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봉희 Apr 29. 2020

다정한 사람

 평소 에세이를 즐겨 찾지 않는 친구가 마음에 드는 에세이를 읽었다며 추천해 준 책이 있다. 친구가 알려준 책을 검색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 포함된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해주고, 좋아하는 색이 담긴 책을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 구매를 미루고 미뤘었다.


 그러다 얼마 전 책을 추천해준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책과 영화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리고 내 친구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표지에 파란색이 담긴 책 이야기를 했다. 정말 에세이라는 게 이런 거라면 또 읽고 싶은 장르라며 강력히 추천하는 그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친구의 표정을 음성과 함께 느끼고 있으니 그 에세이가 더 궁금해졌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손을 씻고 장바구니에 담아놨던 에세이를 바로 구매했다.

 

 주문하자마자 배송 일정을 확인했다. 토요일에 주문한 책은 7일 후에 도착한다고 쓰여 있었다. 생각보다 배송 기간도 길고, 그녀의 음성과 표정이 또다시 떠올라 너무나 긴 기다림이 예상됐다. 감아도 끝이 없는 길게 풀린 털실 같은 날이 더해져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배송 조회를 했다.


 책을 주문한 지 4일째 되는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또 핸드폰을 들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배송 조회를 했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 7일 후에 온다던 책 배송 도착 날짜가 오늘로 바뀌어 있었다. 긴 기다림은 설렘으로 바뀌었고, 도착 예상 시간을 확인해봤다. 하지만, 택배 도착 예상 시간은 적혀있지 않았다.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되었지만 왠지 조금은 가까워진 듯 해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럼에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예상할 수 없는 시간 덕분에 씻고 나와서 한번, 마트 가는 길에 한번, 마트에서 또 한 번 도착은 언제 하나 계속 확인했다. 마트에 다녀와서 씻고 나와 한 번 더 배송 조회를 했다. 택배 기사님께 전화해서 대략적인 시간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기사님 연락처가 없었다. 언제쯤 배송 완료라고 뜰지 기다리며 애꿎은 화면만 새로 고침을 반복했다. 그러다 내 눈이 순간 멈칫했고, 화면에는 배송 완료라고 적혀있었다.


 후다닥 현관으로 향해 문을 열고 내 책이 담긴 택배 봉투를 열심히 찾았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현관문을 열면 빼꼼히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택배 봉투가 없는 거다. 이상하다 싶어 거실로 들어와 다시 배송 조회를 해보고, 문밖으로 나와 이곳저곳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배송 흔적이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도 앞집 앞에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사님 연락처를 몰라 전화도 못 하고, 시스템 문제로 배송 완료라고 뜨는 건가 싶어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거실로 들어와 내 책의 행방을 상상했고, 모든 신경은 현관에 기울어져 있었다. 도대체 내 책은 어디로 흘러간 건가. 점점 내 책을 만날 수 없는 건가 싶은 불안감이 밀려왔고, 안절부절못하다 다시 문밖을 살피러 나갔다. 문을 열자 분홍색 포스트잇에 짧은 메모를 적어 붙인 택배 봉투가 놓여 있었다. 뭔가 싶어 물건을 들어 살펴보니 애타게 기다리고 찾던 내 책이었다.


 어느 곳으로, 누구에게 다녀왔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다만 일자로 예쁘게 자른 택배 봉투 속 책이 다른 사람 물건이라는 걸 알고 난 후, 봉투 입구를 접어 늘여 붙인 테이프에서 다정한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쪽지 속 내용으로 봐선 이 사람도 오늘의 나처럼 기다리는 책이 있는 것 같았다. 다른 곳에 들렀다 오느라 조금 늦었지만, 내 택배를 뜯고 당황했음이 잔뜩 느껴지는 다정한 쪽지 덕분에 미소 지었다. 빨리 분홍색 포스트잇의 주인이 기다리는 책도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신랑에게 한낮의 짧은 해프닝을 이야기해주니 책 읽는 사람이 또 어딘가에 살고 있는 거라는 말을 했다. 맞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 많이 있다. 나도, 내 친구도, 내 책을 찾아 준 사람도 많은 사람이 책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운 게 하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