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봉희 Apr 21. 2020

엄마의 정원 2

 엄마의 정원에서 땅을 파고 흙을 만지며 노는 것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 엄마의 정원에서 살고 있는 식물에 물을 주는 일. 식물에게 물을 주는 엄마를 관찰하고 따라하는 일이었다. 식물에 물을 주는 엄마의 표정과 몸짓 보기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는 그녀를 고 싶었다.


 엄마의 편안함을 기위한 준비물은 간단했다. 파란색 몸통에 기다란 입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엄마의 물통. 이 물통만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표정과 몸짓을 오래 볼 수 있었다.


 엄마가 파란 물통을 들고 수돗가로 향할 때부터 나는 엄마 옆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가 왼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리면 플라스틱 파란 물통에 물이 콸콸 쏟아졌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물통 가득 물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엄마보다 먼저 수도꼭지를 른쪽으로 돌리려고 준비했다. 그리고는 물이 출렁거리는 물통을 들고 정원으로 향하는 엄마의 그림자를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엄마가 내 손에도 물통을 쥐여주지 않을까 싶어 엄마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물통의 물이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가볍게 흔들릴 때 내 손에 쥐여줬다. 그때의 무게가 내가 가뿐히 들 수 있어서였을 거다.


 찰랑찰랑, 엄마가 쥐여준 파란 물통에 남은 물은 늘 오래 물줄기를 뿌리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나도 엄마를 따라 식물에 물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엄마의 표정과 몸짓을 닮아가고 있는 내 세상이 너무 행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정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