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28일 차, 잘츠부르크

가는 길이 수다스러운 잘츠부르크입니다

by 현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7시 반쯤 일어나 씻고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마치니 벌써 9시가 됩니다. 호스텔의 단점 중 하나는 공용공간으로 가서 씻어야 하므로 씻으러 가는데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데다가, 공간이 부족하고 소음을 신경 쓰다 보니 짐을 마음대로 풀 수가 없어서 출발하기까지 정리하는 시간이 많이 든다는 점입니다. 생각보다 준비가 길어진 덕분에 아침도 거르고 중앙역까지 쉴 새도 없이 달려갑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면서 서두른 끝에 기차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추어 도착합니다. 그런데 플랫폼의 시간표를 보니 18분이나 연착한다는 안내가 보입니다. 괜히 서두른 것 같지만 어쨌든 아침을 먹을 여유가 생깁니다. 한 달 전쯤 유럽에 처음 와서 먹은 아침이 맥머핀이었는데, 역사에 마침 맥카페가 보여서 여행 첫날의 기분을 살려 맥머핀을 먹어봅니다. 1.5 유로에 계란 햄 빵을 먹을 수 있는 걸 생각해보면 이만큼 가성비 좋은 아침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는 약 다섯 시간 정도 타고 가야 합니다. 동유럽에서 타던 기차와는 달리 잘츠부르크행 기차는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일등석 6칸짜리 자리에 탑승했는데 자리에 다른 세 분이 탑승하십니다. 아주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으로, 아주머니 두 분은 친구 관계로 한 분은 수다쟁이, 한 분은 다소 무거운 인상이고, 아저씨 한 분은 비즈니스 맨처럼 보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여성 성인분, 특히 중년, 장년 여성 분은 대화하는 걸 좋아하신다는 점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자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꺼내다 보면 다들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어수룩한 성격에 말도 잘 못 붙이는 제게 항상 먼저 말을 걸어주시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한 영어로 대화에 많이 참여는 못했지만 듣고만 있어도 즐거운 이야기들입니다. 오늘은 그다지 쓸 내용이 없으므로, 가는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간단하게 정리해봅니다.

