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친구, 그리고 적의 적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이 점점 더 심각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 냉병기로 제한되었던 양국 군인들의 충돌은 화기를 사용하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과거 역사적으로 1962년 중인 전쟁이 있었고 2017년 부탄 지역에서도 분쟁이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알기로는 2000년 경에도 양국 간에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인도와 중국 간의 국경 분쟁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국경 분쟁 이전부터이다. 그 시작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 통치하던 시절 국력이 약화된 청 나라를 상대로 인도와의 국경을 인도에게 유리하게 설정한 것이었다. 이를 맥마흔 라인이라고 부른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나서 이 맥마흔 라인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면서 양국의 국경 분쟁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중국이 1949년 중국 정부를 수립하고 다름 해인 1950년 우리 625 전쟁이 휴전이 되면서 한국에 보냈던 군대를 돌려 티베트를 점령한 것이다. 이런 행동의 뒤에는 625에 출전했던 군대가 개선을 하게 만들려는 마오쩌둥의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고 한다. 이로서 중국의 무력이 인도의 국경에 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국경 문제는 곧바로 양국 간의 군사 충돌의 위험을 가진 현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 양국이 서로 자국 주권을 주장하는 지역은 바로 아래 지역에서 붉은색으로 표시한 지역이다.
이렇게 되자 맥마혼 라인에 의하여 인도가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지속적으로 상승되었다. 중국이 티베트 지역을 장악하면서 중국과 인도의 국경선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국경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경선이라는 이름 대신 실질 통제선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이 국경 지역은 일반적인 국경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다르다.
우선 히말라야의 가장 높은 지대로서 낮은 곳도 고도 3500m 이상이며 높은 곳은 5000에 달한다. 이 정도 고도면 헬리콥터 등도 통상 엔진에 공급되는 산소가 충분하지 않아 제 성능을 내지 못한다. 헬기의 정상 동작 고도 한계는 기종에 따라 높아야 4000m에서 6000m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등판능력이 매우 좋은 일부 차종 외에는 이 지역에서는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구가 거의 없다. 히말라야 지역은 고사하고 전체 티베트 지역에 사는 인구가 2018년도 중국 정식 통계로 343.82만 명이다. 그것도 한족을 라사 등의 지역에 다수 이민을 시킨 결과이고 순수한 장족은 300만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3백만 인구도 주로 동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경 지대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1957년에는 중국이 인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슈미르(Kashmir) 지역의 악사이 친(Aksai Chin)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하였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악사이 친 지역은 중국의 티베트 지역, 그리고 신강 위구르 지이라는 매우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민감한 지역과 인접하 동시에 인도와 파키스탄과 경계하는 요충지이다.
이렇게 이 지역의 무력 패권이 점점 중국 색으로 물들어 가는 듯하였으나 2년 인 1959년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신하여 망명 정부를 수립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인도에 맥마혼 라인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악사이 친 지역에서 중국에 당한 인도가 들어줄 리 없었다.
그러고 나서 1962년 중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중국이 확실한 승리를 하게 되어 악사이 친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였다. 이로서 카시미르 지역은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이 나누어 점령한 상태로서 지금까지도 불안정한 곳이 되었다. 카시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로 인한 갈등으로 원래가 분쟁 지역이었는데 여기에 중국까지 끼게 된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에서 소련은 인도를 지원했다. 이는 소련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고자 한 의도로 해석이 된다. 당연히 중국은 인도의 적인 파키스탄을 지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악사이 친 지역 진출에는 파키스탄도 협력을 하였다. 인도가 핵 개발을 하게 된 것은 이 중국과의 전쟁이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중국이 파키스탄에 핵 기술을 제공한 것이다. 그야말로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공식이 잘 성립한 경우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은 흔히 종교 분쟁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것은 명분일 뿐이고 실제는 정치적 이유이다. 인도의 힌두교는 엄격한 카스트 제도를 지지한다. 그러므로 인도 사회는 계급이 정해져 있는 사회이고 당연히 상류층에게는 너무나 좋은 제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동시에 많은 하층민들의 불만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이런 대다수 기층 민중들에게 계급 없는 평등을 이야기하는 종교, 즉 불교나 이슬람은 쉽게 전파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요 외에 공통점이 별로 없었던 동 파키스탄이 독립운동을 벌였을 때 인도는 적의 인 이 동 파키스탄을 지원하였고 결국 동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였다. 종교의 힘보다 정치의 힘이 더 컸던 것이다.
