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ustralia, Sydney
이곳에 도착한 첫날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거리가, 목이 아플 만큼 높은 아파트가 아닌, 영화에서만 보던 으리으리한 주택들이 보이던 거리가. 장보고 카트를 끈 채 숙소로 향한다는 게 얼마나 재미나고 색다르던지. 하지만 그런 다름도 지속할수록 익숙해지고 무뎌질 뿐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호주의 셰어하우스에서 일어나, 항상 걷던 거리를 걷고 출근하는 내 모습이 당연시되었다.
저녁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득 걸음을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호주에서의 첫 달은 볼 때마다 색다른 하늘을 구경하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 올려다봤던 거 같은데, 꽤 오랫동안 하늘을 보지 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고 바라본 하늘은 웃음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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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온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였다. 셰어하우스에서 룸메이트들과 함께 뒹굴거리며 놀던 날이었는데, 갑자기 밖으로 나간 룸메이트가 창문을 두드리며 얼른 나와보라고 소리를 쳤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간 우리 눈에 보인 것은 저 끝까지 빨갛게 불타오르는 하늘이었다. 온몸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우리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 각자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왔다.
“미쳤어! 제일 잘 보이는 곳이 어딜까?”
“몰라! 우선 육교로 가자!”
가까운 육교로 뛰어가는 동안에도 흥분은 감출 수 없었다. 그만큼 그 날 보았던 하늘은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만큼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선 작은 무언가도 색다름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리도, 건물도, 곳곳에 피어 있는 들꽃들조차. 익숙함이라는 막을 거치지 않고 다가오는 것들은 평소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흥분될 만큼 아름다웠던 그 하늘이, 만약 호주에 익숙해지고 지쳤을 때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숨 가쁘게 육교로 뛰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익숙함이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무뎌짐 또한 선사한다.
어쩌면 현실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시련 때문이 아니라 안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되물을 것이다. 그럼 그 안정을 깨트려 불안 속으로 들어가야 하냐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허황된 꿈을 쫓아가야 하냐고. 아니, 그런 용기 있는 사람 또한 존재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던가, 평소와 다른 퇴근길을 선택한다던가,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춰 잠시 고개를 들어본다던가, 큰 틀은 이루되 그 안에서 작은 것들을 변화시키는 용기는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용기 이후에는 여유로운 아침을 먹으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고, 평소와 다른 길을 가다 귀여운 길고양이를 만날 수도 있고, 잠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크고 아름다운 보름달이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색다름은 익숙함이라는 막을 뚫고 다가와 작은 위로를 건네줄 것이라 믿는다.