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조차 힘겨운 날의 바젤입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픕니다. 요 며칠 동안 계속 무리하면서 몸이 좀 안 따른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드디어 한계에 이른 모양입니다. 그간의 고생으로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편하게 쉴 수가 없습니다. 집에 있었다면야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빈둥거리면서 푹 쉬었겠지만, 저는 지금 여행 중이고 다른 숙소로 이동해야만 합니다. 이동을 위해서 기차도 타야 하고 밥을 먹기 위해선 식당을 가든 식재료를 사 오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심지어 빨래조차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침부터 바로 그 빨래 때문에 고생입니다. 숙소에 세탁기가 없어서 셀프 빨래방을 찾아보는데 바젤 시내를 다 둘러봐도 빨래방이라고 할 곳이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딱 하나 위치한 모양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웬 고가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빌딩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구글 지도의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어 한참을 서성여봅니다. 아무리 봐도 오피스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빌딩 밖에 주변에 없어서 빨랫감이 든 캐리어를 끌고 조심스레 들어가니 큰 세탁소 하나가 보입니다. 뭔가 잘 통하지 않는 영어로 세탁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주인 분께 옷가지를 맡기면 직접 세탁을 해서 돌려준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석연치는 않지만 캐리어에서 빨랫감들을 꺼내서 옷을 맡겨봅니다.
두 시간 정도 뒤에 찾아오라고 이야기하시니 주변에 볼 것도 없고 어디 멀리 움직일 힘도 없어서, 하릴없이 고가도로 밑에서 죽치고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어디 가서 드러눕고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만 도무지 주변에 마땅히 그럴만한 곳이 보이질 않습니다. 벤치에 누워서 조금 잠이라도 청해볼까 생각해봅니다만 진짜로 잠들었다가 큰일이라도 날까 봐 곧 관둡니다. 그렇게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겨우 보내고 세탁물을 찾으러 가니 세탁비로 20 스위스 프랑(약 2만 4천 원)을 요구합니다. 그것도 현금으로요. 주머니를 뒤져보니 겨우 20 프랑 하고 약간의 동전만 더 보일 뿐입니다. 스위스 여행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벌써 100유로어치의 현금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돈도 최대한 아껴 쓰고 가능한 카드를 섞어 썼는데도 비싼 스위스 물가에 돈 나가는 속도가 가늠이 안됩니다.
그렇게 외진 고가도로에서 빨래를 마친 후, 다음 목적지인 베른으로 향합니다. 베른에서 숙소를 잡는 것도 너무 비싼 숙소 가격으로 한참을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묵을 만한 호스텔도 보이지 않고, 가장 싼 호텔이 2박에 35만 원에서 40만 원을 호가합니다. 아무리 편히 쉬고 싶다고 그래도 너무 가격이 비싸다며 머리를 부여잡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여기서도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여 조금 떨어진 소도시의 값이 싼 호텔을 잡기로 합니다. 베른에서 11km, 국철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 역 근처에, 원래 가격이 30만 원이지만 할인이 붙어 겨우 20만 원에 나온 호텔 싱글룸을 운 좋게 발견합니다. 30프로 이상을 할인하는 것이 조금 수상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위치의 문제로 값이 싸겠거니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 찾아보는 것도 힘들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예약에 결제까지 진행한 것이 어젯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숙소를 찾아서, 한 차례 환승을 거쳐 목표지점인 쉬펜 역에 도착하니 벌써 다섯 시가 다 되어갑니다. 오늘 한 일이 빨래를 돌리고 기차를 타고 이동한 것 밖에 없는데 하루는 다 져가고 체력과 진이 빠집니다. 역사에 내리니 주변이 완전히 깡 시골인 간이역입니다. 주변에 정유소 하나랑 카센터, 매점이랑 펜션처럼 생긴 호텔 하나가 눈에 보이는 전부입니다. 그 뒤로는 논인지 밭인 지 허허벌판만 늘어서 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호텔은 깔끔하고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발 이제 쉬고 싶은 바젤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