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거기 있었을까?

간편소설 여섯

깊은 바닷속에 호기심 많은 산이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육지의 삶이 궁금해진 산은 바닷속 암석 지대와 모래밭을 걸어서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눈부신 태양, 갯내를 품은 신선한 공기, 그 속에서 햇빛 한 줌씩을 물고 날아다니는 새들. 바다 위 세상에 반해버린 산은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러자 인간들이 몰려와 산 둘레에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흰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와 기계로 바닥을 훑고, 돌을 캐고, 흙을 파고, 다시마며 산호며 말미잘 따위를 뜯고, 각종 기구로 길이와 높이와 넓이를 쟀습니다. 이런 부산스러움을 산은 바다 위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한 신고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윽고 철조망이 걷히고, 사람들이 멸치 떼처럼 밀어닥쳤습니다. 멸치들은 찰칵 소리 나는 물건을 들고서 사방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돌이나 산호를 가져가는가 하면, 구석구석 쓰레기 더미를 남겨놓았습니다. 그 와중에 산의 정수리까지 길을 낸다며 울퉁불퉁한 바닥을 고르고, 가파른 곳엔 쇠기둥들을 박아 밧줄로 연결했습니다. 산은 몸살을 앓았지만, 나 좋다고 찾아와 이러는 걸 어쩌겠나 싶어 꾹 참았습니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메마른 돌과 흙 위로 비가 내리고 소금기가 씻기면서 풀이 돋고 관목이 자랐습니다. 그 덕분에 멸치 떼가 안겨주는 몸살도 잊을 만큼 산은 행복했습니다. 자신의 정수리와 허리와 발치에 철탑이 서고, 그 사이로 이어진 쇠줄을 통해 탈것들이 오르내리기 전까진 말이죠. 바야흐로 아래위에서 폭증하는 멸치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 건 누군가의 실화로 일어난 산불이었습니다. 산의 절반 정도를 태우고 불이 꺼지자, 산 둘레에 다시 철조망이 쳐졌습니다.


거짓말같이 찾아온 휴식의 시간 동안, 산은 온통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 통증을 지그시 참았습니다. 그러면서 묵직하고 차가운 바닷속을 떠올렸습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픈 맘이 파도쳤지만, 아직 몸의 절반을 덮고 있는 풀과 관목뿐 아니라, 불탄 자리에서 어린 나무를 심는 멸치, 아니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를 허물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금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나무 심기가 중단되었습니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이 땅속에 구멍을 뚫고 뭔가를 밀어 넣은 다음 불을 붙였습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나게 끔찍한 통증을 느끼며 산은 기절했습니다. 그러고 다시 깨어났을 땐 새벽이었습니다. 옆구리에 깊숙이 팬, 바람구멍 같은 상처를 통해 풀과 관목과 사람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남김없이 새어나갔습니다.


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발치에서 뽑힌 철탑을 끌면서, 어느 날 뭍으로 올라왔던 것과 반대로 바닷속 모래밭과 암석 지대를 비틀비틀 걸어 내려갔습니다. 날이 밝아 산을 찾아온 사람들은 거기 있어야 할 산 대신에 바닷물로 채워진 거대하고 탁한 호수를 망연자실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