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활용하는 방법

'어쩔수가 없다'를 본 다음날 양치하다 떠오른 생각

by 오제명

오래 기다려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가 제작진의 기대를 하회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주변의 얘기들을 종합해 보니 호와 불호가 진하게 갈린다. 나는 어쩌다 보니 재관람까지 하게 되었으므로 극단적인 '호'의 포지션. 최초의 재관람 영화도 '헤어질 결심'이었으니, 나는 박찬욱의 이야기에 쉽고 깊게 매료되는 듯하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잡설로 한참을 떠들고 싶지만, 한밤중에 갑자기 불이 켜져 버린 센서등처럼 내 관심을 독점했던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할 것 같다.


[무대인사에 빈자리가 남아서 나도 모르게...무대인사는 앞자리가 명당]

'같은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이 왜 이렇게까지 갈라지는 걸까?'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만난 독서 토론의 자리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주인공이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 인지, 앵무새는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에 대한 모호함이 해결되지 않아 책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분들이 계셨다. 이야기의 흐름에 논리적 구멍이 있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느낌. 끊어진 다리를 어떻게 건널까. 어딘가에 감춰진 복선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이야기를 쫒는 그들을 '스토리'형 관객이라 해보자. 스토리형 관객들은 이야기의 촘촘한 짜임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든 시퀀스가 명징하게 직조된 개연성 충만한 세계. 또한 그들은 첫 장면부터 깔려있던 떡밥들이 말미에 회수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어쩐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 한마디를 위해 대사, 장면 하나하나에 숨겨진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몰입한다.


그런가 하면 필수적인 개연성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야기라는 형식 위에서 표현되는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박찬욱이 그린 유만수 씨는 저 상황에선 저런 고민을 하고 이런 반응을 하는구나. 자신의 다른 모습들을 용기 내 마주하고, 또 넘어서려 하는구나. 그래 그런 과정은 고통스럽지.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실직이라는 설정과 라이벌들을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의 플롯은 개인의 어떤 측면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라는 건물에 기둥이 한두 개쯤 없어도, 천장에서 비가 좀 세더라도 '뭐, 중요한 건 아니잖아.'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이런 사람들은 '인물'형 관객이라고 하자.


대부분의 관객은 '스토리'와 '인물'이 사이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쫒는다. '이야기의 외연'과, '인물의 내면'. 관객이 집중하는 곳이 호와 불호를 가르는 기준점이 될 것이고. 기준점에 가까운 이야기가 관객 자신에게 좋은 영화가 된다.


관객이 '스토리'형과 '인물'형 사이에 어딘가에 존재하듯이 이야기의 작자도 그 사이 어딘가를 겨냥한다.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게!'와 '이런 사람이 있는데 너의 모습도 그렇지 않니?'사이의 어딘가.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달성해 낸 영화를 우리는 마스터피스라 부르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걸작이 매번 나올 수는 없다는 당연한 가정하에서 작자의 스타일은 중요해진다. 결론은 각자에게 맞는 이야기꾼이 있을 뿐이란 말. 결이 맞는 누군가.

칸트를 빌려 허세 넘치게 취향을 고백하자면...


'칸트는 철학의 궁극적 과제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역할을 탐구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탐구했으며, 『실천이성비판』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과 의무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판단력비판』을 통해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칸트 본인의 종교적인 목적과 별개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어떤 방식으로든 견뎌낸다'라는 니체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희망은 삶을 이어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나'와 닮은 사람들이 궁금할 듯하다.


[사람이나 영상이나. 이쁘면 눈이 더 간다. 손예진 캐릭터도 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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