점증하는 중국의 국경 분쟁은 인도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탄 하고도 있다. 중국은 지난 6월 둥랑 지역에 도로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둥랑 지역 또한 영토 분쟁이 있는 곳이다. 이곳이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부탄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1959년 지도 편찬 시 부탄을 중국 영토로 기재하였다고 한다. 당시 네루 인도 총리는 중국이 부탄을 침략한다면 이를 인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부탄과 중국의 국경은 470km이며 2005년 해방군 200여 명이 부탄 내륙에 진입하여 도로와 교량 등을 건설한 바 있다. 이런 행동을 다시 재개한 것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7223&cid=43768&categoryId=50822
부탄이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맥마혼 라인과 연계하여 생각해 보면 동부 산악 지대 전체가 중국의 영토라는 주장이 된다. 다시 말해 중국은 평야 지역은 인도가 차지라더라도 산악 지역 끝까지 중국의 영토여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의 의도는 자명하다. 티베트에서 남하하여 방글라데시로 진출하는 통로를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얀마의 항구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봉쇄당하더라도 인도양을 통해 석유 등 전략 자원의 보급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인도 입장에서는 자신의 앞바다가 중국의 보급선이 되고 인도와 말라카 해협 사이를 중국 해군이 활개 치는 그런 결과를 좌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는 이 지역으로 약 3천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중국의 진입에 대응하였다. 그러자 중국 또한 이에 대응하여 병력과 무기를 이 지역에 증강하였다. 이제 상호 간에 긴장은 올라갈 대로 올라간 상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번 중국 인도 충돌이 Aksai Chin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자. 먼저 이번 5월 5일 중국이 수 천명의 병력을 라다크 지역 두 곳과 파키스탄이 실효 지배 중인 카시미르 지역으로 투입하였다. 중국은 이러한 이동의 이유가 인도가 국경을 침범하며 소란 행위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인도군과 중국군은 이 지역에서부터 자주 승강이를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위치가 라다크 지역에서부터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여 인더스 강의 상류 중 하나인 Galwan 강 지역을 거쳐 Pangong Tso 호수 지역으로 바뀌었다.
이 시점 6월 중순에 Galwan 강 지역에서의 충돌로 인도의 고산 부대가 인도군 장교를 포함하여 20 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부상, 그중에서 18명은 중상을 입었다.
인민해방군 측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중국 측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지만 인도 쪽 미디어에 따르면 인민해방군도 장교를 포함하여 4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때까지 양국은 우발적 전쟁을 막기 위해 열 병기를 소지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량의 사상자가 양측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인도군의 장교는 4200m ~ 4300m 고지의 아래로 던져졌다고 하니 아마도 상당히 격렬한 전투였던 모양이다.
이제 인도와 중국 양측의 전투를 이해하려면 이 지역의 지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국과 인도의 국경이 정해지지 않고 있는 데에는 현재의 경계가 양국 모두에게 불안정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왜 이 지역의 지형이 불안정한 지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중국과 인도의 국경은 3,488km에 달한다. 그리고 모두 히말라야의 고산 지대이다. 티베트 서쪽 대도시 르카처로부터 2140km 거리이다. 독자 분들은 이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실 것이다. 필자가 수년 전에 티베트를 여행 간 적이 있다. 라사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하였고 라사에서 르카처까지는 264.57km이다. 그런 자동차로 이틀이 걸렸다. 물론 중간에 이곳저곳 들러서이기도 하지만 쉬지 않고 달려도 5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길이 험한 것이다. 필자는 라사와 르카처 중간에 하룻밤 머물었는데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웅성웅성해서 왜 그런가 물어보니 상하이에서 온 무슨 국장님이 전날 저녁 식사하면서 술을 마셨는데 고산병이 도져 아침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니 르카처로부터 Pangong Tso까지는 직선거리로는 1000km가 안될 수 있겠지만 주행 거리로는 2000km에 가까우며 시간으로는 며칠이 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이렇다 할 도시나 거주지가 없다. 황량한 길을 가다 보면 용문객잔 같은 곳이 나오며 거기에서 하루 자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인 그런 곳이다.
