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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Apr 04. 2024

오늘은 마티니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소소한 술이야기

오늘은 마티니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제 자랑부터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맛은 관계없이 7분안에 3잔을 재료와 순서를 안틀리고 만들면 된다]

2018년도에 취득한 자격증입니다. 저도 나름 국가 공인 조주기능사입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마티니는 특유의 쨍한 맛이 안 나서 바에 가서 비법을 물어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답은 손맛이었습니다. 하루키도 여러 인터뷰와 수필을 통해 칵테일은 결국 손맛이라고 말합니다.

“재즈 바를 하면서 저에게 있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적어도 10명 중에 1명의 바텐더는 정말 좋은 칵테일을 만드는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전 그런 재능을 믿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그 타고난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간사이 타임아웃' 과의 인터뷰 중 에서

마티니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칵테일입니다. 드라이 진 2oz(60ml), 베르무트 1/3oz(10ml)를 믹싱글라스에 넣고 잘 저어준 후에,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칵테일글라스에 따라주면 됩니다. 그렇게 잔에 전부 옮기고 난 뒤에 올리브를 이쁜 꽂이에 꽂아서 하나 넣어 주면 완성. 염장된 올리브에서 올라 오는 특유의 짭조름한 맛이 쨍한 느낌의 첫맛의 뒤를 받쳐줍니다. 저 정도의 양이면 믹싱과정에서 녹은 얼음의 양과 합쳐서 대략 80~90ml 정도, 일반적인 칵테일글라스의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 용량이 됩니다. 그중에서 40도가 넘는 드라이진이 3분의 2 이상 들어가니 제법 술이 취할만한 양입니다.

[그냥 진에다가 마타니 베르무트를 더해서 젓고, 올리브를 넣으면 끝]

제 기준에서 마티니 맛의 포인트는 처음에 느껴지는 쨍한 맛입니다. 정말 다른 표현을 찾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차가움과, 높은 도수의 알코올과, 베르무트의 허브향이 섞인 그 맛에는 ‘쨍’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마티니의 기주가 되는 진을 보드카로 바꾸게 되면 보드카 마티니가 됩니다. 보드카 마티니는 우리 제임스 본드 아저씨께서 즐겨 드시는데 특유의 대사가 있습니다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 오리지널의 진 대신 보드카를 쓰고, 젓지 말고 흔들어서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특유의 삐딱함이 보이는 듯한 취향입니다. 사실 차갑게 만들기에는 흔들어서 쉐이킹 하는 게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흔드는 과정에서 얼음이 더 많이 깨지면서, 물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도수가 낮아지게 되는데, 그건 또 드라이함을 마티니의 미덕으로 칭송하던 여러 캐릭터들과는 상반되는 취향입니다. 작가 중에서 상남자를 찾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헤밍웨이 아저씨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15:1까지 높인 마티니를 즐겨 마셨고, 미국의 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 아저씨는 칵테일잔에 베르무트를 따랐다가 버린 뒤 그 잔에 진을 따라 마셨다고도 합니다. 영국의 처칠 아저씨는 오직 진 만을 가득 채워 마시면서 눈으로 흘깃 베르무트병을 처다 봤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런 드라이한 매력에 끌렸는지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마티니는 주로 남성적인 칵테일로 묘사가 됩니다. 몇 개의 소설에서 마티니가 등장하는데, 먼저 [1Q84]에서 아오마메가 아유미와 함께 바에 갔을 때 등장합니다. 키가 크고 젊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혼자 마티니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아유미는 “아오마메 씨 취향 아니야?”라고 넌지시 귀띔합니다. 하지만 아오메메는 “내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남자 없는 날”이라며 작업에 나서지 않습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전망 좋은 26층 호텔 바에서 “눈이 내리는 창밖의 막막한 어둠을 보면서”한껏 폼을 잡고 마티니를 마시는 주인공이 나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랑을 받는 칵테일답게 하루키의 책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도 마티니가 등장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도 홀든 콜필드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칼 루스라는 인물이 마티니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이놈들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그는 나를 보고도 인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사람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라고는 데이트 약속인지 뭔가가 있어서 몇 분 밖에는 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드라이 마티니를 주문했는데, 바텐더에게 올리브를 넣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더욱 드라이하게 해달라고 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 [캐롤]과 [블루재스민]에서도 주인공인 케이트 블란챗이 마티니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블루재스민]에서는 중요한 상징으로서 기능하기도 합니다. 칵테일 잔을 들고 미소 짓는 디카프리오가 떠오르는 영화 [위대한 게츠비]도 있습니다. [킹스맨]에서는 앞서 말한 제임스본드의 마티니를 다시 한번 비틀어 주문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Martini. Gin, not vodka, obviously. Stirred for 10 seconds while glancing at an unopened bottle of vermouth. Thank you” 보드카가 아닌 진을 흔들지 말고 열지 않은 베르무트를 10초간 바라보면서 저어서 만드는 칵테일은 본드 아저씨가 마셨던 마티니 보다 훨씬 드라이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보기에는 터프한 본드 아저씨와 나이브해 보이는 에그시. 그들이 주문하는 마티니가 본인들의 성향과 반대된다는 점까지 공들여 오마주한 사실눈치채고는 한 껏 우쭐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만들기는 쉽지만, 맛있게 만들기는 어려운 칵테일 '마티니' 마티니 한잔 만들어 두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폼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안주로는 달달한 초콜릿이 좋았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보내며 이만.


[케이트 블란쳇 언니는 실제로도 마티니를 좋아하는게 아닐까요?]

오늘도 역시 두 권의 책에서 옮겨온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직전 맥주이야기에 언급했던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연희동에서 [책 바]를 운영하시는 정인성 님의 [소설 마시는 시간]에서 참고한 내용들이니 두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책 바]에는 직접 방문해서 칵테일 한잔과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시는 것도 좋습니다. 조주기능사 자격을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책 바]에서 보낸 기분 좋은 두 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책과 술을 다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세요. 강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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