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XY한 배터리 전기차, 때로는 '혁신 없는 성공'도 있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최순실 게이트’로 망할 듯이 난리났다. 칼럼의 시의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필자도 ‘최순실 게이트'를 하나의 화두로 잡아 할 이야기도 많지만, 최순실 일가 이야기로 온 나라가 가득 찼어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상은 계속된다. ‘혁신', ‘창조', ‘융합', ‘융성', ‘뉴미디어' 같은 용어와 단어로 가득 채워진 희망찬 정부가 시작된게 어언 4년 전이지만, 밑천도 다 거덜난 상태로 황망한 상황이 펼쳐져 있다. 90% 이상의 국민들이 소위 ‘멘붕' 상태에 빠져 있다. ‘길라임'에 어이 없어 하고, ‘최씨 일가'에 분노하고 ‘국민연금'에 경악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혁신 없는 성공’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혁신, ‘창조', ‘융합', ‘융성' 이런 것 없이도 어떻게 이런게 가능할지에 관해 의문이 들 사람들도 있을게다. 하지만, 분명히 혁신 없이도 혁신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한 사례도 종종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세대 배터리 전기차라 할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할 때, 처음 나온 ‘배터리 전기차'들이 충전 후 주행 가능 거리가 ‘1X0 km’ 였기에 이를 ‘1세대 배터리 전기차'라고 구분해왔다. 이러다가 대략 충전 후 주행 가능 거리가 두 배 정도로 늘어나 300km 이상 달릴 수 있는 배터리 전기차를 ‘2세대 배터리 전기차'라 할만하다고 평하게 되었다. 충전 후 주행 가능 거리가 두 배 정도가 되었다 하니 리튬 이온 테크놀로지가 혁신적으로 발전했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차전지 기술이 등장한 게 아닌가 하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의외로 리튬이온 테크놀로지는 ‘혁신적으로’ 발전한 게 없다.
단지, ‘더 많이 넣었을 뿐이다’, 그렇다 해서 이게 쉬운 건 아니다. 다만, 그 개발의 방향과 전략이 제대로 되었을 뿐이다. 이를 위해 바꿔야 할 게 많고 전용으로 개발하고 개선해야 할 게 또한 많았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테슬라 모터스는 시작 자체가 ‘2세대 배터리 전기차’를 지향한 배터리 전기차 회사였다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진 18650 원통형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많이 적재'하는 방식을 택했었다. 처음부터 ‘2세대 배터리 전기차급'으로 사업을 시작한 회사가 테슬라 모터스였었다. 가장 많이 적재할 수 있는 로드스터 방식으로 테슬라 모터스가 시작했을 때는 내연기관 자동차 플랫폼을 배터리 전기차용으로 개조하여 만든 ‘개조 전기차' 방식이었다.
이후 모델 S가 차 바닥에 ‘플랫 배터리 시스템(Flat Battery System)’을 채용하며 배터리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여전히 ‘많이 적재’하는 방식을 고수하게 되었다. 이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충전 후 주행 가능 거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모델 S 기준으로 플랫 배터리 시스템의 에너지양이 100 kWh까지 올라가면서 더더욱 주행 가능 거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가깝게 되었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배터리 전기차는 파워트레인이라 이야기할 때 하이 에너지 이차전지 시스템을 포함시켜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성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에너지양을 장착함에 따라 퍼포먼스도 같이 올라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충전 후 주행가능 거리만 놓고 보더라도 이미 테슬라 모델 S 뿐 아니라 모델 X는 2세대가 아니라 3세대 배터리 전기차라 평해도 부족함이 없다.
