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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May 02. 2020

딸의 유치한 부러움

 가끔 혼자 먹는 저녁이 외로운 날은 같은 동네에서 자취하는 이십년지기 집으로 퇴근을 했었다. 그 녀석 집으로 발길이 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친구의 냉동실은 항상 친구 어머니의 요리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집 작은 냉동실에는 얼린 국과 밥이 가득했다. 어머니 덕분에 집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냉동실에서 음식을 꺼내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얘는 엄마가 밥이랑 국을 얼려서 가져와 냉동실 가득 채워주는데, 내심 이 녀석이 부럽기도 했다.


 내 엄마는 김치 이외에는 내 방 오래된 냉장고에도 냉동실에도 아무런 음식을 넣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에게 받은 김치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엄마 몫에서 뺏어 먹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치는 꼭 필요했기에, 김치통이 텅텅 비어 가면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내가 자취를 시작하고 엄마에게서 김치를 얻어먹는다는 걸 알게 된 외할머니는 내 몫으로 조금씩 김장을 더 하셨다.


 친구의 냉동실이 부러웠던 나는 독립한 딸에게 밥과 국을 해서 가져다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일이 나에게도 생겼으면 했었다.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다가도 불현듯 ‘아니, 이럴 거면 독립을 왜 하나?’ 싶었다. 엄마 힘들게 괜히 두 집 살림시키는 것 같아 한 번도 엄마에게 서운하다, 부러웠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다. 대신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먹고 싶으면 엄마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 내가 직접 엄마 집 냉장고와 냉동실을 열어 살펴본 뒤 가져오고 싶은 걸 꺼내 내 집 냉장고를 배불리 해줬다.  


 스물네 살의 나는 내 냉장고에서 쉽게 찾을 수 없던 엄마의 요리가 조금 섭섭했지만, 지금은 그때 엄마가 나의 홀로서기를 묵묵히 지켜보며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김치만큼은 잊지 않고 나눠주어서 고맙고 다행이었다 싶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각자의 냉장고를 채워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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