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33일 차, 뮌헨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의 뮌헨입니다

by 현준

오늘은 별 일 없이 숙소에서 빈둥거립니다. 대충 먹으려고 사온 먹거리들도 있겠다, 제가 좋아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국제 경기도 있기도 해서 숙소에서 나가지 않고 저녁시간까지 빈둥거립니다. 여행일이 90일이나 되는데 매일매일이 전신전력이면 금세 지쳐버리고 맙니다. 좋은 핑곗거리와 함께 하루를 별 의미 없이 보냅니다.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 날들이 많습니다. 주말이면 점심때쯤에 일어나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컴퓨터만 하다가 오히려 심신이 피폐해지는 날들을요. 오랜만에 그런 날들의 폐인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면서 '유튜브 영상 하나만 더 보자'며 그대로 침대에 붙어있는 제 정신 건강을 파먹는 기분을 만끽합니다. 여행을 떠나고 한 달가량을 여정과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집중할 때는 스스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니까 몸이 아픈 게 확연히 느껴집니다.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소모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습관처럼 유지하도록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걸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입니다.


저녁 7시 반까지 빈둥거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봅니다. 근처에 톨우드가 열리고 있어서 나가봅니다만, 사람이 너무 많고 간이 음식들만 파면서 너무 가격이 비쌉니다. 배가 고파서 그냥 먹을까 하다가도 영 별로일 것 같아서 그대로 걸어 나옵니다. 특히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이 100유로 지폐와 6유로 정도의 동전뿐인데, 100유로 지폐로 계산하려고 했다가 제대로 계산을 안 해주면 기다리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걸어 나옵니다. 그 후 숙소 근처를 돌면서 가게를 보는데 간단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가게가 보입니다. 여기서 슈니첼이나 먹을까 가게로 들어가 주인에게 말을 걸어보느데 주인이 독일어밖에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계속 잉글리시 카테라고 이야기하시는 게 영어 메뉴가 있으니 들어오라는 거 같습니다. 괜찮다고 그냥 나가보려고 하는데 열정적으로 독일어로 설명하시는데 또 그냥 가기가 무안합니다. 한 5분 가까이 주문에 대해서 서로 안 통하는 언어로 이야기하다가, 주인 분이 메뉴를 하나 찍어주고 쌍따봉을 들며 추천 메뉴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저는 5.2 유로를 지불하고 완전히 랜덤 메뉴를 시켜서 기다리는데 wrap이 나옵니다. 가격에 비해서 크기도 크고 속이 고기와 야채로 알차서 배도 부르고 건강해지는 느낌도 드는 게 아저씨가 쌍따봉을 들만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5분이나 모르는 말을 듣고 서로 멋쩍어한 걸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옵니다. 생각해보니 메뉴판을 제가 못 읽어서 이상한 메뉴를 시킨 적은 있어도 기본적인 말도 안 통해서 직원이 아무 메뉴나 시켜준 건 처음인 듯합니다. 그래도 귀찮아하거나 이상하다는 듯이 대하지 않고 최대한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주문까지 해주신 주인 분은 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20190705_194108.jpg 아아, 이렇게 좋은 날 왜 방구석에 쳐박혀 있었던 걸까요?
20190705_194707.jpg 이제 곧 Toolwood의 공연을 시작할 모양입니다만, 아직 첫끼도 못 먹은 배를 채우는 게 우선입니다
20190705_201130.jpg 슈니첼을 먹고 싶은데 소통불가로 멘탈이 나가는 그런 상황
20190705_201836.jpg 결국 주인 할아버지가 손에 쥐어주신 것은,
20190705_201959.jpg 돼지고기가 가득 들어간 wrap입니다. 가성비 나쁘지 않은 가격에 생각보다 맛있게 배를 채웁니다. 생각보다 성공적인 저녁입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wrap을 먹으면서 정작 물을 사지 않았다는 게 떠오릅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호텔 리셉션에서 생수를 사기로 합니다. 그런데 호텔 직원에게 100유로짜리를 꺼내니까 직원이 순간 '왓?'이라는 리액션을 보입니다. 거슬러줄 수 있을지 잠깐만 기다리라고 이야기하는데, 확실히 이렇게 큰 화폐를 터는 건 항상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ATM은 왜 좀 더 작은 단위로 돈을 주지 않는 걸까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의미 없이 보내는 뮌헨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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