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30일 차, 뮌헨

올림픽의 자취를 따라가는 뮌헨입니다

by 현준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좀 칼칼합니다. 요 근래 물을 찾아도 석회질이 많이 포함된 생수나 탄산수만 보이다 보니, 물을 마셔도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 목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입니다. 이럴 때는 시원한 얼음물 한 잔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한 달 가까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얼음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기껏 얼음을 볼 수 있는 곳은 패스트푸드 점의 탄산음료나 펍에서 시킨 술 정도일까요? 식료품 점에서 파는 생수 중에선 냉장고에 넣어놓은 물도 있긴 한데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내 한 시간 정도 밖에다가 두어서 간신히 냉기만 조금 남은 듯한 물입니다. 그나마도 값이 비싸서 별거 아닌 생수를 꼬박꼬박 사 마신다고 지출도 꽤 됩니다. 진짜 차디찬 냉수가 너무나도 그리운 아침입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으러 또 버거킹으로 갑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얼음이 먹고 싶었거든요. 어서 콜라를 먹고 싶은 마음에 쪼르르르 달려가는데 이런, 그만 손이 미끄러지면서 아까운 콜라를 그대로 다 엎어버립니다. 못 마신 콜라가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만 그보다도 의자와 바닥이 흥건하게 젖은 게 걱정입니다. 당장에 제가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휴지 조금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직원이 보면 무척 화를 내겠지만 그래도 모른 척하고 도망갈 수도 없으니 도움을 청하러 갑니다. 그런데 콜라를 엎었다고 이야기하니까 바로 엎은 콜라 사이즈를 물어봅니다. 저한테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바로 콜라를 한 잔 더 줍니다. 머쓱하게 옆 자리로 옮겨 앉으니 제가 콜라를 엎은 자리에 수리 중 간판을 세워두고 다시 돌아갑니다. 생각도 못한 서비스와 조치 덕에 고마움과 무안한 생각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덤으로 다시 받은 콜라가 유달리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20190702_115310.jpg 콜라를 엎고 나서는 참담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만, 이내 감사한 조치로 다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것이 오스트리아의 인정일까요?

기분 좋게 점심을 먹고 뮌헨으로 출발합니다. 잘츠부르크가 오스트리아와 독일 경계에 있어서 그런지 기차를 타고 10분 만에 국경을 넘어갑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기차가 확실히 좋은 게 기차가 깔끔하고 에어컨도 빵빵하고 국경을 넘어가는 도중에도 와이파이가 터집니다. 뮌헨 중앙역에 내려서 오래간만에 독일 특유의 느낌이 사는 플랫폼을 보니 독일에 처음 와서 프랑크푸르트 역에 내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꽤 오랜만에 돌아온 독일이 반갑게만 느껴집니다.

20190702_150320.jpg 아, 이 독일스러운 정취.

뮌헨 중앙역에서 내려서 U반을 타고 네 정거장 정도 북쪽으로 올라오니 제가 예약한 호스텔이 보입니다. 다음부터 숙소를 잡을 때에는 조금 가격이 나가더라도 중앙역 근처에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역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기본적으로 교통비가 들어가는 데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밖을 나가보니 이미 박물관들은 문을 다 닫을 시간입니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근처에 있는 볼거리를 보러 갑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올림픽 경기장과 공원이 보입니다.

20190702_151214.jpg 고작 U반 두 정거장짜리 티켓이 1.5유로, 네 정거장에 2.9유로입니다. 상상도 못 할 지하철 가격입니다.

올림픽 공원이라니, 저는 독일에서 올림픽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히틀러가 연설했다는 베를린 올림픽은 익히 잘 아는데 그 경기장이 뮌헨까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72년 서독 시절에 뮌헨 올림픽이 열렸다고 합니다. 거의 50년 전에 열렸던 올림픽이니 그때 지은 경기장이나 건물들도 다 낡아서 철거할만한데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옛 건물들에 생활의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서 조금 과거로 온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넓게 펼쳐진 공원에는 세기말에 근미래를 지향하며 지은 듯한 포스트 모더니즘 스타일의 스타디움과 올림픽 타워가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원에는 조깅, 자전거 타기,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공원 자체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운치가 느껴집니다. 연못에 사는 거대한 오리들은 사람이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풀을 뜯어먹거나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도로를 횡단하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바닥에 오리 똥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어서 걷는 걸 조심해야 하는 것만 빼면 상당히 인상적인 산책입니다.

