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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Sep 06. 2020

서부 전선 이상 있다

중국의 내몽고가 때 아닌 민족 분규가 일어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내몽고 지방 정부가 학교에서 몽고어 교육과정을 없애기로 하면서이다. 몽고족들은 매우 자존심이 높은 민족이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격분하여 반발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를 학부형들도 지지하면서 상당히 심각한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심지어 이런 조치에 항의하여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AFP가 보도했고 독일 연방하원 인권 정책 대변인 마이클 브랜드(Michael Brand)는 9월 4일 베를린에서 이에 대해 지적했다.


중국에서의 소수 민족 정책은 중요한 국가 구심력 유지 수단이다. 그리고 사실 몽고족은 소수 민족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정의에 의하면 중화 4대 민족은 바로 한, 만, 몽, 회로서 바로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을 가장 인구가 많은 다수민족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몽고족의 경우 소수 민족이 아니라 다수 민족, 주류 민족으로서 당연히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주장하는 것이다.

몽고어 교육 철폐에 항의하는 연판장, 주모자를 알 수 없게 돌아가며 서명 날인했다

한족이야 중국의 주류이니 그렇다 하고 만, 몽, 회족의 현재 언어 및 문화 상태는 어떨까? 만주족의 경우 청나라 시대에 주류였던 것이 중국이 건국되면서는 거꾸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대부분 한족으로 행정 등록을 하였다. 그래서 지금 만주족의 인구는 많지 않다. 수년 전 만주어를 가르치는 최후의 한 시골 초등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몰려있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사실 상 만주어를 비롯한 만주족 문화는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다. 회족의 경우는 사실 민족이 아니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통칭 회족이라고 하는 것인데 대부분 소아시아 지역, 칭하이, 깐수 지역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어를 사용하는데 중국 정부 입장에서 이슬람어를 없앨 방도는 없을 것이다. 중국밖에 거대한 이슬람 국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슬람 종교도 배척하기 어렵다. 지금도 충분히 위협이 되고 있는 이슬람 세력을 건드리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만, 몽, 회족 중에서 중국 정부가 손을 댈 수 있는 민족은 몽고족만 남는 셈이다. 그리고 손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학교를 나서는 시위 몽고족 학생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왜 갑자기 이런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일까? 그 속을 알 도리는 없다. 그렇지만 내몽고 정부가 갑자기 자체적으로 이런 정책을 시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몽고 정부 안에도 많은 몽고족들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이런 정책이 받아들여지기도 어려울 것이거니와 이렇게 급작스런 추진으로 상황을 어렵게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몽고어 교육 폐지 방침은 중앙 정부의 지시로 짐작이 된다. 최근의 중국 정부 지도부의 움직임 중에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지난 9월 1일 있었던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중앙 심화개혁회의(中央深改委会议)이다. 여기서 시진핑 주석, 왕후닝, 한정 등은 다음과 같은 안들을 통과시켰다.

1. 《关于推进对外贸易创新发展的实施意见》

2.《关于新时代振兴中西部高等教育的若干意见》

3.《关于规范民办义务教育发展的实施意见》

4.《关于进一步规范医疗行为促进合理医疗检查的指导意见》

5. 《关于进一步推进生活垃圾分类工作的若干意见》


이중 교육과 관계된 것이 2항과 항인데 3항은 교육 기업에 관한 것이고 중요한 것은 2항이다. 이 2항의 요지는 서 3각(총칭, 청두, 시안의 삼각형)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중서부 발전을 위하여 교육 체제, 특히 대학 체계를 개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의 서부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을 개혁하여 우수한 인재들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내용이 몽고 말을 가르치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을까? 필자는 아무래도 그 인과관계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전제적 권위주의적 추진을 볼 때 중앙 정부 내에서도 강경파의 소행으로 짐작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이런 조치가 나온 것은 권위주의 지도부 내에서도 문화적 소양이 높지 않으며 충동적인 인물들이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추론은 모두 필자의 추측에 불과하고 특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조치는 분명히 민족에 대한 조치가 가동된 것이고 보아야 하는데 몽고족이 문제를 일으킨 사건은 특별히 없다. 그러므로 이 조치는 몽고족이 지금 문제가 되서라기 보다는 앞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추정이다.


