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29일 차, 잘츠부르크

비와 함께 박장대소를 하는 잘츠부르크입니다

by 현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오는 알림이 하나 보입니다. 오후 여섯 시 이후로 잘츠부르크에 비가 온다는 알림입니다. 가끔가다가 안드로이드에서 해당 지역의 날씨 예보를 알려주는 데 마침 비가 온다는 예보를 봐서 다행입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동안 몇 차례 비를 쫄딱 맞고 고생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가보기로 합니다. 출발하기 전에 가방에 넣어둔 우산을 몇 번이고 확인을 해봅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여행 와서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늘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모차르트 광장 앞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입니다. 빈에서도 느낀 거지만 오스트리아는 전반적으로 매우 비싼 동네입니다. 오늘 돌아다닐 곳들도 계산해보니 입장료만 50유로 넘게 나올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를 하루 일정으로 돌아다니고 말 경우에 시티 카드를 사는 게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많지만, 잘츠부르크에선 단 두 곳만 들러도 시티 카드를 사는 게 이득입니다. 인포메이션 센터 개장 시간에 맞추어 하절기 하루 이용 가격인 29 유로를 내고 시티 카드를 끊어봅니다.


시티 카드를 발급받고 처음 찾아간 곳은 미라벨입니다. 모차르트 광장에서 다리를 건너 조금 걸어가면 작은 미라벨 궁전이 보입니다. 궁전 앞으로는 녹색과 꽃들의 붉은색이 선명한 미라벨 정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입구에 재밌는 포즈의 조각상들과 함께 꽃들이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는 정원입니다. 아침부터 가이드 투어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 곳이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요 촬영지였던 곳입니다. 너무 오래전에 본 영화라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면서 지나가는 걸 보니 어렴풋이 영화의 장면들이 기억날 듯도 합니다. 크지 않은 정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줄 서 구경하며 사운드 오브 뮤직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시대를 풍미한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문득 영화에서 보던 미라벨 궁전에서의 정원 뷰가 떠올라 미라벨 궁전에 들어가 보려고 시도합니다만, 출입이 제한된 건지 아쉽게도 올라가 보지는 못합니다. 아쉬운 대로 정원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지나갑니다.

미나벨 정원을 배경으로 점프샷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즥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라벨 궁전을 나와서 발걸음을 옮긴 곳은 모차르트 생가와 박물관입니다. 모차르트 관련 기념물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전시가 '볼프강'보다 모차르트의 가족사에 할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어떻게 볼프강을 교육하고 음악가로 성장시켰는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더 조명받는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흔히 모차르트를 음악의 신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신동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볼프강이 고작 다섯 살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고 연주회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아버지 덕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인 안나, 그리고 동생에게 묻힌 걸출한 피아니스트 마리아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모차르트에 관한 기록에는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한가득합니다. 가족들 간에 주고받은 편지, 서로에 대한 생각들과 아끼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걸 느낍니다. 특히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흥얼거리며 가족들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에서 주위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겼는지 생각해봅니다.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자물쇠로 수놓아진 재밌는 다리
모차르트 박물관은 내부 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에 입구에 거대한 모차르트 쿠겔 상으로 사진을 대신합니다

모차르트 박물관을 나오면 바로 게트라이데 거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게트라이데 거리는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상점들이 줄지어선 쇼핑 거리입니다. 가게 구경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재밌는 건 '여기는 무슨무슨 상점입니다.'하고 알리는 간판들입니다. 재치 있게 꾸민 간판들은 가게의 개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거리의 풍경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지나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엿들으니, 맥도널드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간판도 작은 로고가 월계수에 둘러싸인 간판으로 바꾸었다고 하더군요. 간판이 나타내는 가게가 무슨 가게인지 추측하고 정답을 비교하며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 봅니다.

