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마음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일
한국 프로야구에 중독성 강한 응원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KIA타이거즈 소크라테스의 응원가가 단연 최고이지 않을까. 양손으로 'ㅅ'모양을 만들며 반복하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와 박자. 누구라도 쉽게 중독되고야 마는. 이 노래는 티미 트럼펫이라는 호주 출신의 DJ가 만든 '나르코'라는 곡이다. 붐붐 거리는 EDM비트에 맞춰 세상 멋있게 마운드로 뛰어가는 에드윈 디아즈의 입장곡으로 유명한 곡. 실제로 티미 트럼펫이 시티필드에서 라이브로 '나르코'를 연주하는 영상은 70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그 영상이 요즘 밤마다 내 알고리즘을 장악한다. 시험이 코 앞인데, 이것은 과학인 건가. 시험이면 무언가에 중독되어 흥얼거리게 되는 현상. 가사도 없는 멜로디에 머릿속이 자주 흥겹다.
반년정도 하나의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쓸데없이 8과목이나 되는 방대한 양에 재무계산기를 연신 두드려야 하는 시험. 검수가 제대로 안되어 하루 종일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고약한 교재에, 동영상 강의도 책을 대신 읽어주는 수준이지만, 뭐 그래도 소정의 필요에 의해 합격해야만 하는 시험. 그냥 회사 일이라고 해두자. 그 지루한 여정의 끝이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끝까지 벼락치기라도 해봐야 하나, 차라리 컨디션 관리와 기도를 병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낮 시간의 각성을 위해 마신 카페인이 넘쳐 잠 못 드는 밤, 유튜브 쇼츠에서 익숙한 이 영상을 만났다. '드디어 히어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철제로 된 문을 천천히 지나 마운드를 향해 달려 나오는 뉴욕 메츠의 마무리 투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103마일의 강속구를 한가운데로 꽂아 넣던 낭만파 클로저, 슬라이더와 직구 두 가지 구종만으로도 타자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리던 에드윈 디아즈. 마무리 투수의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구나. 지금은.
미무리 투수는 등판할 때마다 터프한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실투 하나로도 그날의 경기가 뒤집혀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과 긴장감. 피지컬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한 순간이다. 내가 던지는 직구는 타자의 방망이를 앞질러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 오늘의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확신.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닐까. 어찌 흘러갔던지 간에 긴 수험기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충분히 노력했고, 넘치도록 이기고 싶다. 가보자. 마운드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