아마도 출발점은 인도와의 국경 분쟁이다. 인도와 중국 간의 국경 분쟁은 장기간에 거친 해 묶은 일이다. 지금 현재도 그렇지만 국경 분쟁이 제대로 양국 사이에 해결을 보지 못했다. 수년 전 양국 간의 분쟁이 있은 후 양국은 분쟁 지역 안에서는 군인들이 열 병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여 발생 가능한 우발적 충돌을 피하는 조치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냉병기 만으로도 다수의 사상자가 나는 사태가 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도군이 주도적으로 중국군을 공격하여 분쟁 지역의 호수와 고지 몇 개를 점령 또는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티베트 사람들의 참여이다. 티베트는 라마교라고 흔히 불리는 불교 밀종을 믿는 지역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황교의 법왕인 달라이 라마가 중국을 탈출, 인도에 피신해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상황으로 보아서는 충분히 티베트 사람들이 반중 무력 활동을 할 만도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그러한 폭력을 사용한 저항을 금하였다. 하지만 티베트 사람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족(藏族)들 중에는 중국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인도군의 행동에 이 장족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티베트 망명 정부가 국기로 사용하는 설산 사자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티베트 망명 정부가 국기로 사용하는 설산 사자기

티베트는 인구가 3백만 정도로 중국의 전체 인구에 비해서는 적지만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타멧 불교의 영향력은 무척 크다. 우선 칭하이성, 깐수성 일대의 소수 민족들은 기본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그리고 쓰촨 성의 북부, 광시, 운남 성의 일부가 티베트 불교를 믿으며 내몽고의 몽고족들이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로는 비중이 적어도 영토로는 중국 영토의 절반 가까운 지역에 영향을 끼친다.


티베트 문제는 장기간 중국 공산당을 괴롭히고 있는 이슈이다. 이번 인도와의 사태에서 장족들의 참여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 인민해방군이 물러선 이유를 현지의 주민들이 인도군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 정부로서는 절대 작은 사건으로 볼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이 국경 지역은 티베트와 신강 위구르의 중간에 위치하여 일단 점령당하면 그대로 위구르족들의 마음의 고향 카스와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라사의 포달랍궁까지는 고원이며 벌판으로서 지역민들의 저항을 받는다면 사실 상 방어가 불가능하다.


지난 수년간 신강 위구르 지역에 여러 인종 문제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모두 다 아실 것이다. 그리고 신강 위구르 사람들의 분노와 억압도 한계라는 것도 듣고 계실 것이다. 그러니 중국 공산당의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육지에서는 인도와 싸우고 영토의 절반 지역에서는 주민들과 싸워야 한다면 심각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은 그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시간이 조금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민족 문제를 신속히 없애고 싶은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을까? 모두 근거 없는 추측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민족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여 내부의 문제를 클리어하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대결에 나서고 싶은 강경파들이 서둘러 내몽고의 언어 교육 문제를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 14차 5개년 계획의 과정에 4개 도시를 직할시 승격을 해야 한다는 연구 논문이 언론 플레이된 적이 있다. 논문이 발표된 후 몇몇 작은 미디어가 이를 인용하여 기사를 쓰고 오피니언 리더가 이를 다시 현상으로 해설하며 대중들의 의견을 유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중국 공산당의 정보 공작이다.  논문에서 뜬금없이 신강 위구르의 작은 도시가 직할시 대상으로 지명되어 필자와 일부 관계자들의 관심을 샀다.

필자는 카스라는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 위구르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곳이고 현재 성 서기인 천첸궈(陈全国)를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직할시를 4개나 만든다는 것은 이에 따라 중국 정부 안에 높은 자리들이 엄청 많이 생긴다는 것인데 시진핑 주석이 미중 패권 전쟁 등으로 팽배해 있는 내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려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천첸궈 서기의 경우 그가 위구르 인을 다루는 방식으로 시진핑 주석의 눈에 들어 상무위원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번 미국이 신강 위구르 인권법에 따라 천췐궈를 제재하기도 하였으나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려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작금의 상황을 보니 그런 요인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카사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티베트 지역의 경우 현재 인도와의 분쟁 지역에서 라사는 1200km라는 장거리이어서 여지가 있다. 카사의 경우 400km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카사까지 가는 길목에 이렇다 할 도시나 거점이 없다. 카사 자체도 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다. 그리고 카사의 서쪽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수많은 미군 기지가 있어 만일 전쟁이 난다면 서쪽으로부터의 방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대일로의 육로 수송 루트는 미국과의 전쟁이 발생할 시 해상 루트가 인도에 의해 막힐 것이어서 생명선과 같은 보급선이 될 텐데 이를 보호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카사가 서부 지역의 전략 요충지로 키우기 위하여 직할시로 승급시키고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발상이 나온 듯도 하다.


신강 위구르 지역은 중국이 성립할 때 국민당에 속한 군벌 세력이 끝까지 저항해서 당시 중국 공산당은 이들과 장기간 대치하는 대신 자치권을 주고 그 대신 중국에 편입된다는 절충을 택하였다. 그래서 신강 위구르 지역의 상당한 면적을 이 군대가 차지하고 자치권을 행사해 왔는데 이 것이 바로 신강 건설 병단(新疆建设拼团)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단은 중앙 정부의 예산과 지원에 점점 종속되었고 이제는 완전한 중국 체제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신강 위구르 지역의 불안정은 이 병단이 계속 존속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신강 위구르 지역에 평화가 찾아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부 전선에 이상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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