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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pr 01. 2020

예배 형태의 변화

POLITICO 코로나 19가 바꾼 시대 시리즈 9

원제" Religious worship will look different.


Amy Sullivan은  is Vote Common Good의 전략 담당 이사이며 TIME, Yahoo, Washington Monthly, National Journal의 편집자로 종교와 정치를 다루는 시카고에 기반을 둔 기자이다

Amy Sullivan

We are an Easter people, many Christians are fond of saying, emphasizing the triumph of hope and life over fear. But how do an Easter people observe their holiest day if they cannot rejoice together on Easter morning? How do Jews celebrate their deliverance from bondage when Passover Seders must take place on Zoom, with in-laws left to wonder whether Cousin Joey forgot the Four Questions or the internet connection merely froze? Can Muslim families celebrate Ramadan if they cannot visit local mosques for Tarawih prayers or gather with loved ones to break the fast?

많은 기독교인들은 두려움보다 희망과 삶의 승리를 강조하면서 우리는 부활절 국민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부활절 아침에 함께 기뻐할 수 없다면 부활절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의 가장 성스러운 날을 기념할까? 유대인들은 '유월절 시더스'가 ZOOM(인터넷 화상 서비스 이름)으로 치루어야 한다면, 그래서 친척들은 사촌 조이가 '네 가지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 연결이 그냥 멈춰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면, 유대인들은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어떻게 축하할까? '타라위흐' 기도를 위해 지역 사원을 방문하거나, 단식이 끝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수 없다면 이슬람 가정들은 어떻게 라마단을 경축할 수 있을까?


All faiths have dealt with the challenge of keeping faith alive under the adverse conditions of war or diaspora or persecution—but never all faiths at the same time. Religion in the time of quarantine will challenge conceptions of what it means to minister and to fellowship. But it will also expand the opportunities for those who have no local congregation to sample sermons from afar. Contemplative practices may gain popularity. And maybe—just maybe—the culture war that has branded those who preach about the common good with the epithet “Social Justice Warriors” may ease amid the very present reminder of our interconnected humanity.

모든 신앙은 전쟁, 디아스포라(역주: 유대인의 분산), 박해라는 혹독한 조건하에서 신앙을 유지해야 하는 시련을 이겨냈지만, 모든 종교가 같은 시간에 겪지는 않았다. 검역 기간 동안 종교는 지도자와 추종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개념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지역 신도들이 없는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설교에 간간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것이다. 명상 수행이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공동의 선에 대해 설교하는 사람들을 "사회 정의의 싸움꾼"이라는 별명으로 낙인찍는 문화 전쟁이 바로 지금 상호 연결되어 있는 우리 인류의 한가운데에서 누그러질지도 모른다.



Amy Sullivan은 이번 코로나 19의 상황을 비교적 단순하게 원격 의료나 원격 교육과 같이 예배를 원격으로 본다는 정도에서 다루고 있다. 물론 일차적으로 Amy Sullivan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필자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번에 보여주고 있는 종교계의 모습에 대하여 한 마디하고 싶다. 종교는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큰 시련이 있을 때마다  자칫 극단으로 흐르기 쉬운 군중들을 더 큰 박애와 관용을 베풀도록 인도하였다. 그래서 세계 2차 대전 때 무신론을 주장하는 공산당을 걱정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나치와 협력한 일은 큰 과오로 여겨진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인 종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 교황청이 2차 대전 때의 잘 못을 인정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수십 년이 지나고 거의 모든 인류가 나치와 일제의 죄악을 받아들인 후에서야 슬그머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종교들의 태도는 과연 종교가 미래에도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종교는 사람들을 이끌어야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인 윤리적 도덕적 결론을 슬그머니 차용한다면 누가 종교 지도자의 말을 따르겠는가? 지금 몰아치고 있는 코로나 19 사태에서 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위기에 빠진 인류에게 종교들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심지어 이 판국에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집회를 강행하며 공공의 질서와 신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국민들이 수십 년간 피와 절규를 뿌려가며 만들어온 자유와 인권,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환경에 그 뿌리를 내리고 신도들로부터 여러 이익을 뽑아가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이는 종교가 아니라 조직범죄에 진배없다. 

원격 예배, 원격으로 하나가 되는 종교 활동 방식은 코로나 19 이후의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양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와 같은 부흥회, 안수 기도, 신의 힘을 빙자한 엑소시즘 등과 같은 미신적 요소를 불가능하게, 적어도 줄어들게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는 방식이 대면 방식을 벗어남에 따라 진드기처럼 따라붙어 특정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선교 활동이나 신천지처럼 남의 교회, 남의 종교 커뮤니티를 파괴하며 종교 비즈니스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행위들은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에는 '정상적'이고 '평화'로우며 '사람을 위한' '사람을 구원하는' 종교가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심약한 사람들, 여러 정신적 상황에서 심약해진 사람들을 심리적 약점을 공략하여 신도로 삼는 그런 사이비 종교들은 점점 발붙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서로 만나지 않는 사회에서의 종교, 그것은 문자 그대로 종교로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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