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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편소설 쓰는 남자 Nov 03. 2021

기다림은 피요, 그리움은 뼈다

외계인과도 사귀고 도깨비하고도 결혼하지만, 불시착이 아니라면 만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상대가 바로 북한군, 아니 북한 사람이다. 휴전선이 갈라놓은 남한과 북한의 심리적 거리는 안드로메다보다 멀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보다 아득한 셈이다. 


그 멀고 아득한 단절을 우회한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산악과 호수가 그림같이 펼쳐진 영세중립국에서 만나 사랑한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눈부시고 아름답다. 






그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사람들은 때깔이 누추하다. 깊게 팬 주름과 만개한 저승꽃은 68년 풍상에 녹슬어온 철조망이 아로새긴 문신일 터이다. 잠깐 만남으로도 철조망이 걷히듯 주름이 활짝 펴지고 웃음꽃 환한 유년의 뜰에 그들은 가닿는다. 


구슬치기로, 딱지치기로, 술래잡기로 짬도 없이 즐겁고 정다운 그들을 부르는 소리. 밥 먹으라는 어머니 소리. 돌아보면 어머니는 뵈지 않고, 위로 아래로 멀어져야 하는 그들 사이에는 다시금 철조망이 쳐진다. 




헤어져서도 끼니를 챙기고, 꾸역꾸역 밥덩이를 삼켜서라도 다시 만나고픈 꿈을 붙잡는다. 그러나 저물녘의 햇살 같은 나날 속에서 기다림은 피가 마르고 그리움은 뼈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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