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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W Dec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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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규명과 개선공약의 갈림길에 섰던 삼성전자

IT 역사에 길이 남을 갤럭시노트 7 사태가 이제 일단락되었다.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의 근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도 일단락되었다고 평할 수 있는 까닭은 삼성전자가 내놓은 개선공약이 평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은 원인 규명이 되었다고 발표했지만,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의 근본 원인은 미궁에 빠졌다는 게 필자 소견이다. 미궁에 빠진 이유는 마땅히 했어야 할 원인 규명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제법 많은 배터리 관련 사고가 그러했듯, 이번 사태도 ‘원인 규명 실패’로 정리되었다.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 사태를 벗어나려는 삼성전자의 개선공약은 비교적 적절했으나, 마치 철저한 원인 규명의 소산인 양 받아들이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는 말이다. 삼성전자가 기초연구기관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 CPSC도 삼성전자 개선공약의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CPSC가 삼성전자의 테스트 결과와 같은 수준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시간과 공을 들여 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연구에 투입할 핸드셑(갤럭시노트 7)과 양사의 배터리로 만든 배터리 팩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했다. 그래서 CPSC는 삼성전자의 개선공약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체적인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 요인을 계속 분석할 것임을 밝혔다. 원인 규명과 개선공약 수용을 병렬적으로 하겠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CPSC도 원인 규명이 지상 목표인 연구기관이 아니기에 미국 소비자 권익과 선택의 자유를 확보해주기 위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 삼성전자가 근본 원인과 사고의 실체 규명에는 실패했다고 보이는 반면, 삼성전자가 내놓은 개선 공약으로 미루어 보아 총체적인 하드웨어(HW), 소프트웨어(SW) 문제, 그리고 지엽적인 배터리 문제가 결합한 복합적인 문제를 접했을 때의 접근법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을 밝히지 못한 마당에 최선이 아닌 차선책이 개선공약으로 나왔다고 판단된다. 이미 그렇게 나올 것이라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9월 2일 고동진 사장의 첫 발표 데자뷰였었다. 다만, 화려하나 데이터가 아닌 그래픽이 많이 채워져 있었을 뿐이다.


3~4개월 가량 십수만 대의 셑과 몇만 대의 배터리 팩(신품이든 중고품이든)을 갖고 애쓴 수백명의 직원, 그리고 리콜 작업에 투입된 직원들(AS 센터 직원들을 포함하여)이 회사 사정상 할 수 있는 한에서 얻어낸 결과였기도 하고, 이들이 차기작을 위해 한 일과 할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라도, 원인 규명에 고착되지 말고 개선공약을 실현하는데 집중해주는 게 훨씬 지능적인 접근법이긴 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서툰 방식으로 배터리 결함이 발화 원인이라 확고하게 웅변한 것에 관해서는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 그래서 근본 원인 규명에 실패했지만, 잠재적 결함도 피할 수 있는 개선공약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발표가 되었다.


최소 330건 발화의 치밀한 케이스 분석 보고의 부재?


발표장에서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 중 각국에서 보고된 사건 케이스 전수 분석 보고가 없었다. 단발성 단수 배터리 발화 혹은 폭발 사건일 때는 특정 케이스 분석으로 원인 규명이 가능하지만 이번 사태는 전혀 다르다. 출시 직후 시한폭탄 처럼 수백 건이 세계 도처에서 보고됐음에도, 삼성전자는 전형적인 ‘단발성 배터리 사고’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애당초 단발성 사고 분석 개념으로 접근했기에 근본 원인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변죽만 울리다 끝났다. UL 부문장과 필자의 의견은 이런 측면에서 궤를 같이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추가적인 연구가 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절대 ‘단발성 단수 배터리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본 사태에서 아주 중요한 케이스들이 임의로 배제된 채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상과열’도 세계 도처에서 보고됐음에도 불구하고, 무관하다 전제하고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원인 연구 대상 대부분이 배제된 상태에서 제대로 근본 원인 규명이 될 리 만무했다. 신호와 잡음이 제대로 구분되지 못했다.


셑과 배터리 팩 단품 발화율의 유사성?


십수만 대의 셑과 배터리의 테스트 조건은 일치할 수 없음에도, 우연한 발화율 유사성으로 배터리 결함 혹은 문제가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 원인으로 전제되었다. 샘플 크기도 각각 20만대와 3만개로 다르고, 테스트 조건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유사성이 배터리 결함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기 전에 필드의 430만대 발화율이 절반 수준인 것은 샘플 수 차이가 10배 이상 차이 나서라고 주장하기엔 임의성이 개입되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어진 UL, Exponent의 케이스 분석도 ‘단발성 배터리 사고’ 분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ATL 결함 주장은 개선판 최초 국내 사건의 발화지점이 배터리 하단 가운데 지점이었으며, 그외 케이스의 발화지점이 산포한다는 점에서 ‘단발성 배터리 사고’ 인식 수준에 머물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잘못 끼운 첫 단추로 인해 근본 원인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보인다. 필자로선 어떤 원인이 이런 전대미문의 이상발화를 일으켰나에 관해 밝혀지지 못한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표한다.


