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정리하기_1
기존의 디자인 역사 이해는 과거 작품의 '양식'을 답습하는 데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지금, 디자인 역사와 같은 이론 교육 또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혁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디자인 내부의 미시적 흐름을 넘어, 디자인 현상을 둘러싼 거시적인 '세상'의 변화에 주목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개념이란, 여러 사물과 현상 속에서 공통 요소를 추출해낸 보편적 관념, 즉 특정 분야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시대적 상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 견고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보편 개념'의 부재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한 디자인 보편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그를 둘러싼 다채로운 인접 학문과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래로부터 엄습하는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원초적 감정을 지니며, 이 두려움은 '불안'과 '공포'라는 두 갈래로 나타납니다. 고대 사회에서 인간은 거대한 자연 현상이나 원인 모를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이를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하며 제사장에게 의지해 심리적 '불안'을 달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종교는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했으며, 한편으로 인간의 소유욕과 이기심은 '국가'라는 시스템을, 국가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것을 지키고 빼앗기 위한 '전쟁'을 탄생시켰습니다. 인간 폭력성의 극단적 발현인 '전쟁'은 당대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공포'의 기억을 각인시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불안을 다스리던 제사장은 성직자로, 전쟁을 이끌던 전사는 귀족으로 분화하며 종교와 정치는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신 중심의 세계관을 약화시키고 과학적 사고를 확산시켰으며, 종교의 역할은 점차 윤리와 도덕의 영역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신의 권위가 축소됨에 따라, 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정당화했던 성직자와 귀족의 입지는 자연스레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전문 지식과 실용적 능력을 갖춘 새로운 '중간계급'이 채우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