20190702_170728.jpg 경기장과 타워가 슬며시 보이기 시작하는 공원의 산책길
20190702_171030.jpg 그래도 국가 중요 시설이라고 이렇게 신분증을 챙겨도라는 경고문이 보입니다
20190702_171053.jpg 한 때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올림픽 공원
20190702_171731.jpg 상당히 포스트 모더니즘 적인 풍경입니다.
20190702_172105.jpg 지금 보니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20190702_190955.jpg 신기하게도 공원 내부에는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꿋꿋이 걸어 다니는 거대한 오리 떼들이 보입니다
20190702_191202.jpg 마치 공원의 주인은 우리 오리들이라는 것처럼 말이죠. 떼거지로 괴악스럽게 울어대는 모습을 보니 조금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Olympiadorf가 있습니다. 과거에 선수촌으로 쓰였던 곳으로 지금은 학생들을 위한 숙박업소로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 더미로 지은 아파트가 옛 공산권의 아파트들을 떠오르게 합니다만 숙소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숙소 배치도를 보면 당시 국가별로 배정받았던 호수를 찾을 수 있는데 파란색 15번을 배정받은 Korea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맞은편엔 31번을 배정받은 이스라엘이 있는데, 72년 올림픽 당시 납치 인질극 테러로 인해 이스라엘 선수들과 스탭이 살해당한 참사가 벌어진 현장이라고 합니다. 31번 숙소에 보면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팻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원 분위기가 흐르는 이 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었다는 게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당시의 사건을 잠시 상상해보며 추모의 기도를 잠깐 올리고 갑니다.

20190702_173821.jpg 올림픽 선수촌 배치도
20190702_175641.jpg 형형 색색의 배관을 따라 다소 투박하게 지어진 선수촌이 보입니다
20190702_174942.jpg 선수촌 내부에 마트들과 음식점들을 보면 꼭 대규모 수련원이 지어진 작은 동네를 보는 느낌입니다
20190702_175739.jpg 유럽 보드게임의 성지인 독일답게 보드게임 카페도 보입니다
20190702_182858.jpg 잠깐, 선수촌 내부에 뮌헨 한독교회라뇨?
20190702_183237.jpg 여기는 블루라인 15번지 한국 선수촌입니다
20190702_183127.jpg 무궁화가 보이는 것이 당시에 한국스타일로 꾸며서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90702_183448.jpg 이곳이 뮌헨올림픽 테러가 일어났던 31번지 이스라엘 선수촌입니다.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추모비가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슴아픈 이야깁니다만, 50년 가까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념비를 잘 관리하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할만한 일입니다

올림픽 공원 바로 옆에는 BMW 벨트와 박물관, 그리고 뮌헨의 랜드마크인 BMW 헤드 쿼터스가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에는 무슨 국제 무역 전시장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BMW 마크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BMW 벨트만 둘러보는데, 거대한 전시장 내부에 전시된 각종 BMW 차량들이 보입니다. 차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인지라 잘은 모르지만 전시된 차들이 비싸고 대단한 차들이라는 건 딱 보기에도 알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차를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오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합니다. 전시장을 돌아보며 차량 구경 좀 하다가 나옵니다. 차 구경 자체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아서, 시간이 남을 때 BMW 헤드 쿼터스나 박물관을 방문할지는 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20190702_184635.jpg BMW 전시관인 BMW 벨트
20190702_184728.jpg 뭔가 세련되어 보이는 차들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20190702_185747.jpg I'm the best driver from South Korea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시티 공원 뒤편에서 무슨 축제가 열린 모양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Toll Wood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내부에 설치한 임시 무대에서 콘서트와 함께 주변 부스들에서 다양한 음식, 기념품을 팔고 여러 행사들이 열리는 모양입니다. 중앙에선 락 공연이 펼쳐지는지 앰프의 진동이 울리는데, 내부 무대가 천막으로 가려져있고 경비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서 밖에서 소리만 들을 수 있습니다. 무대 주변으로는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분위기가 매우 흥겹습니다. 축제 일정표를 보니 내일과 내일 모래 10시쯤에 마술쇼 비슷한 공연이 무료로 열린다고 합니다. 일정에 맞추어 한 번쯤 다시 찾아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둑한 밤거리를 돌아오는 뮌헨의 하루입니다.

20190702_201010.jpg 올림픽 공원의 동산 너머로 시티 공원이 펼쳐집니다. 해질 저녁 무렵 숙소로 돌아오는 데 심장을 울리는 엠프 소리와 함께 웬 천막이 보입니다
20190702_195829.jpg 무슨 Wood인걸 보니 록 페스티벌이 분명합니다.
20190702_195349.jpg 티켓이 없어 공연장에는 못 들어 가지만 주변에 이렇게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20190702_195300.jpg 무슨 바도 보이고요
20190702_200744.jpg 이런 신기한 물건들을 파는 기념품점도 보입니다
20190702_201545.jpg 락 공연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공연들이 행사기간 내내 열리는 모양입니다. 제가 머무는 기간에는 마술쇼가 있는 모양인데 기회가 닿으면 꼭 보러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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