삼성전자의 개선공약은?


앞서 밝힌 바대로, 삼성전자도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가 차기작에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개선공약에서 삼성전자가 가진 갤럭시노트 7 이상발화 원인의 ‘심증’을 엿볼 수 있다. 원인 규명과 개선공약의 맥락이 맞지 않는 이번 경우엔 말이다.


먼저, 배터리 쪽 8대 안전 대책 대부분은 고동진 사장의 작년 9월 2일 발표를 보고 필자가 지적한 ‘후공정’으로 대부분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두 개 정도 새로운 게 있다손 하더라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가령, 샘플링된 베어셀 혹은 팩의 SOC 0~100% 사이의 충방전도 검수 측면에서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이 부분은 발표장에서 8대 안전 대책으로 생산 일정이 늘어지는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란 답이 열쇠이기도 하다. 다른 공정이 고속화되지 않은 한 다수의 검수 과정이 신규로 추가됐을 때는 당연히 시간이 더 든다. 마치 대단한 8개 검수 과정이 추가된 양 포장되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8개의 배터리 검수 과정 제안. CNET은 3개가 새로운 테스트이고 나머지는 개선될 거라고 했지만, 전지 업체들이 이미 하고 있는게 태반이다. / CNET


차기작의 하드웨어(HW) 설계에 내장형 배터리 장착 공간에 더욱 더 마진이 들어갈 것이란 일부의 관측이 맞는다면, 배터리 외부 폰 내부에서 배터리 팩에 가해지는 ‘외부 원인’을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취지를 반영하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SW) 쪽 알고리즘 최적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부분은 갤럭시노트 7이 도처에서 발화되는 동안에도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많이 이뤄졌던 것이기도 하기에 그보다 나아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 조처들이 8개 배터리 검수 과정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결국, 개선공약은 폰의 잠재적 설계 결함에 대한 대처에 집중되어 있다.


발표로 보았을 때, 필자가 사건 초기부터 우려했던 폰과 부품 제조의 취약점들 상당수가 방치되어 있었다. 상식 수준의 배터리 팩 업체 체크가 완전히 빠져 있는 등 우려를 자아내게 한 삼성전자의 개선공약이다. 방치된 취약점들은 작년 10월 초 고동진 사장의 다짐이 상당 부분 무위로 돌아갔다고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비전문가 분들의 눈엔 20만대 테스트 랩에 전시된 갤럭시노트 7들과 배터리 관통 테스트 등의 비디오 클립이 감동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의 눈에는 정부 높은 분들의 시찰에 대비한 연구기관들의 데모 수준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서리 부분 문제라 주장했으면 파우치형 전지 코어셀의 가장 취약점인 모서리 쪽을 니퍼로 찍어 단락시켜 발화하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게 나았다). 그런데도, '삼성 사태로 본 머나먼 신뢰 사회'에서 필자가 지적한 부품과 완제품 단위의 가속 스트레스 테스트가 잘 설계되어 개발에 활용된다면 상당수의 문제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가속 스트레스 테스트 중에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서 일어나는 이상과열과 발화로부터 시행착오를 통해 고쳐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원래 근본 원인 규명은 학계의 관심사이고, 제품 사고 재발 방지는 업계의 관심사이니 말이다.


관료화된 대응체계·철학의 전형


CPSC가 발표문에 밝혔듯이 향후 전지 업체들은 배터리 안전 기준 강화를 각오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책임을 통감한다. 자신들의 책임이다라는 실제 법적 책임이 없는 립 서비스로 일관했다. 배터리 쪽 책임이라며 전지 업체들에게 법적 책임은 묻지 않는 등 총체적인 맥락 상실 상황에 빠졌다. 뭐, 그래도 주가는 올라 주주 이익제고 등이 훌륭하게 달성되고 있으니 뭐가 문제냐 항변할 법도 하다. 좋은 게 좋은거다의 좋은 예가 되고 있고 관료화된 대응체계와 철학이 낳은 결과의 전형으로 볼만 하다.


삼성전자가 이번 기회에 배터리에 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 셑에 비하면 별거 아닌 싸구려 소재들로 만든 싸구려 은색 박스형 파우치 따위에 관해 말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전기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극한 조건의 사고에서 단락이 일어나면, 그 에너지를 다 발산하고 타버리는 게 배터리의 천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기에너지를 그만큼 저장할 수 있는 리튬이온 이차전지 아니었으면 ‘진정한 선 없는 혁명’도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래 삼성 그룹의 배터리 사업은 삼성전자에서 시작되었고 삼성SDI로 넘어와 빛을 발했음을 기억하길 바라며 차기작에서는 운칠기삼으로 운이 따르길 바란다. 23일 발표 현장에서 밝히지 않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각종 ‘잠수함 HW, SW 패치’에 명운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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