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 아닌 장보기부터 밥상에 숟가락을 놓는 일까지 내가 직접 준비하는 과정을 선택했다. 나만의 공간을 찾아, 내 집을 찾아 엄마, 아빠에게서 떠났다. 현관 가득 내 신발만 가득한 내 첫 집은 커다란 창이 있는 10평짜리 네모난 모양의 공간이었다.
네모난 방이기도 집이기도 한 곳에서 나는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했고, 해냈었다. 밥을 먹기 위한 재료를 사러 가는 일, 얼마 큼의 가격이 적당한 건지 몰라 고민하는 일 그리고 15분이 넘는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부터 끙끙거리며 장 본 물건을 들고 집까지 걸어오는 일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오늘의 양파 가격이 저렴한 건지, 비싼 건지, 적당한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장을 볼 때마다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루는 엄마가 만들어준 소시지 야채볶음이 먹고 싶어 장바구니에 비엔나소시지, 양파, 파프리카를 담았다. 집에 들어와 엄마가 만들어주던 소시지볶음 모양을 그려보며, 핸드폰으로 요리법을 검색해보니 난이도는 초급이었다. 이 정도면 금방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리고 매번 동생과 눈치 게임을 하며 소시지를 사수했었는데, 혼자 이 많은 소시지를 다 먹을 생각에 들떴었다. 하지만 재료 준비를 시작하는 순간 내 모든 생각이 착각과 섣부른 설렘이었음을 깨달았다. 엄마의 소시지볶음을 따라 하려면 소시지에 예쁘게 칼집을 내야 했다. 20개가 넘는 소시지를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꽤 많은 양에 시작부터 고된 느낌이었다. 손도 느리고, 휴대폰 속 레시피를 셀 수 없이 눈과 뇌로 읽어도 금세 초기화되는 상황이 반복되어 멈추지 않는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혼자 썰고, 주춤거리고, 레시피 정독을 끝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이봉희 표 첫 소시지 야채볶음이 완성되었다. 초급 단계라던 소시지볶음은 요리 단계 고급 수준을 느끼게 해 줬다. 반찬 한 가지 만드는데, 그것도 초급단계 요리를 만드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린 나는 앞으로도 이렇다면 매 끼니가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이왕 만들었으니 예쁘게 담아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자랑했다. 엄마는 이런 것도 만들어 먹을 줄 아냐며 잘 만들었다고, 맛은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소시지 야채볶음이 자취 인생 엄마에게 자랑한 처음이자 마지막 요리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소시지 야채볶음은 결혼 전까지 한 번도 만들어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식을 아예 안 해먹은 건 아니지만, 거의 많은 날을 3분 카레, 짜장, 미트볼 그리고 김과 오이 고추로 아주 빠르고 간편한 삶을 살았다. 내가 선택한 간단한 삶 덕분에 내 오래된 냉장고는 늘 조금씩 허기진 시간을 보냈다.
결혼한 지금은 채소 가격에 대한 궁금증과 검색해도 복잡한 요리법은 요리사인 신랑에게 물어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많이 찾아온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엄마가 해주던 맛있는 요리를 신랑에게 알려주고 싶을 때는 혼자 상상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어 엄마에게 엄마의 요리법을 묻는 메시지를 보낸다.
엄마, 오늘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던 우유를 넣어 만든 계란찜이 너무 먹고 싶다. 이건 내가 아무리 흉내 내 봐도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을 느낄 수 없어.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엄마가 너무 필요한 날이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