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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Apr 25. 2020

이상한 법칙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었다. 내 삶 불쑥 찾아오는 불행에 너무 흔들리지 않고, 불행의 무게가 가뿐히 견딜 수 있는 만큼이길 바랬다. 하루를 시작할 때도, 하루의 중간에서도, 하루의 끝에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었다. 나에게 오는 불행의 시작점을 원망하지는 않을 테니 그저 너무 깊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줄곧 나에게 오는 불행은 오랜 시간 머물러 많은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마치 장난감 양초처럼 희미해지지도 흔들리지 않은 채 오랫동안 불을 밝혔다. 장난감 양초도 건전지 수명이 다하면 꺼지기 마련인데, 왜 내 촛불 영원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촛불을 끄려고 안간힘을 쓰며 입바람을 내뿜다 문득, 늘 행복도 함께 머물다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 불행의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행복과 불행이 공평하게 머무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절실히 믿는 신이 없던 내가 ‘역시 신은 공평하구나.’라고 되뇌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상한 법칙에 사로잡혀 살았다. 오십만큼의 행복이 오면, 오십만큼의 불행이 오는 법칙. 그리고 꼭 행복 다음으로 불행이 찾아오는 법칙. 불행보다는 행복이 먼저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로 정한 익숙해질 데로 익숙해진 고약한 규칙.


 그렇게 행복과 불행이 공평하게 왔다가 떠나길 반복하다, 2년 전부터 이상한 법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을 갖게 된 것이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커다란 행복으로 말이다.


 처음 느껴보는 평범함이었기에, 행복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겁이 났다. 복의 몸집이 커질수록 불행은 도대체 어떠한 형태로 얼마나 거대하게 올지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무섭고 불안했다. 그냥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해지고 싶어 졌다.


 안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메일 한통이 왔다. 메일 속 문장을 따라 움직이던 내 눈이 걸음을 멈추고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이 행복이 언제 까지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좋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약간 걱정되기도 해요. 나한테 이런 큰 행복이 오면 금방 불행도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제 불행은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왜냐하면 불행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제가 느낄 수 없을 만큼의

사소한 것일 수 도 있고,  큰 것이여도 다 미래의 일이잖아요. 저는 지금 행복하니까 일단 행복에 만족하며 지내려고요. 언니는 요즘 행복한가요?

아니라면 제가 많이 도와드릴게요.' 


 내 마음속에 들어와 며칠을 머물다 떠난 것 같은 문장들. 다 들켜버렸는데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시원해지는 마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다정함에 톡, 흐릿함이 떨어진다. 일단은 지금의 행복을 맘껏 즐기겠다는 친구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음성과 표정이 없어도 느껴지는 따스함 때문이었을까. 불행이 와도 전보다 더 건강하게 이겨낼 이 생겼다.


 아마도 내 행복과 불행은 영원함이 끝나는 날까지 줄타기를 할 거다. 그렇다면 나는 다치지 않도록 꾸준한 연습을 해야겠다.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바람을 가로질러 줄 위로 우뚝 설 때 웃고 있 내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의 행복을 향유해본다.


당신은 요즘 행복가요? 그렇다면 우리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만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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