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뮌헨입니다
아침부터 빨래가 걱정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빨래를 해야 하는데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빨래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숙소에서 빨래를 돌릴 수 있으면 좋은데 보통은 빨래를 돌릴 수 있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이미 세탁 시간이 지나있기 일수입니다. 그나마 운이 좋아 시간대를 맞추더라도 배치된 세탁기가 너무 적어서 경쟁이 치열하거나 세탁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경우엔 세탁이 밀려 며칠을 기다려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근처에 코인 세탁방을 찾아가면 좋은데 그나마도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제도 자기 전에 확인해보니 7층짜리 호스텔에 세탁기가 하나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근처에 세탁방도 20분은 걸어가야 있는데 빨랫감을 들고 왕복할걸 생각하니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제발 세탁기가 비어있기를 기도하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세탁기로 달려가는데, 다행히 세탁기가 비어있는 게 보입니다.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하는데 세 시간이나 걸리는데 아침을 먹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보챘더니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옷을 걷어서 정리까지 하고 나니 벌써 오후 한 시입니다.
오후 시간에는 뮌헨 중앙역 주위를 돌아다니기로 합니다. 딱히 목적을 정하고 나가는 건 아니지만 중앙역으로 가면 볼만할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중앙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쾨니히스 광장이 보입니다. 쾨니히스 광장은 아자르 강가의 아테네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는데 바이에른의 국왕이었던 루트비히 1세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본떠 만든 광장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광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서있는 프로필렌 성문은 그리스 신전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프로필렌 성문에서 바라보면 쾨니히스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히틀러가 이 광장을 나치당의 성지처럼 여기고 나치당의 군중 집회 장소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광기가 휘몰아쳤던 장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합니다. 사람도 거의 없어서 가끔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공사장 인부분들만 종종 보일 뿐입니다. 주변에는 많은 박물관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글립토테크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주변에 흥미가 가는 다른 박물관들을 방문해 보기로 합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박물관은 렌바흐 하우스 미술관입니다. 20세기 초 유명한 화가였던 프란츠 폰 렌바흐가 자신의 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으로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표현주의의 대표주자였던 청기사파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파울 클레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연대기에 따라 전시되어 있어 화가들의 일대기와 개인사, 화풍의 변화들을 체감할 수 있는 멋진 곳입니다. 눈에 띄는 것으로 현대 예술가들의 공간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들을 볼 수 있는데 어디까지가 전시인지 경계가 불분명하고 의미가 명확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추상화되고 의미가 불분명해지는 현대 예술에 대하여 과거의 아름다운 예술에 비해 의미도 가치도 알 수 없는 무언가로 풍자하곤 하지만, 저는 현대 예술이 주는 의미의 불분명함과 아이러니함을 더 좋아합니다. 특히 작품의 해석이 메타적으로 해체될 때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선 스스로 언젠가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다음을 간 곳은 나치 기록센터입니다. 무슨 서류뭉치처럼 생긴 건물에 다음 문구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바로 관심이 갑니다.
The City Without
Jews Foreigners
Muslims Refugees
2015년에 개장한 이 박물관은 기록센터라는 이름답게 나치가 탄생한 배경, 나치가 정권을 잡는 과정과 원동력, 나치의 행적과 뮌헨에서 있었던 일들, 시민들의 반응, 지지, 대응, 행동, 유대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를 사회에서 배척하고 배제하고 척살해나가는 과정, 전쟁, 그 후의 탈나치즘 운동, 네오나치와의 전쟁, 그리고 나치의 잊힘에 대한 투쟁까지 나치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 뉴스, 기록, 사진과 영상 등을 동원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뮌헨이 나치의 발원지라는 사실도, 팽배한 마이너리티에 대한 증오가 경제위기와 만나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Volksgemeinschaft(People's community)의 기치 아래 시민들이 나치에게 힘을 주었다는 사실도, 나치가 마이너리티를 말살시키는 것에 시민들이 침묵, 동조, 적극적 행동을 보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됩니다. 기록센터의 내용은 자학적이고, 지속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내부를 관람하다 보면 의자를 들고 다니며 설명을 듣는 학생 무리가 보이는데 현재까지도 독일인들이 얼마나 나치에 대해서 경계할 수 있는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전시관 한쪽 벽 면에는 유대인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잃어가는 과정이 하나하나 적혀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 법령으로 나열된 내용들은 너무나 섬뜩한 것들입니다. 작은 권리들로부터 결국 가장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증오에 대한 소소한 발산과 행동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기록은 지금 사회에서도 너무나도 쉽게 만연해 있는 증오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가벼이 여기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대목들입니다.
