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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Jan 24. 2022

새로운 정책보다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1월 18일 중공 중앙 기율위원회에서 재차 역사적 주기 법칙을 끄집어내었다. 역사적 주기 법칙이라는 것은 중국 근대 애국 주의자이며 민주주의 교육가인 황옌페이(黄炎培)가 1945년 중국 공산당들이 거주하던 동굴집에서 마오쩌둥 등에게 제기한 질문이다. 황옌페이는 역사는 주기적으로 흥망성쇠를 겪으며 그 과정과 단계가 유사하고 모든 왕조가 이를 벗어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이 주기율의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문제 제기를 했었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은 


“우리는 이미 새로운 길을 찾았다. 우리는 주기율을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민주이다. 인민들이 정부를 감독하게만 한다면 정부는 감히 일을 허투루 할 수 없다. 사람 각자가 자기 할 바를 한다면 국가가 망할 일은 없다.”


라고 답변한 바 있다.

황옌페이(黄炎培), 중국의 부총리 겸 경공업부 부장을 지냈다. (출처: 바이두)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창당 백 년을 경과하는 이 시점에서 샤오캉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사실 상 달성했다고 간주하고 앞으로의 백 년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겠느냐는 이슈에 있어 바로 이 역사 주기율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그것을 ‘자기 혁명(自我革命)’이라고 불렀다. 즉, 타도 대상이 사라진 공산당에게 더 이상 계급 혁명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목적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자기 혁명이라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변증법적 질서에 따라 공산당 자신이 혁명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지도부에서 경제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부유’를 내건 이후 정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를 ‘자기 혁명’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자기 혁명을 제시한 목적을 생각해 보면 가장 쉬운 해석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대 파벌에 대한 공격의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민들에게 지탄받지 않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 자신이 자기 혁명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부패 관료들은 시진핑 지도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패 숙정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중공 중앙 기율위원회에서 이 ‘자기 혁명’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일 것이다. 즉 이 ‘자기 혁명’은 시진핑 주석 그룹의 정치적 필요에서 나온 개념이기 쉽다.


게다가 시 주석의 발언에 '민주'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지적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바로 그 '민주' 또는 '인민'이라는 키워드에 슬쩍 대체해서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유체 이탈 화법이랄까? 인민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중국 정부, 또는 일부분 관료 집단, 또는 시 주석의 반대파이고 견제를 해야 하는 방식인 '민주'의 주체는 인민이고, 바로 그 자신이 인민을 대변하고 있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우리가 한 자지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 또는 시진핑 지도부에서 발표하는 이런 키워드들 자체는 기능적, 또는 이해관계의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만 이렇게 사상과 이념을 정책의 구체화 이전에 먼저 수립하는 방식, 그 자체는 우리가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것을 우리가 대외 안보, 내부 정치 투쟁이나 경제 정책을 논의할 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의 가치를 공유하는  출발점 없이는 논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사상의 제한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유물적 사고를 하는 과학자와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종교인까지 함께 살고 있으며 동일한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며 산다.


문제는 여러 서로 다른 의견을 논의하는 과정이 변증법적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서로의 기존 생각을 초월하여 보다 성숙한 포괄적 개념으로 진화해 나가기보다는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차이를 가진 집단들이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고착되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여당과 야당의 정책 논의는 서로를 공격하는 장이 될 뿐 정책의 기본 취지에 대한 공감이라든가 정책 실행 방법의 실효성과 발생 가능한 역효과를 분석하고 보완한다든가 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정치에는 이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공허한 말을 필요할 때마다 외칠 뿐 추구하는 이념도 그 이념 하에 정리된 가치 체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생각의 말단을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로 포장한 키워드들만 돌아다닐 뿐이다. 대선 주자의 정책들도 상위의 가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 정당의 정책은 표를 얻는데 도움을 주는 이익 집단들의 호감을 사기 위한 전술 프로젝트들의 리스트일 뿐이다.


어쩌면 정치인들에게는 정치라는 것도 그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비즈니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전달해 주어야 할 종교계는 거꾸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시위하고 그들의 ‘표심’을 정치인들에게 전달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는 기분이다. 20세기 충돌하던 이념은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새로운 이념과 가치는 아직 탄생하지 못했다. 학자들은 정부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노력 중이고, 종교인들은 보다 많은 교인을 포섭하여 교세를 늘리려 하고, 정치인들은 보다 많은 표를 얻어 세력을 확대하려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우리 사회의 이익 집단들의 소리를 목소리 큰 순서대로 할당하는 것일까? 충돌하는 가치와 생각을 세력이 크거나 권력이 큰 그룹이 결정하는 것이 옳은 방식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제 우리에게는 이념과 가치를 조율해 나가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방식은 보다 성숙한 사상과 이념이 없이는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과 이념인 것이다. 필자는 중국 공산당이 최근 내세우는 공동부유나 자기 혁명 같은 명제와 의도가 전혀 다른 키워드들에 대하여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우리 정당들에게는 이런 이념과 사상의 키워드를 보여 달라고 외치고 싶다. 수단으로써의 키워드가 아닌, 목적으로서의 키워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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