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철우 Mar 05. 2020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많이 바꾸었다. 3월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다.  이번에 고2가 된 딸,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 모두 3주간 개학, 입학이 연기되었다.  학교의 빈 공간을 메워주던 학원도 임시로 문을 닫았다.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지도 못한다. 그냥 집에 있어야 한다.


 그럼 하루 종일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면 되겠구나 라며 즐거워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안타깝게도 아빠인 나도 코로나가 나의 모든 강의 일정을 중단시켜 버려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 그래서 월급쟁이인 아내가 마스크를 쓰고 출근을 하면 그때부터 딸, 아들, 나 셋이서 집에 있는다.    

 

중,고생인 아이들을 마냥 놀릴 수 도 없다 보니, 나는 임시 학습 감시자의 역할을 한다. 각자 계획을 세우게 하고 그것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도 한다. 공부 한다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고2 딸은 그나마 좀 익숙해 있는데 아들 녀석은 책상에 앉아 있는게 너무 힘든가 보다.  연신 집안 구석을 왔다 갔다 한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책상에 좀 앉아 있는가 싶으면 화장실로 들어가서 몰래 스마트폰을 한다.  내가 식탁으로 붙잡아 와서 공부를 시키려고 하면 10분이 지나며 잡생각에 멍을 때린다.  게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 이외의 활동을 아들이 책상에서 한다는 것은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자꾸 잡생각에 딴 짓을 하는 아들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나도 집중력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다. 공부를 좀 하다 보면 금세 잡생각이 난다. 군대 시절 날 힘들게 했던 선임, 오해로 싸웠다가 화해도 못하고 이제는 영원히 연락이 안 되는 친구  등...  잠깐 공상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려서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날 닮아서 우리 아들도 잡념과 공상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우리는 항상 몰입과 집중을 하기 위해 잡념을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이 잡념이라는 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잡념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이것과 관련한 전설적인 이야기로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lk effect)라는 것이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과 학생이던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과 그녀의 스승이자 사상가인 쿠르트 레빈(Kurt Levin)이 제시한 이론으로 우연히 식당 종업원이 그 엄청나게 많은 주문을 동시에 받아서 그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나 주문 된 음식에 대한 계산된 이후에는 모두 잊어버리고 무엇을 주문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착안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   



자이가르닉이 진행한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실험 참가자를 A, B 두 집단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각에게 시 쓰기, 구슬 꿰기, 수학 문제 풀기 등 20개 안팎의 과업을 맡겼다.

A들이 과업을 할 때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건드리지 않고 배려한다. 반면에 B 들이 과업을 할 때는 계속 방해를 한다. 음악을 틀고, 몸을 치거나 중단을 시키거나 다른 일을 하게 한다.


실험이 끝나고 참가자들에게 어떤 과업이 기억에 남는지 물어봤다. 그 결과 B 집단 참가자들이 A집단 참가자들에 비해 2배 이상 더 잘 기억해 낸 것이다.  그리고 B집단이 기억해 낸 과제 중 68%는 중간에 그만둔 과제였고, 끝까지 완료한 과제는 32%만 기억해 내는데 그친 것이다.


A집단의 경우 집중해서 과제를 수행하면서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모두 잊어버렸다. 반면 B집단은 지속적인 주변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마무리를 못했고 B집단 에게는 아직 마무리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마무리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B는 계속 잊지 않고 기억을 하게 된다.

즉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끝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긴장이 지속되다 보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요즘 드라마는 엔딩 장면에서 다음 회 예고를 너무 너무 궁금하게 만들어 계속 잊히지 않게 한다.


첫사랑이 잘 잊히지 않는 이유, 드라마에서 한 회가 끝날 때마다 결정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를 매우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다음 회에 계속하는 이유도 모두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그만 잊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언제 적 세월호 입니까?"

"어유.. 마무리가 되어야 잊죠...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 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이제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진실이 계속 은폐 되었고, 뭘 좀 하려면 방해하고, 책임자가 회피하고 덮어버리려 하니... 유족들이 어찌 잊을 수가 있습니까? 마무리가 안되었는데.."  


세월호 부모들은 대체 언제 마무리가 되어 제대로 잊을수 있을까?


그러면 여기서 질문. 도대체 자이가르닉 효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첫째, 잊어버려야 할 일과 잊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일은 항상 여지를 남겨 두라는 것이다.


둘째, 잊어버려야 할 일은 마무리를 하라는 이야기 이다.

내 경우 한동안 군 생활 시절 아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군대 동료와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문득 생각이 나면 " 그때..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라면서 혼자 감정에 빠져 아쉽고, 괴로워 하면서 한 시간 넘게 공상에 빠지곤 했다. 이는 나를 피폐하게 했고, 힘들게 했다. 그래서 하루는 날을 잡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는 의식을 가졌다. 그에게 가지고 있는 지금의 감정을 혼자서 말하고, 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의식 이후 놀랍게도 더 이상 그 일이 문득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일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자이가르닉 효과에 따르면 현재의 일에 집중하려면 그 전의 일에 대해 마무리가 되어 잊어야 한다는데

아직 마무리가 안되었고, 마무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런데 현재 다른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측면의 실험을 소개한다.


 심리학자 마시캄포(Masicampo)의 실험인데 마시캄포는 시험을 앞둔 대학생 집단을 모아서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A집단은 파티를 생각하라고 했다. B집단은 시험을 생각하라고 했다. C집단은 시험을 생각하고 이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계획을 세우라고 했지 공부를 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영어 단어를 보여주면서 빈칸을 채우라고 했다.


예를 들면 Re____라고 단어를 준다. 그러면 시험을 생각하고 있던 B집단의 경우는 Read, Remember 등등의 공부, 시험과 관련된 단어를 떠올린다. 반면 A집단은 공부,시험과 관련 없는 Real, Rest 등의 단어를 떠올린다.

재미있는 것은 C집단이다. 시험을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했던 집단은 B집단처럼 시험과 관련 있는 단어보다는 A집단처럼 시험과 관련 없는 단어를 떠올렸다. 즉 계획을 통해 시험을 잊게 한 것이다.   


마시캄포(masicampo)교수

마시캄포는 두 번째 실험으로 역시 세 집단으로 구별했다.  첫 번째 A집단은 최근 끝낸 프로젝트를 생각하라고 했고, B집단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완성되지 못한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C집단은 완성 못한 프로젝트를 떠올리되 추가적으로 이후 구체적 계획에 대해 작성해보라고 했다.


각각의 행동이 끝난 이후 동시에 1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읽게 했다. 그리고 다 읽은 이후 소설에 대한 이해도를 평가했다.  가장 이해도가 높았던 집단은 A와 C 였다. 그리고 B는 전혀 소설에 대해 집중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소설에 대한 집중을 방해한 동시에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그를 잡념에서 버릴 수 있는 것을 밝힌 실험이었다.   



결론은 계획을 잘 세우면 마치지 못한 일이어도 머릿속에 잡념으로 남지 않아 현재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무작정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잘 세워 하나 하나씩 해나가면 몰입해서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잡생각이 안 들게 하려면 계획이 꼭 필요하고 따라서 계획을 세워서 해야 할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들방 으로 갔는데 화들짝 놀란 아들은 몰래 하던 스마트폰을 침대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다.


" 그래! 아들아, 역시 넌 계획이 다 있구나! (넌 이미 잡생각을 없애고 있었구나...)"   



작가의 이전글 담배를 끊는 사람들의 심리학적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