반면에 인도 쪽은 아리 지구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400km 정도인데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면 넓은 평야지대이다. 그리고 곧바로 거주지가 있다. 그래서 중국과는 달리 보급이 매우 용이하고 여차하면 대부대가 근접거리까지 와서 주둔할 수 있다. 그러나 저지대라는 약점이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장사정 포를 사용하면 뉴 델리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4000m 정도의 고도 차이를 가정하면 자유 낙하 시간이 약 45초이다. 포탄에 따라서 수평 속도에 차이가 나겠지만 곡사포 기준 초당 약 1 km를 가정하면 원래 사거리보다 약 45km를 더 날아갈 수 있다. 고성능 자주포 사정거리가 대략 40km 정도 되니 85km 정도를 쏠 수 있다고 하겠다. 뉴 델리 포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까지는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중국제 미사일의 경우 초속 7km 되니 사정거리보다 315km 정도 더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사정거리 100km짜리 단거리 미사일로 뉴 델리를 공격할 수 있는 셈이다. 즉 인도 입장에서는 이 지역에 병력이나 보급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수비에 대해서는 중국보다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https://zhidao.baidu.com/question/984739874120222379.html
이번에 분쟁이 일어난 지역 라다크(Ladakh) 지역의 Pangong Tso 호수 남단의 지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 지형도에서 중앙에 있는 가로로 긴 호수가 Pangong Tso 호수이다. 이 호수의 서쪽에 치우친 부분을 현재의 경계선이 지나간다. 즉, 이 호수 상에 중국과 인도가 국경이 나뉜다. 중국 측 수역에서 인도 측 수역으로 물이 흘러한다. 중국 수역은 민물이고 생물이 살고 있지만 인도 수역에서는 염도가 높아 생물이 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이 Pangong Tso 호수의 남단에 호수가 하나 더 있다. Spanggur Tso 호수이다. 그리고 이 두 호수의 서쪽으로 제법 넓은 협곡이 있다. 여기서 제법 넓다는 것은 트럭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말한다. 이 지역은 협곡이 좁아 대규모 병력 이동이 어려운 데다가 일 년 중 5월에서 9월 사이 약 5개월 정도만 통행이 가능하다. 그 외 기간은 추위로 통행이 어려운 데다가 산사태 등이 위험해서이다.
서쪽 편의 남북으로 난 이 협곡 외에 동쪽으로 난 아주 좁은 협곡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 사이에 사실 상 병력이 이동 가능한 경로는 여기뿐이다. 그리고 이 협곡을 둘러싸고 5개 정도의 고지가 있다. 이중 중국이 '黑顶'이라고 부르는 고지가 이 두 협곡 사이의 북쪽 편에 있다. 그리고 두 협곡 길이 만나는 곳은 제법 넓은 평지가 있는데 Chusul이라는 곳이다. 인도는 여기에 군사 기지를 세웠다. 인도 제14군 지휘소이며 1962년 중인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라고 한다. 이 협곡 길은 인도군 입장에서는 카시미르 지역, 특히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악사이 친(Aksai Chin) 지역으로 가는 중요한 통행로이다. 그리고 악사이 친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요지가 바로 6월 중순에 인도군들이 사망한 Galwan 강 지역이다.
인도는 Galwan 강 지역 사건이 있은 후 반중 정서가 매우 높아졌으며 화웨이를 제재하는 방침을 정하기도 하였다. 인도 미디어에 의하면 인도군의 수는 55명이었는데 이를 인민해방군 3백여 명이 약 6 시간 동안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병력 차이, 전투 시간 등 모두 상당한 과장이 들어있지는 않나 싶을 정도여서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그리고 6월에는 중국의 15식 경전차가 라다크 지역에 출몰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15식 전자는 경전차이고 특히 고산 지대에서 잘 동작하는 모델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군사력이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윽고 7월 15일 중국과 인도는 이 지역에서 다시 충돌하였다. 최소한 2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환구시보의 편집인 후시진(胡锡进)은 이 전투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10명의 인도군을 포로로 사로잡았다고 SNS에 올렸다. 그것은 곧바로 인도 측 미디어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중국의 소문으로는 이 전투에서 인도군 십 수명이 동사했다고 하는데 확인은 되지 않았다.
