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불식간에 지나가는 한국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의 봄날
2016년 8월 중하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들은 희희낙락하며 여유에 넘쳐 있었다. 복수의 정체불명 업계 관계자들이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였기에 4차 모범규준 때 탈락하게 된 주요 요인으로 보였던 ‘차별 규정'을 중국 스스로 철회하였다는 승리의 축포를 쏘아 올릴 때만 하더라도 모든 게 순풍에 돛단 듯이 잘될 거로 보였다. 수백 억의 국가 R&D 예산이 별다른 개발 내용도 없이 배터리 전기차용 신소재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기획되어도, 조만간에 우리나라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이 모바일 IT 쪽 소형에 이어 드디어 배터리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장치에 들어갈 중대형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까지 세계 1위가 머지 않았다는 장밋빛 전망도 다시금 심심찮게 나오던 때였다. 이유는 막론하고 그냥 다 잘될 것 같은 때였다.
자아도취적인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위기는 갑자기 찾아 왔고 바닥조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대미문의 갤노트7 이상발화 사건이 전세계적으로 터지면서 우리나라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 자체의 민낯이 드러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산업내외에서 터져나왔다. 두어 달에 가까이 랠리를 벌인 갤노트7 이상발화 사건 때 일어난 일은 책으로 쓴다고 해도 한두 권으로 모자랄 정도로 드라마틱했다(갤노트7 이상발화 사건은 필자가 칼럼을 쓰는 이 시점에도 재현이 되지 않아 미궁에 빠져 있다 해야 할 상황이다. 일천한 안전 인증 테스트 경험으로, 고장 분석이란 전혀 다르고 고 난이도 사건을 맞이하여 반복적인 실기를 하고 있는 산업부와 그 산하기관들이 벌이는 촌극도 가관인 상황이다. 멀쩡한 피해자를 블랙 컨슈머로 만든 산하기관까지 나타난 상황이다). 멀쩡해 보였던 우리나라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이 내부에서부터 기초부터 무너지는 마당에 국외에서 최악의 악재가 터졌다. 그것은 중국으로부터 미세먼지처럼 날아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 할 수 있지만,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갤노트7 이상발화 사건으로 한숨 돌린 삼성SDI와 한국 리튬이온 이차전지 업계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배터리 모범 규준 인준 규정에 관한 의견수렴안을 공개했다. 이 의견수렴안은 자국내 관련 업계와 전문가의 검토를 한 달 여 거친 후 내년 부터 실제 규준에 넣을 예정이라 한다. 공교롭게 새로 들어갈 예정인 규준의 의견수렴안은 다음과 같다고 알려져 있는데, 중대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쪽에 있어 중국 시장을 중시하던 우리나라로서는 패닉에 빠지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배터리 제조사의 년산 중국내 제조 설비 능력이 8 GWh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최근 2년 사이 배터리 관련 중대 안전 사고를 범한 일이 없어야 한다.’
새로 넣을 것으로 검토 중인 의견수렴안 중 상기 두 가지 안이 우리나라 업체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이다. 배터리 제조사의 년산 중국내 제조 설비 능력 기준이 기존의 0.2 GWh의 40 배 정도로 강화된 부분은 국내 제조사들이 당장 시작한다 하더라도 2, 3년은 걸릴 사안이다. 중국의 자국내 배터리 제조사 중에서도 이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배터리 전기차용 같은 중대형으로 국한했을 때 BYD 하나 정도라 하지만, 중국내 소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생산 설비까지 포함하면 그 양상이 또 달라진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2년 사이 배터리 관련 중대 안전 사고 유무 사안은 외려 현실적으로 제재 사안일 수가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갤노트7 이상발화 사건이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삼성SDI는 2015년 12월에 홍콩에서 자사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장착한 배터리 전기 버스의 발화 사건의 셀 공급사였다고 의심을 받았다가 해소된 적도 있을 정도로 신경이 쓰일 법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선정된 업체에 소급 적용하지 않고, 5차 이후 신규 선정 기준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제안된 의견수렴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해 산업부나 전지 협회 관계자들은 마땅한 대응책은 수립되지 않았으며 한 달 정도 후 결정되는 것을 봐서 대응 방안을 고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입장은 의례적인 거라 심각하게 받아들일 건 아니다. 언제나 나오던 합리와 신중을 가장한 무능한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 의견 형태로 나오던 것을 수렴하지 않고 묵살한 응분의 댓가이기도 하다.
