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O 코로나 22
원제: The tyranny of habit no more.
Virginia Heffernan는 'Magic and Loss: The Internet as Art'의 저자이며 미국의 언론인 및 문화 비평가이다. 그녀는 New York Times의 스태프 라이터, TV 비평가, 잡지 칼럼니스트, 오피니언 라이터로 일했다.
Humans are not generally disposed to radical departures from their daily rounds. But the recent fantasy of “optimizing” a life—for peak performance, productivity, efficiency—has created a cottage industry that tries to make the dreariest possible lives sound heroic. Jordan Peterson has been commanding lost male souls to make their beds for years now. The Four-Hour Workweek, The Power of Habit and Atomic Habits urge readers to automate certain behaviors to keep them dutifully overworking and under-eating.
인간이란 매일의 루틴에서부터 급격히 바꾸어 버리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근래의 인생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환상 - 최고의 성과, 생산성, 효율 - 은 영웅적으로 들릴만큼이나 가장 건조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가내수공업을 창출해 왔다. Jordan Peterson(역자: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은 불쌍한 남자들에게 수년간에 걸쳐 침대를 만들도록 요구해 왔다. The Four-Hour Workweek, The Power of Habit and Atomic Habits(모두 책 이름) 등은 독자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적게 먹고 더 일하게 하기 위하여 어떤 행동들은 자동화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But COVID-19 suggests that Peterson (or any other habit-preaching martinet) is not the leader for our time. Instead, consider Albert Camus, who, in The Plague, blames the obliteration of a fictional Algerian town by an epidemic on one thing: consistency. “The truth is,” Camus writes of the crushingly dull port town, “everyone is bored, and devotes himself to cultivating habits.” The habit-bound townspeople lack imagination. It takes them far too long to take in that death is stalking them, and it’s past time to stop taking the streetcar, working for money, bowling and going to the movies.
하지만 코로나 19는 독자들에게 Peterson (또는 다른 설교하는 꼰대들)은 우리 시대의 리더가 아니라고 시사하고 있다. 그보다는 알 베르뜨 까뮈가 '역병'에서 가상의 알제리 마을이 전염병으로 말살된 것에 대해 한 가지 비난한 것을 고려해 보라 - 그것은 단조로움이었다.
Maybe, as in Camus’ time, it will take the dual specters of autocracy and disease to get us to listen to our common sense, our imaginations, our eccentricities—and not our programming. A more expansive and braver approach to everyday existence is now crucial so that we don’t fall in line with Trump-like tyrannies, cant and orthodoxy, and environmentally and physiologically devastating behaviors (including our favorites: driving cars, eating meat, burning electricity). This current plague time might see a recharged commitment to a closer-to-the-bone worldview that recognizes we have a short time on earth, the Doomsday Clock is a minute from midnight, and living peacefully and meaningfully together is going to take much more than bed-making and canny investments. The Power of No Habits.
어쩌면 카뮈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상식과 상상력, 기벽에 우리가 귀 기울이려면 독재와 질병의 두 망령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트럼프 식의 폭정, 위선, 정통 그리고 환경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파괴적인 행동들(우리의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운전, 육식, 전기 소비 등을 포함해서)에 빠지지 않도록 일상 존재에 대한 보다 광범위하고 용감한 접근은 이제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전염병 시대는 우리가 지구 상에 머무는 시간은 짧다는 것을 인식하고,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으로부터 불과 1분 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그리고 평화롭고 의미 있게 함께 사는 것은 침대를 만들거나 약삭빠른 투자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보다 본질에 근접하는 세계관에 대한 재평가된 인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습관에서 벗어나는 힘
어쩐지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여 지화자 하자는 느낌이 좀 드는 Virginia Heffernan의 이 문장은 필자에게는 잘 닿지 않는 문장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필자는 배불뚝이 대머리 중년 남자로서 이미 세상의 매너리즘에 함몰되어 버린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필자는 Virginia Heffernan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리라. 바로 나 같은 사람을 향해 그녀는 '습관에,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와!'라고 외쳐준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필자 같은 사람은 침대를 만들라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도 평화롭고 의미 있게 함께 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나 환자뿐일까 하는 의구심도 일어나게 한다. 어쩌면 Virginia Heffernan는 똑같은 사고에 사로잡혀 똑같은 생활양식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뿐인 우리 사회야말로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이 나타났을 때 전멸하게 되는 위험을 가지고 있노라고 말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본질에 근접하는 세계관"을 아직 갖추지 못한 필자 같은 사람은 오래전에 했어야만 했던 질문들, 우리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질문들을 이제 삐걱거리는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어 다시 되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