8월이 되자 인민 해방군의 신예 전투기 J-20 가 신강 위구르 지역의 허티엔(和田)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존의 XX공항 등은 인도군의 공격 가능 거리 안에 있어 허티엔 공항에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8월 29, 30일 양일 인도 미디어들은 해방군이 국경을 넘어왔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8월 31일 중국과 인도는 다시 긴장 국면에 돌입한다.
https://www.nytimes.com/2020/08/31/world/asia/india-china-troops-border.html?searchResultPosition=4
인도에 의하면 해방군 40명이 국경을 넘어 Pangong Tso로 진입해 왔고 무기, 창, 칼 등으로 인도군을 위협했다고 한다. 반면 중국에 의하면 인도군이야말로 국경을 넘어 진입했다고 한다.
이번 전투에서도 승자는 인민 해방군이었던 모양이다. 인도군 5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인도 측은 이 포로들이 군인이 아니라 지역의 촌민들이라고 했다. 예전에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중국 측에 잡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것이 인도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 인도 정부는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T-90 탱크를 Chusul 기지를 중심으로 배치했고 Rafale 전투기를 구매하였다. Chusul에는 공군 비행장이 있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충지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방위 강화를 한 것이다. 인도군의 주력 무기는 탱크로 T-90M, T-72M이고 미국제 경량 곡사포 M777, 개인 화기는 SIG716, 그리고 한국의 K9 자주포 인도 모델인 K9 VAJRA 등이다. 여기에 AH-64E 아파치 가디언 공격 헬기, CH-47F 치누크 수송 헬기, 러시아 Su-30 MKI 전투기, 미라지 2000 전투기 등의 공중 전력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양국 간의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하자 갈등 해소를 위한 양측 군대 간의 대화도 시작되었다. 양측 군부는 5 차례에 걸쳐 담판을 했으나 의견 차이를 줄이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도 정부의 입장도 이제 공고하게 굳어져 갔다. 인도 정부는 9월 2일 화웨이를 정식으로 제재한다는 발표를 하였고 중국의 118개 어플의 금지도 결정하였다.
https://www.nytimes.com/2020/09/02/world/asia/india-bans-china-apps.html?searchResultPosition=3
인도 미디어는 중국이 150대의 항공기를 배치했고 5만에 달하는 병력을 집결시켰다고 보도했다. 중국 측은 인도 공군이 1시간마다 순찰 비행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진실을 보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지역적 특성상 중국이 5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할 수도 없고 또 보급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도군이 인더스 강 근처의 河谷平原에 부대를 집결시켰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河谷平原은 인도의 평원에서 히말라야로 들어서는 초입이고 주거 지역이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도군은 이 히말라야 전선을 의식하여 과거 수년간 조금씩 군부대를 배치해 왔고 결과적으로 현재는 이 지역에 20만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다고 하니 병력 및 장비의 동원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인도군 병력 규모는 36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인도가 Chusul과 Spanggur Tso 호수 사이 지역에 탱크 부대를 전진 배치했다는 말이 나왔다.
인민 해방군은 티베트 쪽 뉴 델리로부터 400km 거리에 있는 쿤샤(昆莎) 공항에 신예기인 J-20을 배치하였다. 원래 인도 접경의 공군은 J-10이 주력이고 신형기는 미국과의 대응에 투입되어 대부분 타이완 해협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J-20을 배치한 것은 공군력의 전력 차이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공군은 인도 쪽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상군은 99A형 전자, 96B형 전차, 15식 경전차 등 탱크와 차륜형 자주포 PLC-181, 05식 155mm 자주포, 07식 122mm 자주포 등으로 인도군에 비해 열세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인도 측의 강경 대응이 시작되었다. 우선 인도군 병력이 7천 명 정도 집결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앞서 설명했지만 인도 측은 병력 투입이나 보급 면에서 중국에 비해 조건이 우위에 있다. 동원 가능한 병력으로는 인도가 유리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도 병력을 증강하였다. 인도 미디어에 의하면 9월 7일 인민해방군 약 1만이 국경 내에 진입하여 Chusul을 제압하려 하였고 인도 군이 대응에 나서자 인민해방군은 공중에 발포하며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모디 인도 총리가 이미 "특수한 상황에서는 발포해도 좋다"라고 명령을 하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실제는 인도 측이 먼저 발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인민해방군은 Spanggur Tso 북단에서부터 Chusul, 그리고 러친산( 热钦) 입구까지 전개했다고 한다. 만일 인민해방군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 사실 상 인도는 카시미르 지역을 잃게 된다.
