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꼬마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셀레는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많은 준비와 끝없는 연습을 반복한다.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문방구로 향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제일 폼나 보이는 필통을 고른다. 계산을 하러 발걸음을 옮기는 엄마를 뒤로하고 잠시 샤프에 시선이 머물지만 엄마의 부름에 내 키보다 높은 계산대 앞에 서서 비닐봉지 가득 내 학용품을 담는 문방구 주인 아저씨를 바라본다. 계산이 끝나면 엄마는 학용품이 가득 담긴 봉투를 왼손에, 꼬마의 손은 오른손에 꼭 잡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꼬마의 연필 끝자락에 네임펜을 들고 하나씩 직접 이름을 적어준 뒤 신문지를 가져와 한 자루씩 커터칼로 연필을 깎아준다. 너무 뾰족하지도 너무 뭉툭하지도 않게. 혹여나 연필을 쓰다 꼬마가 다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애매한 연필심의 시작점을 만든다. 그 옆에서 꼬마는 뾰족하지 않은 연필심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뾰로통해지고는 한다.
이렇게 엄마가 꼬마 대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주면 꼬마는 혼자 해내는 연습을 반복한다. 푹 찌르면 금방 제 입으로 음식을 넣어주던 포크를 내려놓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내는 일. 제 덩치보다 큰 가방을 혼자 챙겨 메는 일. 제 집 현관문을 닫고 학교 교실 문까지 혼자 걸어가는 일. 이 모든 순간 엄마는 항상 꼬마 곁에 있어준다. 충분히 혼자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함께 해준다. 드디어 꼬마가 스스로 해내었을 때 엄마는 아직 놓이지 않는 걱정과 불안을 애써 감춘 채 잘했다며 다음을 위한 용기를 준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든든한 마음과 믿음을 공유하며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을 지혜롭게 잘 해냈었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고 우리에게 새로운 준비를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연습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몸이 아파도 담배는 포기하지 못하는 남자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 엄마는 아빠를 떠나보내고, 나는 엄마의 아빠를 떠나보내는 연습.
작년 4월, 우리에게 더 부지런하게 당신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게끔 만들었던 엄마의 아빠. 엄마와 내가 이전보다 더 많은 순간을 당신과 다른 세상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했던 봄. 아무리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혼자 가방을 메는 일보다 더디게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일.
엄마의 아빠가 떠나는 날을 좀 더 단단한 마음으로 견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준비가 뭐가 있을지 매일 생각한다. 신랑에게 언젠가 찾아올 내가 사는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떠나는 날을 위해 검은색 정장을 사러 가자는 말만 반복하고 예고 없이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며 연습한다. 수천번이 넘도록 연습했지만 아직도 옷장에 검은색 정장을 걸지 못한 당신의 손녀딸.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엄마 손을 잡고 문방구로 향하던 마음과 너무 다른 준비라 느껴져 무기력해지다 수많은 바람과 눈물로 끝나버리는 미련한 시간.
늘 그랬듯이 내년 봄에도 나의 엄마가 엄마의 아빠를 향해 아이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두 팔 벌려 "아빠!"라 부르며 현관문으로 향할 수 있길.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할아버지가 본인처럼 금방이라도 휘청거릴 듯한 의자에 기대앉아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길.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든든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었듯. 할아버지를 보낸 나보다 아빠와 더 이상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없는 엄마를 위로해 줄 수 있도록 마음에 단단한 근육이 생기기를.
우리가 준비하고 연습하는 모든 과정이 슬픔으로 몰아쳐 잠시 발을 묶더라도, 그래도 좋으니 그냥 이렇게 좀 더 오래. 익숙해지지 않는 준비와 연습을 할 수 있길. 조금도 설레지 않는 이 연습도 우리가 같은 세상에 머물러 있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젓가락질이 서툰 척하며 계속 포크로 반찬을 찍어 먹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