20190630_092415.jpg 기차타고 류블랴나에서 출발


A: 활발한 아주머니, 대화를 주도하시는 분
B: 아주머니의 여행 동료, 조용하고 인상이 다소 무서운 편
C: 인텔리 비즈니스 맨, 지적이고 일침을 잘 날리는 느낌
D: 쭈뼛쭈뼛한 아시안 남성, 바로 나
A: 안녕 모두들~
C, D: 안녕
A: 다들 어디가 목적지야?
D: (잠에서 일어나며) 나는 잘츠부르크로 가
A: 오 자는걸 괜히 깨웠네, 좀 더 자도 괜찮아 ㅋㅋ
C: 나는 빈으로 가.
A: B 들었어? 빈으로 간데.
B: 오, 우리랑 목적지가 똑같네 ㅋㅋㅋ
A: 아 우리도 빈으로 가거든, 그런데 기차가 연착이 돼서 큰일 났어,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이 안 맞을 거 같아.
C: 진짜로?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될 수도 있어. 뛰면 탈 수 있을지도 몰라.
A: 그럼 우린 C만 따라가면 되겠네 ㅋㅋㅋ
C: 안 되면 그냥 점심이나 먹어야지 뭐 ㅋㅋㅋ
A: 여행 얼마나 다니고 있음? 우린 15일짜리 여행 다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동유럽 쪽을 돌았는데 정말 끝내주는 여행이었다고. 정말 평생 기억할 것 같은 멋진 날들이었어. 더운 것만 빼면 말이지.
C: 맞아. 이번에 유럽지역에 폭염은 정말 미친 것 같았어. 40도가 넘어가고 그러면 밖에서 어떻게 돌아다니냐고 ㅋㅋㅋ
A: 한 15초만 나가 있으면 온 몸이 불타버리는 거 같아 ㅋㅋㅋ
A: C는 그러면 어디 출신임?
C: 나는 이스라엘 출신이야
A: 오, 이스라엘 거긴 정말 멋진 동네지
B: 정말로? 나는 성지 순례 때문에 언제 한 번은 가봐야지 하고 있는데 어떤 곳인지 늘 궁금해왔어.
A: 나는 몇 번 가봤는데 여행객들에게 좋은 나라인 것 같아.
C: 그렇지. 언어 여러 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편한 감이 있어. 프랑스 어, 러시아 어를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아.
A: 러시아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왜?
C: 소련이 붕괴하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건너왔거든. 그들 입장에선 고향으로 돌아온 거지.
A: 이스라엘에서 받아줘?
C: 스스로 유대인인걸 증명해야지.
B: 그걸 어떻게 하는데?
C: 나도 잘은 몰라. 가령 자신의 할머니가 유대인이었던 사람도 유대인으로 인정을 받았어.
A: 쿼터인데도?
C: 나도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어. 어쩌면 스스로를 유대인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걸 지도 몰라.
(차장 E가 들어오며)
E: 여러분 검표 좀 합시다.
A: 여기 표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빈으로 가는 기차표 여기 있는데 탈 수 있을까요?
E: 도착하면 2~3분의 여유가 있기는 해요. 근데 웬만하면 타기 힘들걸요?
C: 우리 잘못도 아니고 기차가 연착된 건데 조금 어떻게 안 되나요?
A: 기차 하나 연착된 것 때문에 릴레이로 연착되면 안 되긴 하는데..
E: 대신 미리 사신 표로 다음 기차에 타도 무방합니다
C: 언제 오는데요?
E: 두 시간쯤 뒤에?
A: 워우, 집에 가는 게 참 쉽지가 않군요 ㅋㅋㅋ. 다른 방법은 없나요?
E: 제가 영어가 부족해서 설명 못할 듯요 ㅋㅋㅋㅋ
모두: ㅋㅋㅋㅋㅋ
(차장 E가 나가고)
C: 그건 그렇고, D 너 한국인 맞지?
D: 엉???? 맞아. 어떻게 알았어?
C: 너 태블릿 쓰고 있잖아.
D: 음..? 상관있어?
C: 내 경험인데, 아시아 사람들 중에서 태블릿 쓰는 사람은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아. 중국인, 일본인은 쓰는 거 잘 못 봤어.
A: 너 프로파일링 당하고 있었네? ㅋㅋㅋ
D: 엌ㅋㅋ. 우리나라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음?
C: 킴에 대해서 알지.
D: 아 김 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 씨지, 이 씨, 박 씨가 그다음인데 내가 박 씨야.
C: 아니 아니, ㅋㅋㅋ 나는 트럼프랑 만난 김 씨를 이야기한 거야.
A: 트럼프? 그 미친 대통령? (입을 가리며) 아 미안 ㅋㅋㅋ
C: 아니야 그럴 수 있어 ㅋㅋㅋ.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한텐 트럼프가 좋은 대통령이긴 해.
A: 그 사람 만날 한 말 뒤집고 오락가락하잖아. 미안하긴 한데 좋은 사람은 아니야.
C: 사람으로 보면 그렇지. 그래도 덕분에 세계가 좀 평화로워진 거 같아. (손가락을 들며) 평화는 경제에서 오는 거니까.
B: 어이, 우리 이제 그만 갈 시간이야. 기차가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잘하면 탈 수 있을 거 같아. 서두르자고.
A: 이야기하느라 정말 재밌었다 그지 ㅋㅋㅋ
C: 트럼프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가면서 더 이야기하자고.
D: 즐거운 여행되길 바랄게.
A: 맞아. 우리 때문에 잠도 못 잤을 텐데 미안해 ㅋㅋㅋ
D: 아니야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어. ㅋㅋㅋ 어서 서둘러 ㅋㅋㅋ 잘 가~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한 때가 지나가고 남은 시간을 혼자 태블릿을 만지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후에 두 사람 정도 제가 탄 칸에 들어왔는데 다들 전자기기를 만지느라 간단한 인사 이후에 대화가 없습니다. 다만 기차를 타고 가는 바깥 풍경이 멋있어서 서로 사진을 찍는데, 눈이 마주쳤을 때 뭐가 웃기는지 서로 살짝 웃음이 나옵니다. 여하튼 다섯 시간을 앉아서 보내려니 엉덩이가 아프고 몸이 많이 뻐근합니다.

20190630_123209.jpg 이 사진을 찍다가 맞은편 사람과 서로 눈이 맞아 웃음을 터뜨립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오스트리아는 플랫폼에서 내리자마자 '아, 독일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나옵니다. 깔끔한 역의 모습, 독일어, 독일권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브랜드들까지. 버거킹에서 점심을 해치우고 숙소로 이동해야지 하는데 밖의 날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온도가 33도 정도인데, 자외선 경보가 떠 있습니다. 숙소까지의 거리는 3km 정도 되는데 당장에 현금도 없고 잘츠부르크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냥 걸어서 가도록 합니다. 잘자흐 강을 따라서 걸어가는데, 산기슭을 따라서 지어진 몇 채의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도대체 저 위에 집은 어떻게 지었는지, 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20190630_151219.jpg 정말 독일스러운 풍경입니다
20190630_203652.jpg 축제의 전조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서는 조금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기차로 이동하느라 피로가 쌓인 데다가 밖에 날씨가 장난 아닌 이유로 해가 좀 질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방은 싱글룸인데 어째 10만 원의 가치를 하는 느낌은 아닙니다. 조금 서늘해질 때쯤 식재료 점에서 저녁거리와 물을 샀는데 대충 9유로가량 나오는 걸 보니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확실히 오스트리아가 물가가 더럽게 비싸다는 걸 느낍니다. 잘츠부르크의 명물인 모차르트 쿠겔도 몇 개 사볼까 싶지만, 조그마한 초콜릿이 개당 천 원씩 하는 걸 보니 엄두가 잘 나지 않습니다. 내일 돌아다니면서 가격대를 비교해보고 그래도 하나 정도 사서 맛은 봐야겠지 싶습니다. 입맛을 다시며 다음날을 기약하는 잘츠부르크의 하루입니다.

20190630_195934.jpg 장을 보러 갔더니 오랜지 즙짜는 기계가 보입니다
20190630_192346.jpg 내일 여행 장소 프리뷰
20190630_203859.jpg 해가 지는 잘츠부르크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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