유대인이 영화관, 콘서트, 전시 등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1938. 11. 12)
유대인이 독일 학교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1938. 11. 15)
유대인은 오직 재무부 장관의 허가 아래서만 은행에 예치된 돈을 쓸 수 있다. (1938. 11. 30)
유대인은 운전면허를 반납해야 한다. (1938. 12. 3)
유대인이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 (1938. 12. 14)
유대인이 마트에서 물건을 파는 걸 금지한다. (1939. 1. 28)
유대인이 기차의 수면 칸과 식당 칸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1939. 3. 2)
유대인이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는 것을 금지한다. (1939. 5. 20)
유대인이 라디오를 소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1939. 9. 20)
...
유대인이 경찰의 허가 없이 거주지를 떠나는 것을 금지한다. (1941. 9. 18)
중대한 사업에 고용되지 않은 유대인은 가까운 시일 내에 동쪽 영토로 이주시킨다. (1941. 11. 4)
유대인은 타자기, 계산기, 복사기, 자전거, 카메라, 쌍안경을 제출해야만 한다. (1941. 12. 13)
유대인에게 더 이상 육류, 계란, 우유를 비롯한 배급 식량을 공급하지 않는다.
유대인 아이들에 대한 식량 배급은 줄어들 것이다. (1942. 9. 18)
유대인은 집 앞에 유대인임을 증명하는 검은 별을 달아야 한다. (1942. 5. 13)
Reich에 있는 모든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비우고 모든 유대인은 아우슈비츠와 루블린으로 이송되어야 한다. (1942. 11월 초)
본 전시관의 관람을 마치고 방문한 특별 전시관에서는 박물관 입구에 걸려있던 제목의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The City Without.
Jews Foreigners
Muslims Refugees
이 전시는 1924년에 나온 오스트리아의 무성 영화 'The City Without Jews'에 대한 전시를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축출해 낸 '유토피아'를 그리는 영화로, 결국 그들은 20년도 안되어 유토피아를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내고 말게 됩니다. 전시는 과거의 나치가 마이너리티들을 배제하고 축출한 메커니즘을,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흐름과 비교하며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척, 증오, 혐오가 나치즘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다시 경고하는 내용들입니다. 특히나 무성 영화를 통해 넘어오는 유대인을 축출해 낼 때의 사람들의 웃음과 희열은 이질적인 위화감과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 독일 사람들에게 유대인 축출이 정의로운 일이자 통쾌한 일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박물관 두 개를 둘러보고 나니 하루가 일과가 끝나갑니다. 집중해서 보다 보니 다섯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원래는 대충 훑어보고 뮌헨 시내를 돌아다닐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관람이라면 하루를 다 쏟아부어도 크게 아쉽지는 않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시아 마트에 둘러 신라면을 사봅니다. 매번 밖에서 먹는 것은 너무나 돈이 많이 들기에 요리를 해 먹으면 좋은데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요리는 기껏해야 라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생 식재료를 사기엔 요리에 익숙지도 않고 재료 보관도 어려워 결국 찾게 되는 것이 라면입니다. 호텔의 게스트 키친에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도 그 틈에 끼어서 열심히 식기를 찾고 라면을 끓여봅니다. 적당히 팬에다가 넣고 끓여봤는데 생각보다 별로 맛이 없습니다. 나오면 한국음식이 막 당기고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을 줄 알았는데 막상 끓여먹은 라면이 당기지 않다니 조금 신기합니다. 라면을 먹고서는 호텔 로비에 앉아 오늘 본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봅니다. 나치 기록관에서 본 증오의 소용돌이와 자취들이 머릿속에서 가라앉지 않는, 심란한 뮌헨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