다양한 간판들이 눈에 띠는 게트라이데 걸

그렇게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입니다. 먹을 만한 것은 없나 여러 가게들을 훑다 보니 wraps를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옵니다. 크레페처럼 각종 재료들을 넣고 밀가루 반죽으로 둘러싼 음식 같은데 속이 튼실해 보이는 게 끌립니다. bbq(독일 식으로 베베쿠라고 읽습니다)와 토마토 모차렐라를 사서 매점에서 산 음료수와 함께 레지던스 광장으로 향합니다. 자리를 잡고 랩을 한 입 베어 무니 빵에서 생선 내음이 나는 게 조금 신기합니다. Fish & Chips 전문점인데 아마 겉을 둘러싼 반죽에도 생선이 들어간 듯합니다. 음료수와 함께 다소 뻑뻑한 랩을 밀어 넣고 디저트로 모차르트 쿠겔을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를 합니다. 조금 생소한 조합이 식사입니다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다시 여행을 떠날 기운이 솟는 듯합니다.

점심인 모차렐라 랩
후식인 모차르트 쿠겔

점심을 해치우고는 레지던트 광장 주위를 구경합니다. 광장에는 길거리 연주자와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합니다. 바로 옆에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는 무슨 합창 대회가 있는지 사람들이 모여 연습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금속 구체 위에 사람이 서 있는 동상이 있는데, 동상보다도 거대한 체스판과 체스 말들에 눈이 갑니다. 길바닥 위에 그려진 체스판에서 사람들이 거대한 체스 말들을 움직이며 체스를 두는데 무척 흥미로워 보입니다. 차례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저도 한 판 두고 싶어서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와서 자기들끼리 두느라 괜히 뻘쭘해집니다. 저는 훈수나 조금 하면서 괜히 애들한테 심술을 부리다가 갈길을 갑니다.

좋은 날씨의 잘츠부르크 대성당
합창대회 연습이 한창인 듯한 핑크색의 합창단원들
레지던츠 광장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징물입니다만
전 거대한 체스에 더 눈이 갑니다

레지던스 광장에서 눈을 산 위로 돌리면 바로 호엔잘츠부르크 성이 보입니다. 성은 산 정상에 있기 때문에 푸니쿨라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는데 푸니쿨라 이용료가 시티 카드 안에 포함되어 타고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여태 몇몇 성들을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 푸니쿨라를 봐왔지만 괜히 돈을 쓰기 싫어 타지 않았었는데, 돈을 더 지불하지 않고 탈 수 있다면 이런 운송수단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높이가 제법 되어 보이는 산을 푸니쿨라를 타니 1분도 걸리지 않고 금세 올라옵니다. 케이블카처럼 천천히 올라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살짝 놀랍니다.


도착해서 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성이라기 보단 작은 마을 같습니다. 지금까지 본 몇몇 성들은 고작해야 2~3분이면 성 내부 둘레를 다 둘러볼 정도로 규모가 작았습니다만, 잘츠부르크의 전경이 다 보이는 성은 몇 채의 집과 성당, 요새, 타워, 그리고 물자를 주고받기 위한 전용 열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성이 단순한 요새를 넘어 하나의 마을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성 내 박물관에는 성의 역사를 재미있게 그림으로 풀어냈는데, 중세 시대부터 많은 지도자들의 손을 거쳐 지금의 성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도록 재치 있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1차 세계 대전까지 다양한 전쟁을 경험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어 성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호옌잘츠부르크로 올라가는 푸니쿨라 선로
성에서 내려보는 강을 낀 잘츠부르크의 전경
성 내부의 오페라 인형극 중 역시나 사운드 오브 뮤직
성은 하나의 마을처럼 거대합니다
거대한 성마을을 운용하기 위해 지상으로부터 식량 등을 공급받던 특슨 기차