이번의 중국 의견수렴안 제시를 중국 입장에서 본 국내 매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매체들은 중국의 ‘꼼수'다. 그냥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 강하다. 생각치 못했던 상황이라 받아 들여 순간적으로 패닉은 왔지만, 무감각한 상태인게다. 뭐 그냥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입장으로 보인다. 무대책이란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중국이 이번에 내세운 의견수렴안이 중국이 자국 산업을 단순히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엔 상당히 무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씩 짚어 보도록 하자.
2000년대 후반 다임러 그룹의 디터 제체 회장이 중국 내수 자동차 시장 확대를 내연기관 자동차로 감당하려는 움직임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바가 있었다.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중국 시장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 확대 보다 오일 소비 증가 속도로 인해 오일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이 외려 위협받을 수 있을 거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셰일 가스 같은 새로운 유정이 개발되면서 우려됐던 급격한 오일 가격 상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신생 자동차 시장인 중국이 배터리 전기차 시장으로 가장 유망한 곳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선 배터리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안정적인 제조 설비 확보를 기본 요건으로 잡는 것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중국이 배터리 전기차용 리튬이온 이차전지 양산에 자신이 붙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배터리 전기차의 핵심 시장인 상황에 미국은 엘지화학의 올랜도 공장과 테슬라 모터스의 기가 팩토리로 확보한 것 같이 중국도 자국내에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봐도 무방하다. 자국의 중대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상기의 의견 수렴안의 수혜자가 중국 업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꼼수'라는 언론의 의견도 있지만, 위의 제안은 ‘꼼수’라고 보기엔 상당히 높은 기준이다. 최근 2년 사이 배터리 관련 중대 안전 사고 여부도 일본과 한국 리튬이온 이차전지 제조사들은 스스로들이 중국 제조사들보다 기술적으로 몇년 앞서 있다 자위하기 때문에, 이 기준도 신규로 인증받아야 하는 중국 제조사들에게 외려 사실 불리한 조건이라 보는 게 상식적이다. 하필이면, 삼성SDI에서 생산한 중대형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2015년 12월의 홍콩 발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타겟이 됐다고 볼 수 있겠지만, 상기의 추가 안들은 중국 배터리 제조사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기준임을 양지하여야 한다(이미 인증받은 제조사들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고 말이다).
그냥 좋은 시절은 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미 갤노트7 이상발화 사건 때 이상징후가 명확히 나타났었다 할 수 있다. 한 달 정도의 의견 재수렴 후 지금 공개된 의견 수렴안이 그대로 채용되면 안그래도 어려운 우리나라 제조사들에게는 진짜 겨울이 다가오게 된다. 백년지대계까지는 아니었어도, 십년도 못 내다 본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학연관의 ‘합심한' 무능의 소산이랄 수 밖에 없다. 체질도 점점 약해진 상황에 국외 환경도 극악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사익 추구에 연연하며 부패한 가짜 석학들과 산학연관 지도부 일각의 문제를 많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들어 보면 답이 없는 상황이다.
촛불집회에도 무감한 우리네 여당과 정부의 모습이 우리나라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학연관에 그대로 투영된다. 내부로부터의 개혁 밖에 방법이 없으며 좀 더 긴 호흡으로 뿌리부터 바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대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의 봄날이 이렇게 지나가나 싶고 골든타임이 지난지 오래이다.
11.2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