은 지주와 전주들의 횡포에 몰려 노비로 전학하고 기아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라는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했고 집에서 끌려 나오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현대 사회라면 응당 이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선심 공세를 베풀면 사람들은 나태해지며 요구만 많아지고 감사할 줄을 모르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필자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사람들이 고강도의 노동에서 '나태해지고'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개선 '요구가 많아지고' 그러한 개선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감사할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나라를 원한다. 설령 일부 사람들이 이러한 관용의 조치를 악용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악용을 못하게 하는 일이 국가의 역할이지 '30만원이 없어 목숨을 끊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부 악용을 이유로 빚을 탕감해 줄 수는 없다고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 엄청난 수 조원의 돈을 수십억의 연봉을 받아가는 재벌의 기업에는 잘도 지원하면서 어째서 오늘 먹을 라면이 없어 굶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학자금 융자를 갚도록 해서 안전 조치도 허술한 지하철 역에 가서 일하다 죽게 만드는 것인가?
필자는 Astra Taylor의 주장에 그대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내용도 지나치게 극적인 상황을 부각시켰다는 점도 인정한다. 어쩌면 목숨을 끊고 있는 사람은 그 필요한 금액이 '30만원'이 아니고 '50만원'일 수도 있다. 지하철 역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은 극히 적으며 대부분 365일 중에 364일은 무사히 귀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모녀들이 죽어가도 실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듣는 것은 "법"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규정"이 없어서 조치를 못하며 "에산"이 부족하고 "근거"가 없어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Astra Taylor의 주장에 동의해 보고 싶다. 그놈의 "법"도 없애고 "규정"도 없애고 "예산"도 없애고 "근거"도 없애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에게 언제나 들이대는 그놈의 "이유"도 없애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