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전지 이야기: 에너지 저장, 변환, 생산 장치
전기에너지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전지’라는 것이다. 이 전지는 태양전지, 연료전지, 그리고 화학전지의 일종인 일차, 이차전지가 있다.
이 세 가지 전지를 앞에 놓고 이야기할 때, 자칭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도 헷갈려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냥 전지이니 전기에너지 저장 쪽 아니냐는 것이다.
필자가 1990년대 초반부터 학위 과정 중에 이 세 가지 전지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인과 전문가들을 셀 수 없이 만나면서, 이 세 가지 전지를 어떻게 구분할까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매번 새로 설명하기도 번거롭고 말이다.
그러다 2001년경에 대한화학회 <화학세계> 초빙 논문 형태로 이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정리해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전기)에너지 저장, 변환, 생산 정치라는 정의였다. 전지라 부르는 것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고,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으며,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장치로 구분할 수 있다는 구분 패러다임의 제안이었다. 필자가 대한화학회 <화학세계>에 낸 이 구분 패러다임 이전에는 이런 정리를 찾아볼 수 없었으니, 우연찮게도 필자가 첫 단추를 꿰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이 구분 패러다임을 만들 때는 ‘전지’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을 재정의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에너지 저장 장치는 화학전지인 일차, 이차전지와 초고용량 커패시터가 있고, 에너지 변환 장치로는 태양(광)전지가 있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생산 장치는 발전용으로 연료가 발전소마냥 투입되는 연료전지로 구분했다. 사실 에너지 변환과 생산을 왜 굳이 나누었나에 관해 필자가 한 번도 명확히 밝힌 적이 없었기에, 예리한 후학들에게 질의를 받기도 했다.
기왕에 칼럼을 쓰는 김에 여기에 밝히자면, 무형의 다른 일차에너지에서 이차에너지인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태양광전지는 ‘변환’으로 정의했고, 유형의 연료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연료전지를 ‘생산’으로 정의했다. 이 체계는 2000년대 초반에 갖춰졌고 이에 근간하여 필자가 만든 것이 산업기술 분류체계의 ‘전지’ 중분류였다.
20년도 더 전에 필자가 한 에너지 저장‧변환‧생산 구분 패러다임은 이미 대중화된 지 오래지만, 외려 전문가 집단에서 상당한 혼란을 지닌 채 쓰고 있다. 한 ‘전지’를 가지고 어느 발표에는 발전이라 했다가 다른 어느 발표에선 이차전지라고 주장한다. 특히 메탈 에어 전지 쪽 무질서는 도를 넘어섰고 진짜 대형 참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난 사건인데, 이차전지 일부를 ‘발전’으로 법제화한 사건이었다. 이는 몰지각한 초선 입법가 하나가 저지른 만행이었고, 담당부처는 그 상황을 그대로 묵인하며 받아들이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기)에너지 변환과 생산은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변환‧생산과 저장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과학 근간을 정치와 행정이 입법을 통해 뒤흔드는 엽기적인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곧 있을 보궐 대선을 통해, 과학 기술을 뒤흔드는 입법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정상적인 시대가 다시 도래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03.29,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