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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은희 Sep 16. 2021

마지막 여름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출출한 오후를 버틸 만한 음식이 보이지 않았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집 앞 슈퍼로 향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살짝 묻어 나오는 요즘이지만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뜨겁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었다. 슈퍼에서 눈에 보이는 과자와 음료수를 사 들고 집으로 향하는 도중, 바닥만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빼곡히 자리 잡은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푸르다. 푸르다는 말만큼 여름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그만큼 여름은 많은 생명이 힘차고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을 준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맑아지는 것만 같은 이 푸르름은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맴맴- 여름이 끝나가는 것을 아는지 오늘따라 매미들이 더욱 맹렬히 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여름을 대표하는 곤충 중 하나인 매미는 수명이 고작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체적인 수명으로 따지자면 종에 따라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이지만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매미 유충으로 살아가며 때가 되면 탈피를 거쳐 우리가 아는 매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짝짓기를 위해 여름 내내 맴맴- 하며 높게 소리쳐 운다.

매미에게 한 달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유충이란 사전적 의미로 알에 나온 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벌레를 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매미는 한 달의 매미일 뿐이지만, 고작 한 달을 위해 나머지 시간이 매미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어쩌면 그들에게는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매미로 살아가는 한 달이라는 삶보다 17년이라는 매미 유충으로서의 삶이 진정한 삶일지도 모른다. 개중의 누군가는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아득한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맴맴-

집에 들어왔음에도 창밖을 통해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14층 아파트 안에서도 들릴 정도면 얼마나 큰 소리로 암컷을 부르는 건지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삶이 여름과 함께 스러질 것을 알기에, 더는 세상의 푸르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위한 눈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의 푸르름은 이들 때문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있기에 생이 아름다운 것처럼, 마지막 생을 불태우는 그들의 울음 덕분에 이토록 여름이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울리던 여름의 푸르름 저편엔 그들의 마지막이 존재했던 것이다. 가끔가다 한여름의 매미 울음소리가 서글프게 들리는 건 이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해당 글은 일간 문학지 '어느 저자'에서 '은희'로 활동하며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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