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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Jun 04. 2021

탕핑과 헬 조선 2.0

중국의 3포, 탕핑주의(躺平主义)

최근 중국에는 탕핑이라는 말이 공전의 화제이다. 중국의 한 커뮤니티 사이트인 “知乎论坛”에서 시작된 이 말 탕핑주의(躺平主义)라는 말의 의미는 집 안 사고, 차 안 사고,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고, 돈 안 쓰고 살자고 하는 것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수준만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돈 버는 데 기계처럼 또는 착취당하는 노예처럼 사는 것을 거부하자라는 태도이다. 아마 우리로 치면 3포 세대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생각이 수동적으로 당하는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저항한다는 점에서는 조금 달라 보인다.

https://www.rfi.fr/cn/%E4%B8%AD%E5%9B%BD/20210601-%E8%BA%BA%E5%B9%B3%E4%B8%BB%E4%B9%89%E5%8D%B1%E9%99%A9%E5%90%97


이 탕핑 주의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이 말이 나오고 나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공감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Financial Times는 그 이유를 탕핑주의가 "일어설 수는 없지만 무릎을 꿇고 싶지 않으니 평평하게 눕겠다"라는 저항 심리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오랜 한 자녀 정책으로 두 부모와 네 조부모들의 관심 그리고 통제 속에 무한 경쟁의 삶을 살아온 중국의 젊은이들이 오늘날 대면하고 있는 현실은 살인적인 입시 경쟁, 그리고 경쟁 속에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며, 취업을 하면 996, 즉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해야 하는 생활인 것이다.

이러한 조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내포하고 있으며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시각에서는 매우 불건전한 흐름이다. 그래서 남방일보(南方日报)를 비롯한 관영 매체들은 이 탕핑주의를 비판했고 인터넷 상에서 탕핑의 콘텐츠는 사라졌다.


혐중과 분노에 찬 과장된 콘텐츠가 흘러넘치는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그것 보아라 하면서 또 다른 중국 비판의 소재로 삼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탕평이 중국 만의 현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필자는 중국에서 발견된 탕핑이라는 말에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듣기 어려워진 "헬 조선"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왜냐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핼 조선이라는 말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탕핑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공통점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는 과연 "헬 조선"이라는 상황이 해결되어서 지금은 그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인지 진심으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탕핑과 한국의 헬 조선은 두 국가의 사회 체제가 크게 다르지만 젊은이들의 절망과 고통을 담고 있다는 점과 기존 체제에 대한 좌절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같아 보인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은 모두 부모 세대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는 점, 부모보다 열악한 미래가 예상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장애를 극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적인 절망을 대면하고 있다.


물론 두 나라의 차이도 존재한다. 언급한 국가 체제의 차이, 역사 및 문화의 차이 등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문제가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절박한 이슈들이 소속된 사회와 커뮤니티에서 문제로 삼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망이다. 중국의 경우 젊은이들이 받고 있는 크나큰 압박, 무한 경쟁, 취업난, 그리고 직장인들의 열악한 삶의 질 등은 모두 중국 공산당을 비롯해서 중국 사회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문제이다. 비록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의 절망과 고통을 과연 우리 사회가 공감하고 인지하며 해결하려 애쓰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헬 조선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이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문제가 해결돼서 없어진 것인가? 절대 그럴 리 없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절망하고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절망은 우리 사회가 권위적이며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경직된 조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더라도 반딧불을 모아 공부를 하고 신문을 팔아 고학을 하며 공부하면 극소수이지만 고시에 합격하고 판검사가 되어 입신양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있는 집 자식이나 로 스쿨에 가서 법관의 기회를 볼 수 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거리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천에 하나 인기를 끌면 연예인이 되고 돈을 벌 수 있었다. 지금은 중학교 나이에 대형 연예 기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체제 안에서 장기간 훈련받아야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 스포츠를 하려는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비싼 과외를 받고 감독들의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선수로서 발탁되고 진학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냥 평범한 학생이 되려고 해도 과외를 받지 못하면, 강남 학군에 들어가지 못하면, 스펙을 쌓지 못하면, 제대로 대학에 진학할 수도 없다. 대학에 진학해도 편의점 알바로 몸을 혹사당하고 학자금 융자 등으로 졸업할 때에는 빚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되기 일쑤이다. 

우리의 헬 조선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는 우리 사회가 헬 조선 2.0 버전에 진입했다고 생각한다. 즉, 장기간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각, 가치, 감정을 부여받지 못하고, 모든 사회 피라미드를 오르는 계단이 기득권자들에게 통제되다 보니 "새로운 스타", "혜성과 같이 나타난", "기존 관념을 뒤엎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즉 경직된 동맥 경화 상태의 자기만족에 빠진 사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노력하면 사회 각 영역에서 새로운 스타로서 나타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백 명 중에 단 한 사람, 천 명 중에 단 한 사람이 선택된다 하더라도 그 길은 꼭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삼성의 이재용처럼 이제 3대를 넘어가 4대를 이어가는 자본가들의 혈족이 유지되는 사회가 되고 서민들은 자자손손 사회적 약자로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봉건 사회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유지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버전의 봉건 계급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각 영역에서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새로운 생각과 감정과 가치를 발전시키며 진입할 수 있게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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