당연히 이번에는 인도군이 총력을 다했고 다음 날인 9월 8일 인민해방군의 증원 부대가 도착하였다. 동시에 Pangong Tso 북부에 군사 활동도 증가하였고 군사 시설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인도군이 위성사진을 통하여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주요 전투지가 Chusul이라는 것은 인민해방군 쪽이 국경을 넘어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인도가 카시미르 지역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Chusul은 너무나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에 인도군 쪽이 중국 국경을 넘어 진출했다면 전투 지점이 절대 Chusul이 될 수 없고 적어도 '黑顶' 동쪽 지역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번 충돌에서 인도군이 승리하였다. 이 지역의 5개 고지 중에 3개를 점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지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黑顶'을 점령하였다. 이 '黑顶'은 해발 5681미터 고지로 이 부근에서 가장 높다. 여기서 북쪽의 Pangong Tso 및 그 북변의 인민해방군을 내려다보며 제압하기가 쉽거니와 남쪽의 Spanggur Tso를 제압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진군해 올 수 있는 경로는 바로 이 두 호수 사이의 좁은 협곡이기 때문에 이 고지를 인도군이 점령하고 있는 한 대규모 병력 동원이 불가능한 지형 상 인민 해방군의 진격은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黑顶'을 비롯하여 두 호수 양변의 인민 해방군의 시설을 모두 철거하였다고 한다. 인민 해방군은 '黑顶'이 인력이 상주할 만한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평소 秋迪儉革拉 고지에서 '黑顶'을 순찰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왔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양측은 모두 상대방이 먼저 화기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열 병기를 이용한 전투가 벌어진 것만큼은 틀림없다. 누가 먼저 화기를 발사했는지 간에 이제 인도와 중국은 확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https://www.nytimes.com/2020/09/08/world/asia/india-china-border.html?searchResultPosition=1
두 나라는 모두 국내 정치에서 상대국과의 군사 충돌을 알리며 민족주의 감정을 고양시켰다. 그리고 있을 수 있는 전면전에 대비하여 군사력을 모으는 자세를 취하였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재의 형세로는 인민해방군이 단순한 지상군을 투입해서는 고지를 탈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인민해방군은 정예 특수 부대 300여 명을 현지에 모내어 낙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고지를 공중에서부터 공략할 생각인 모양이다.
중국의 미디어를 보면 이들 특수부대원들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드론을 활용하여 식사를 보내는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인민해방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군사용 드론과 로켓 런처 등을 국경 지역에서 테스트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는 무력시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파키스탄령 카시미르 지역에 군사지휘통제소를 설치하고 그 대가로 파키스탄에 매년 수십억 달라의 경제 원조를 하는 방안이 협의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에 48대의 최신형 군사용 드론을 판매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드론을 활용한다는 것은 병력 투입이 어려운 현지 지형과 탱크와 인력 위주로 전개된 인도군을 대상으로 무인기를 이용하는 것도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카시미르 고원에서 군사용 드론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히말라야의 인도군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드론은 차이홍-4(彩虹-4)로 알려졌다. 이 차이홍-4는 최고 고도 9000m, 최대 비행시간은 20 시간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2개의 레이더 유도 미사일이 장착 가능하다.
