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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Apr 26. 2020

그리운 게 하나 있어

 내 감정을 먼저 돌보지 못하는 일이 평생 밥벌이가 될 것만 같아 무서워 도망치듯 뿌리친 직업이 있다. 아직은 많은 게 부족해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는 게 주춤거는 나를 늘 어른이라고 불리게 했던 노동. 어른이라고 묻는 상대방의 질문에 “그럼~ 나는 어른이지!”라고 강요받는 대답을 해야만 했던 직업. 덕분에 어른인 척하며 항상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내 밥벌이.


 스물여덟 봄, 7년 동안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던 아동 미술 학원 선생님을 그만뒀다.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여러 가지로 배가 터질 만큼 배부르게 해 줬던 일을 그때 그만둘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산다.


 아이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웃음으로 허기질 틈이 없던 삶. 또 어떤 날은 학부모의 폭언으로, 아이들의 고단함으로 가득 차 체하고 토했다. 벗어나고 나니 더부룩하지 않은 삶을 살 게 된 것 같아 편안해진 일상. 이토록 내 선택에 후회 없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는 게 하나 있다.

 

 작고 귀여운 녀석들의 조건 없이 변치 않던 사랑과 웃음이다. 내가 본인의 선생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주던 아이들. 나보다 힘도 약하고, 키도 몸집도 작지만, 사랑과 웃음의 에너지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던 아이들. 내가 잊고 살던 무언가를 문득문득 꺼내어 주던 녀석들. 많은 날이 더부룩했던 일상이었지만, 나를 정말 많이 웃게 만들었던 시간. 내가 그렇게 많이 웃고 사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 삶을 벗어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 웃는 일과는 또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 순수한 웃음. 손잡고 걸어가다 보도블록 끝까지 달리기 시합을 제안하며 까르르 웃음과 함께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가던 아이. 비가 내리던 날 손에 꼭 쥐고 가던 우산이 바람에 뒤집힌 게 재밌다며 내리는 비를 피하지도 않고 웃는 아이. 본인만 아는 게임 규칙으로 게임을 제안하고 승리를 얻어 세상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 아이. 덕분에 내 귀로 꽂히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함. 내 눈에 놓이는 맑은 마음. 잊고 살지 말라며 부단히 알려주는 너희들.


 까르르 숨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를 그리워하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올망졸망한 얼굴. 친구에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립다고 말했던 나를 떠올리던 오늘 오후, 내게 그림을 배웠던 여덟 살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모하세요?”


 나를 어른이라고 불러주던 너희를 두고 도망친 나에게 꾸준한 사랑을 주는 귀엽고 신기한 존재. 단지 순수했던 웃음이 그리운 건지, 그런 웃음을 선물해줬던 아이들이 그리운 건지 당분간 오랫동안 고민할 것 같다. 그리고 꽤 긴 시간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웃음소리도 그리울 것 같다.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물든 요즘 작은 바람이 있다. 나와 인연이 닿았던 아이들 곁에 항상 사랑과 웃음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좋은 어른이 더 많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엽고 신기한  곁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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