성 구경을 마치고 난 다음에 몇몇 박물관들을 찾아봅니다만 마침 월요일이라서 많은 박물관들이 문을 닫고 휴관 중입니다. 근처에서 볼만한 것이 더 없기에 조금 멀리 나가보기로 합니다. 모차르트 광장에서 25번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내려가면 헬부른 궁전이 있습니다. 17세기경 대주교의 여름 별궁으로 지어진 헬부른 궁전은 2층 높이 정도의 아담한 시골집 같습니다. 티켓 판매소에서 시티 카드를 보여주니 궁전 티켓과 함께 fountain trip 시간을 알려줍니다. 무슨 분수쇼 같은 걸까 조금 궁금합니다. fountain trip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할부른 궁전을 구경하면서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샛노란색이 인상적인 헬부른 궁전
궁전 내부의 멋진 전시물들
폭포 트립 튜토리얼에 앞서 희생양을 자처하다가 물벼락을 맞는 한 소년의 모습
생각보다 섬뜩한 분수 트립
분수 트립의 묘미, 인형극을 하는 거대한 기계장치
신기하게 물줄기에 떠오르는 금속 왕관
마지막까지 젖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


fountain trip을 시작할 즈음에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트립 시작 지점에 가니 물에 젖을 수 있다는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물어보니까 분수 사이를 걸어 다니며 유적을 관찰하고 젖는 걸 즐기는 가이드 투어라고 합니다. 마침 들고 온 우산도 있어서 젖으면 얼마나 젖겠냐며 하하호호 투어에 나섰는데 결국엔 쫄딱 젖어버립니다. 가이드 분이 설명하면서 기계 장치를 조종하시는데, 천장, 바닥, 벽 어디 하나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물대포가 뿜어져 나옵니다. 특히 방심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기습적으로 물대포를 쏘아서 결국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피하는데 다들 물벼락을 맞는 게 무엇이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나가는 길은 좌우로 물줄기가 아치를 만드는 분수 길인데,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냅다 뜁니다. 물에 흠뻑 젖으며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젖은 꼴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구성인데 어른들이 더 신나서 깔깔대고 소리 내어 웃다니 예상치 못한 큰 즐거움에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분수 트립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출구를 향하는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낙뢰와 함께 엄청난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세상에 그렇게 천둥소리가 무서운 줄 처음 알게 됩니다. 저는 무슨 폭탄이 터지는 소리인 줄 알고 무서워서 건물 안으로 대피합니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비가 안 돼 건물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지만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버스 시간표를 가리키며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비를 맞고 뛰어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삼십 분 뒤에나 오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기념품 샵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기도 좀 그렇습니다. 다른 청년이 빗속을 뛰쳐나가 보더니 잠시 뒤 돌아와서 가는 길에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두 청년이 앞장서서 버스 시간에 맞추어 뜀박질을 시작하고 한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뒤따라서 뛰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우비로 단단히 무장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빗속을 달립니다. 다들 폭우 속을 달리는 게 어처구니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리면서 냅다 달립니다.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도착해서 사람들이 전력질주를 하는데 달려오다가 자빠진 사람은 결국 버스에 타지 못합니다. 그렇게 버스에 탄 우리는 무리를 이끌고 선두에 섰던 청년이 한 손에 주먹을 굳게 쥐고 추켜올리는 승리의 제스처를 취하자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미 버스에 타 있던 다른 사람들이 비에 쫄딱 맞으며 탄 우리들을 보고 어이없어하거나 고생이 많다며 웃으십니다만, 저희는 뭐라도 이룬 마냥 기분이 좋기만 합니다.

돌아갈때 쯤 폭우로 해변가가 되어버린 헬부른 궁전 앞
빗속을 다같이 달려가는 사람들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오니 그새 비가 그친 모양입니다. 즐겁기도 하고 그리고 무척 힘든 하루입니다만 아직 오후 다섯 시가 채 안된 시간입니다. 그래서 조금 남는 시간을 할애하여 하루 일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숙소 근처의 수도원에 잠시 올라가 봅니다. 어두컴컴한 수도원에서 잠시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산에 지어진 집채가 불타는 게 눈에 보입니다. 폭우 속에서 집이 불탈 수도 있나 보는데, 아마 낙뢰를 맞고 불이 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 이야기를 나누니 이런 날씨도 처음이고 집채가 불에 타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도 깊이 놀란 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입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이내믹한 정신없는 잘츠부르크의 하루입니다.

숙소에 도착하지 비는 그치고
번개에 맞고 불타오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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