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기억

간편소설 다섯

룸미러 안쪽에서 노모가 눈을 껌벅거린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차창 밖은 자욱한 안개들의 러시아워다.


“저희 쪽에선 더 모시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러니 다른 시설을 알아봐 달라는 요양원 원장한테서 며칠간 말미를 얻은 게 닷새 전이었다. 짐을 챙겨 퇴소할 때 노모는 목덜미를 잡힌 새끼 고양이처럼 얌전했다. 툭하면 동료 어르신들을 할퀴고 물어댄다는 살쾡이 같은 사나움은 보이지 않았다.


“아부지!”


뜻밖의 호칭이 차창 앞으로 쏠린 신경을 뒷좌석으로 훅 잡아챈다. 내가 외할아버지를 빼박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노모였다. 죽은 친정아버지와 산 아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린, 최소 반세기 이전으로 퇴행이라도 한 듯한 노모의 기억이 목을 휘감는다.


“집에 가요. 집에…….”


앞선 세 차례의 퇴소. 다른 시설로 옮기기 전 잠깐 묵어가던 아들네에서 노모는 살쾡이 같은 사나움을 드러낸 바 있었다. 냄새 나는 옷을 세탁기에 넣는 며느리에게 도둑년이라 쏘아붙이며 머리끄덩이를 잡았던 것이다. 집으로는 다시 갈 수 없었다.


처음엔 물건 이름을 잊었다. 이어서 물건 놓아둔 자리를 잊었고, 다음으론 가스 불에 국솥 올려놓은 걸 잊었으며, 이윽고는 외출했다가 어느 길로 귀가해야 하는지를 잊었다. 그리고 이젠 당신의 아들마저 잊은 듯하다. 자욱이 흐려진 전방 시야처럼 노모의 기억에도 안개가 짙어지는 모양이다.


집에 가자고 조르는 노모에게 침묵으로 맞선다. 거친 안개의 밭을 갈고 있는 일소처럼 차는 느릿느릿 전진 중이다. 멍에인 듯 등 뒤에 놓인 노모. 쟁기 같은 노모의 혀끝에 툭툭 걸리는 아부지라는 돌덩이. 시야도 갑갑하고 속도 갑갑해서 차를 세운다.


차문을 열고 나온, 인적 드문 지방도. 안개 속에 머리 감는 가로수 옆에서 허옇게 숨을 토하는 차를 등진 채 담배를 태운다. 새로 입소하는 곳에선 또 얼마를 버틸 수 있을지. 할 수만 있다면 분리수거라도 하고 싶은 게 속 썩이는 가족이라더니, 이런 멍에 따위 안개 속 저 멀리로 확 던져버렸음 좋겠다. 화장실 벽 낙서 같은 생각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마지막 한 모금을 길게 빤 다음 차에 오른다.


그리고 다시 느릿느릿 전진하다가 콱 브레이크를 밟는다. 룸미러 안쪽에 있어야 할 멍에가, 아니 노모가 보이지 않아서다. 반쯤 내려진 뒷문 차창을 타고 흘러든 안개가 빈자리를 흐릿하게 채우고 있을 따름이다. 몇 분 전만 해도 멀쩡했던 존재가 안개로 화하기라도 한 건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한 상태로 차 안에 머문다. 깜빡이등을 켠 채, 언제든 돌아올, 어쩜 결코 돌아오지 못할 조난선을 기다리는 해무 짙은 바닷가의 등대처럼,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