일이 이렇게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드디어 중국 복단대학의 남아 연구 센터 주임 린민왕(复旦大学 南亚研究中心 林民旺) 같은 관변 학자들이 중국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는 등 분위기는 사뭇 경색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https://view.inews.qq.com/a/20200909A0MZW300
하지만 중국이나 인도나 전면전을 부담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문제 만으로도 벅찬 중국이 인도와 전면전을 벌일 여력은 없다. 그리고 인도 또한 중국이 파키스탄을 끌어들인 이상 단순히 히말라야 산속의 일부 군인들만의 희생으로 이 문제가 종식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자 인도 Subrahmanyam Jaishankar 외무부 장관과 중국의 왕이 외교부 장관이 러시아의 the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ummit에서 회동을 하게 되었고 러시아에서 이 회동을 안배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0-09-10/china-india-foreign-ministers-set-to-meet-amid-border-tensions)
러시아는 왜 이번 중인 갈등에 나서는 것일까? 재미있게도 과거 소련과 중국이 갈등을 일으킬 때에는 소련은 인도를 지원했다. 인도의 핵 능력은 소련이 제공한 것이다. 그 이후 역사적으로 인도와 소련은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해 왔고 인도의 대부분의 무기들은 소련이 제공한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중국은 파키스탄에 핵 능력을 제공하였다. 그야말로 적의 적은 내 친구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있어 중국은 미국의 적이 되었고 러시아에게는 중국이 '적의 적'이 된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 극동 연방 대학의 Artyom Lukin 조교수는 러시아가 Yevgeny Primakov 외무부 장관 이래 러시아-인도-중국을 연결하는 이른바 the Russia-India-China (RIC) 3자 그룹을 추진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말하자면 러시아가 인도 중국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과학원의 Aleksei Zakharov 연구원은 러시아가 중인 간의 갈등이 유라시아의 안보 균열을 가져올 것을 걱정한다는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즉 중인 갈등이 커지면 미국의 유라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아무튼 중국과 인도는 5개 항목에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하여 중인 갈등이 해결되는 모습을 보였다. 미디어들은 두 나라가 상호 병력을 물리기로 합의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이들이 합의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신화사가 보도한 5개 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两国外长同意双方应遵循两国领导人达成的关于发展中印关系的一系列重要共识,包括不让两国分歧上升为争端。(양국 외무장관들은 양국 간 이견이 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인도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양국 정상이 합의한 일련의 중요한 합의를 따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两国外长认为,边境地区当前形势不符合双方利益,两国边防部队应该继续对话,尽快脱离接触,保持必要距离,缓和现地事态。(양국 장관은 국경지대의 현 상황이 상호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양국 국경경비대의 대화는 계속돼야 하며 가능한 한 빨리 접촉에서 벗어나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 사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两国外长认为,双方应恪守现有边境事务协议和规定,维护边境地区的和平与安宁,避免采取任何可能使事态升级的行动。(양국 외무장관은 "기존 국경 사무 협의와 규정을 준수하고, 국경 지역의 평화와 안녕을 수호하며,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삼가야 한다.)
双方同意继续通过中印边界问题特别代表会晤机制保持沟通,继续开展中印边境事务磋商与协调工作机制磋商。(양국은 중국과 인도의 국경문제 특별 대표자 회동을 통한 의사소통을 지속하고, 중국과 인도의 국경문제 협의와 조정업무 협의도 계속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两国外长同意,随着局势缓和,双方应加快完成新的建立互信措施,维护和增强边境地区的和平安宁。(양국 외무장관은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쌍방은 변경 지역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고 증강하는 새로운 신뢰 구축 조치를 조속히 완성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여러분들은 이 5개 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는 아무리 보아도 무슨 해결을 본 것 같지가 않다. 두 나라가 현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합의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종결을 지을 것인지는 아무것도 합의를 본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는 양국의 평화를 원한다며 큰 형님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제 두 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수이다. 이미 인도는 '적의 적'인 미국과의 동맹을 추진해 나가고 있고 이제 일본과 상호 군항을 교환하는데 합의하고 있다. '친구' 보다는 '적'이 더 중요하고 따라서 '친구'보다 '적의 적'이 더 중요 할런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인도와 타이완 간의 연대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타이완과 중국 간의 갈등이 첨예화될수록 중국의 인도에 대한 압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일견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는 중인 사태에 대하여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인도군은 이미 점령한 고지들을 중심으로 철조망을 포설하였다. 의미는 분명하다. 적어도 이 철조망까지는 인도의 영토라는 것이다. 그리고 '黑顶'과 같은 요충지를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黑顶'을 되찾아야 하는 것은 인민해방군도 마찬가지이다. 인민 해방군은 Panggong Tso 북단에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해방군은 이 지역에 5만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하며 대규모의 기갑 부대, 그리고 대전차 미사일 홍지엔 10(红箭-10)도 이 지역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폭격기 轰6,수송기 运20 등도 이 지역 고원 일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인도 미디어에 의하면 Panggong Tso 남단에 인민해방군 병력 약 1만이 나타났다고 한다.
단지 두 나라가 대규모 확전으로 일이 커지지 않기를 원하는 이상 당분간은 지속적인 소규모 분쟁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지만 언제 전쟁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 히말라야에서 병력의 이동 불가능한 9월 중순에 들어섰다. 어차피 내년 4월경까지는 휴전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4월 이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