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혐오가 잘 팔리는 나라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목 끝까지 차있는 상태. 침소봉대된 유튜브 내용을 본인의 통찰이라도 되는 듯 떠들고 다닌다. 그래서 요즈음 기피대상 1호가 유튜브에서 주은 의견을 가지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다.
양양에 다녀온 모두가 하룻밤의 불나방이라 규정짓고 검증도 안된 몇 줄짜리 글들을 퍼 나르며 낄낄댄다. 짝짓기를 목적으로 양양에 가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그저 바다를 보러, 그저 서핑이 좋아서 양양에 갔다. 하지만 무성의하게 쓰인 프레임은 조롱하기 좋게 강회 되어 갔다. 코미디 클립들이 만들어지고, 커뮤니티발 썰들이 횡횡했다. 결국 한국의 서퍼비치는 괜히 눈치 보이는 곳이 되었고, 양양에 가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혐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러닝씬이다. 우르르 떼를 지어 달리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무개념 러닝크루. 값비싼 장비들로 치장한 남녀가 달리기를 빙자해 만나는 '나는 솔로다' 동호회 펀. 건널목을 가로막고 인증숏을 찍는 인스타 충들의 집합.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는 SNS를 가득 채우는 간증들로 확대되어 갔고, 급기야 몇몇 지자체에서 모여 달리기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5년 차 중급러너의 입장에서 달리기를 위한 변호를 해보자면.
달리기는 건강에 좋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와 사례가 넘친다. 나도 5년간 심신건강에 지대한 도움을 받았다. 달리기를 통해 획득된 평온함과 자신감이 일상생활도 바꿨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달리기는 질리기 쉬운 운동이기도 하다. 단순한 동작의 무수한 반복. 건강상의 이점과 쏟아지는 도파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귀찮음이 어깨를 누른다. 한두 번 포기하기 시작하면 다시 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건 너무나 쉽다.
[리암 갤러거 형님도 식스팩 보다 조깅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혼자 뛰는 것만큼의 시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달리는데 쓰고 있다. 의욕이 넘치는 순간 약속을 잡고 그 약속의 힘으로 다시 신발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무겁던 몸은 달리기의 안부를 묻는 소소한 말들 속에서 풀려나가고 그렇게 또 하루를 달리며 달리는 사람의 정체성을 이어나간다.
빨라지기 위해서도 혼자 보다는 함께가 좋다. 한계점을 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강해지는데, 혼자서는 그 훈련이 쉽지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고 끌어주며 겨우 버텨내는 단련의 과정들. 목표에 대한 도전의식과 성장의 즐거움도 달리기를 이어나가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즐겁게 강하게 멀리 달리기 위해선 함께 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몸에 좋은 달리기를 오래 계속하기 위해서는 혼자보다 함께가 좋다는 말이다. 러닝크루가 민폐와 구애를 목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다는 변론이다. 어느 집단에서나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 유명한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러닝씬이 커져가면서 정신이 아픈 러너의 절대인원도 늘었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빈도도 늘지 않았을까? 최근 1년 사이 유입된 러너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달리기의 매너를 아직 배우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처음 골프장에 간 날 급한 마음에 그린 위를 뛰어다니다 혼난 경험이 있다.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손들어 직원을 부르다 핀잔을 들은 일도 있다. 매너도 학습이 필요하다. 몰라서 그런 것들은 가르치면 될 일이다.
심신이 건강한 국민이 늘어나는 건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혈압과 당뇨약을 먹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우울증과 생활습관병의 유병율이 늘어만 가는 상황에서 러닝붐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다. 무조건 비난을 할 것이 아니라 갑자기 늘어난 산책로의 인구밀도를 적절히 조절할 시스템을 고민하는 게 먼저다. 달리기를 위해 만들어진 트랙에서 조차 달리는 사람을 욕하는 분위기는 누굴 위한 손가락질인가. 민폐 러닝크루에 대한 기사를 복사해서 퍼 나르는 기자들이 원하는 건 국민의 알 권리인가. 조회수 장사인가.
대뜸 모여달리기를 금지하고 보는 행정은 시간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갈 거라 믿는다. 걱정되는 건 달리기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확대되는 것, 달리는 사람들이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만히 두면 안 그래도 하기 싫은 게 달리기인데 꼭 그렇게 까지 만들어야 속이 후련하실까. 달리기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를 확산하며 알량한 조회수에 즐거워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진짜 세상은 모니터 밖에 있다고. 심장이 터질듯한 호흡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거라고. 세상을 혐오할 대상으로 가득 채우고 나면 당신들의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넣을 자리는 없어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