GM도 스파크 전기차를 거쳐 쉐비 B-볼트(Chevy Bolt)를 EPA 기준 주행 거리로 383 km를 인증 받으며 2세대 배터리 전기차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GM도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선택한 방향이 장착하는 배터리 에너지양을 두 배로 늘리는 방향이었다. 에너지 밀도가 두 배로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장착 에너지양을 두 배로 늘리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여전히 쉐비 B-볼트는 시장의 외면은 받을지언정 기술적으로 실패할 거란 우려를 보이지 않는 반면에, 테슬라 모터스의 모델 3는 갖는 이유를 대며 ‘모델 3, 그거 되겠어요?’ 하는 의견을 피력한다. 뭐, GM이란 브랜드는 믿을만 하지만, 테슬라 모터스란 브랜드는 여전히 내일 당장 파산한다 하도 하나도 놀랍지 않을 거란 태세를 여전히 갖고 있다.
‘많이 적재’하는 방식의 테슬라 모터스의 신 모델은 모델 3이다. 모델 3는 2017년 상반기부터 고객들에게 인도될 거라고 하는데, 모델 3가 성공할만한 이유로 다른 전문가, 그리고 매체 담당자들에게 필자가 제시하는 근거는 외려 단순하다. ‘모델 3는 혁신이 없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다. 다만, 금융 문제가 없다면 말이다’
배터리 전기차도 만드는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차’급이나 주행 거리가 100 km 부근으로 도심에서 오고갈만한 통근용 차량으로 배터리 전기차 초기형을 개발해 시장에 보급하려 했다. 보급형이기 때문에 자동차 원가 구성에 배터리 시스템 가격 비중이 워낙 높아 준대형 내연기관 자동차를 살만한 돈으로 주행거리가 극악 수준인 소형 배터리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았다.
선택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배터리 전기차 밖에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 돈이면 살 수 있는 준대형 내연기관 자동차가 시장에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 소비자들이 곱게 볼 이유는 없다.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차 수준의 배터리 전기차가 성공하면 점점 크고 럭셔리한 배터리 전기차를 소비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이었으나 이미 소비자들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이와 달리 테슬라 모터스는 테슬라 로드스터로 먼저 세상의 눈길을 끈 후, 자신들이 시도할 수 있는 최상의 혁신을 모델 S에서 시도했다. 처음엔 시장에서 부침도 있었지만 결국은 모델 S는 배터리 전기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모델 X는 팰콘 윙 도어와 거대한 헤파 필터가 눈길을 끌었을 뿐 ‘혁신이 없는 모델’이었다. 테슬라 모터스는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과 정반대의 테크 트리를 따르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인데, 그 특성을 필자는 ‘혁신이 없는 성공’이라 요약하고자 한다. 외려 혁신놀음에 빠지지 않고 성공 가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혁신적인 모델 S로 다년간 시장에서 버텼고, 후속 모델인 모델 X로 혁신 없는 성공의 가능성을 타진한 후, 검증된 기술로만 만들어진 모델 3와 기가 팩토리의 준공으로 진정한 ‘혁신 없는 성공’의 좋은 예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검증된 기술로만 도전하는 대중적 배터리 전기차 시장 진입 전략은 고정관념에 빠진 이들을 ‘멘붕’에 빠뜨리고 있다. 혁신 없이는 성공하지 못할텐데 하고 말이다. 설령 쉐비 B-볼트는 실패할지라도 테슬라 모델 3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테슬라 모터스가 사람들에게 제시한 그들의 배터리 전기차 로드맵은 모델 Y에서 완성될 것이다. 출시 순서는 S-X-3-Y이지만, 이 영어 스펠을 다시 조합하면 ‘S3XY’로 조합된다. ‘섹시한’ 새로운 자동차의 시대를 열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장난스러움으로 만들어진 명명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도 모델 Y를 출시한 후 중요한 경영상 결정도 하리라 본다.
‘혁신 없는 성공'의 방정식은 분명히 낯설 수 있다. 어찌 보면 먼저 한 혁신의 방향이 워낙 잘 잡혔기 때문에 이어지는 성공이 혁신 없이도 성공한 것으로 비춰진 것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방향이 잘 잡힌 혁신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게 바로 테슬라 모터스이다. 모델 3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